벳사이다의 소경치유기적은 제자들에게 대한 점차적인 교육의 상징이었다. 기적의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는 분부와 함께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요르단강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는 도시 근방에 이르렀다. 이 도시는 루가가 이뚜레아라고 부른 지방에 있다(루카 3장1).
북쪽 이방인 지방인 다마스쿠스 평원이나 아빌레네 산간지역 (이 지역은 당시 리사니아가 분봉왕으로 있었고 루가 3장1, 현 시리아)에서 여행하는 사라에게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는 성지에 접근해 있는 곳이고 유대아나 갈릴래아에서 북쪽으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이 지방은 이미 이교도들의 땅이다. 이곳은 요르단 강으로 흐르는 풍부한 물이 지류를 이루고 있어 목초가 좋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계곡에 목축의 신 ‘판’ 신상이 세워진 신전이 있다.
이곳은 이교도적인 생활양식이 활발한 도시가 있고 이 도시는 분봉왕 필립보가 자기와 로마 황제 가이사르 아우구스투스를 영예롭게 하기 위하여 가이사리아 필립보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다.
이러한 상황으로 봐서 예수와 그 일행에게는 사상적으로 광야에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수께서는 좀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고 제자들도 그 옆에 있었다. 참으로 중요한 일이 있기 전에 예수께서 늘 기도를 하는 것을 복음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이번에도 중요한 일이 있게 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 누구라고 하더냐?” 이 물음을 예수께 대한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제자들 특히 베드로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예수께 대한 신앙과를 대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선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보통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헤로데왕은 세례자 요한을 목 벤 후 예수가 그 요한이 다시 살아나 민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었다. 그 의구심은 민중 속에도 꽤나 널리 퍼지고 있었다. 혹은 엘리야가 다시 나타났다고 믿는 사람들로 있었다. 이들은 메시아를 갈망한 나머지 구약성서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다시 와서 메시아를 기름 바르고 민족의 구세주로 세울 것이라는 약속을(말라 3,23-24:마태 17,10-13) 믿는 무리들이었다.
예레미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카베오서(하 15장 15-16)에 나오는 민족 지도자 유다가 꿈에 환역으로 받은 계시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다는 꿈에서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오른 손을 내밀어 황금검을 주며 이 검은 하느님이 선물로 주는 거룩한 검이니 받아가지고 적군을 쳐부수시오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이토록 예레미야는 유대아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예언자였다.
이러한 전승 속에서 예수를 설마 메시아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선의의 군중들은 이상에 언급한 위대한 예언자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들로서는 예수께 대한 최대의 평가였다. 예수님께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다시 살아난 세례자 요한 혹은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 등 위대한 예언자중 한사람이라고 한다는 대답을 한사람은 제자들이었다.
제자들은 이러한 대답을 하면서 자기들 스승에 대하여 한껏 자랑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위대한 인기 있는 군중의 평가를 들으려고 물어보신 것이 아니었다. 메시아에 대한 숨겨진 신비를 측근들이 알아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세상 떠들썩하는 환호 속에 나타나는 메시아가 아니라 사람들이 낌새를 채지 못하는 가운데 오직 믿음 있는 자만이 알아보는 그러한 메시아상을 제자들이 알아보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사람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중요한 있이 있을 때 마다 앞장서는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메시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은 사도교회의 신앙을 대변하는 말로서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영감을 받아 이렇게 대답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 요나라고 부르시며 그것은 사람이 가르쳐 주어서 네가 알게 된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복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시몬 바르 요나는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이다.
이 세속명과 대조적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시몬은 예수께서 이미 지어주신(요한1장42) 영명 베드로 외 이름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했던 것이다.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은 이미 마귀들이 쫓겨나면서 외쳤던 호칭이었는데 그것은 마귀들이 예수의 정체를 미리 알림으로써 구세사업을 망가뜨리려는 속셈에서 나온 부르짖음이었다.
마귀의 이 계획은 광야에서 예수를 유혹할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네가 만일 하느님의 아들이면…”(마태4장3). 그 후 사람들의 입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란 호칭이 나온 것은 물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놀라서 이 호칭으로 예수를 불렀을 때이다(마태14장33) 그 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며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당신 아버지이시며 당신은 세상에 생명을 주어 사람을 살게 하려고 왔다는 것을 누누이 설명하셨다.(요한 6장34이하).
이때에 베드로가 주님은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고백한 일이 있다.
그는 예수를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라고 새로운 고백을 하게 되었고 이 고백은 이 세상에 생명을 주려고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임을 알고 전 교회를 대표하여 선언한 신앙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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