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내림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구원에 있지, 인류를 벌하거나 심판하는데 있지 않다. 더군다나 인류를 멸망시키신다든가, 파멸시키신다든가 하는 따위의 일은 추호도 없으시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이 너무나 타락했고 또 세계정세가 전쟁과 살육, 불신과 타락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들을 보고, 묵시록을 들먹이면서 소위 ‘종말’이 다가왔다고 외쳐대는 사이비열성자들이 등장해서, 주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노라고 외쳐대는 사례가 급증해가고 있다. 분명 복음은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오늘의 복음)라고 계속 해서 되풀이 하신다. 즉 “아버지께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고”(요한 5,22) 또한 예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나는 결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동 8,15)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시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단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동 12,47)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안이하게 불신 속에 머물러도 된다는 말씀은 결코 아니다. 우선 이 말씀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결코 낙원이 아니라는 점과 그 반대로 고통과 번뇌, 갈등과 모순, 시기와 다툼 그리고 병고와 죽음뿐인 세상이라는 사실에 대해 명확한 각성이 요청된다는 점이다.
인간은 오늘날까지 그렇게도 평화를 갈망해 오면서도 인류 역사에서 이 지상의 어느 구석에서든 이 지상의 어느 구석에서든 항상 전쟁과 살육, 기아와 괴변(怪變)그리고 증오와 번뇌들이 끊일 사이가 없었다. 소위 원죄 중에 있는 인간은 결코 안식(安息)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만 한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만이 구원이 있다.
즉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 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믿지 않고 그대로 현재의 타락된 삶을 계속 살아간다는 그 이유로 해서)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오늘의 복음). 햇빛이 쏟아지는 찬란한 아침이 왔는데도, 그대로 어둠속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결코 아침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특히 인류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셨다!” 즉 심판이 따로 있지 않고, 구세주를 믿지 않는 것이 곧 심판 자체이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설수 없었던 단죄 받는 자들이었는데, 구세주로 인하여 갑자기 그 단죄에서 사면되어 아버지 하느님 앞에 다시 아들로 서게 되었다는, 엄청난 축복의 기쁜 소식이다.
여기 대죄를 짓고 사형수로 복역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그대 왕의 사자가 그들에게 사면장을 가지고 왔는데 그들 중 더러는 그 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형 집행일이 닥쳐왔다. 사자의 말을 믿고 사면장을 받는 사람들은 그대로 풀려났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대로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구원은 전혀 인간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 인해 무상으로 주시는 더할 수 없는 은혜이다. 그 사랑이 너무나 크고 엄청난 것이기에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이와 같이 순박한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고도 말씀하셨다(마태 19,13-15 참조).
다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느 신사가 모든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금시계를 거저 주겠다고 내주었다. 모두 자기들을 놀리려는 줄로 알고, 그 시계를 받으려 하지 않았는데, 좀 바보스런 어린이가 그 시계를 받았다. 신사는 그 바보 어린이를 축복하면서 “너는 내말을 믿고 이 시계를 받았으니 이제 이것은 분명 너의 것이다”하고 선언했다. 모두들 아쉬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종말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논의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제1독서에서도, 무상으로 베푸시는 하느님의 은혜의 표상을 말했고, 제2독서에서는 이 사실을 명백히 설명하고 있다. “한없이 자비스러우신 하느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하늘에서도 한 자리에 앉게 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이렇게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로마 10,10). 진심으로 믿고 감사와 찬미로써 사랑을 드림으로써 주님과 하나임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세상, 사람들은 다 같이 주님을 믿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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