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필(요셉·57)씨는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야채도매상을 한다. 사위가 잠든 새벽 2시, 안호필씨는 하루의 새 잠을 연다. 산지에서 갓 올라온 농산물을 경매를 거쳐 구입하고 또 소비자들에게 넘어가기까지 안씨의 하루는 눈코 뜰 사이가 없다.
몸이 두 쪽이라도 모자랄 바쁜 와중에서도 안씨는 복지시설에서 필요한 야채를 구입하는 정성을 보인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서울 시립양로원을 비롯 명일동 장애자 종합복지관, 용산 베들레헴의 집, 명휘원 등에서 필요한 야채류는 모두 안씨의 손을 거쳐 구입된다.
“새벽 5시부터 8시까지는 몹시 바쁩니다. 그래도 그때그때 좋은 물건이 나오면 구입해야하기 때문에 장사에 지장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작은 희생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장애인들이 싱싱한 야채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쁩니다”
안씨가 주로 취급하는 농산물은 당근, 양파, 감자 등이다. 그러나 시설에서 필요한 부식은 김치를 담그는 배추에서부터 파 마늘 고추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래서 그의 새벽일과는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안씨를 보고 주위에서는 시설에 납품한다는 소리도 한다. 안씨는 그러한 말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납품이든 봉사활동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서 각 시설에 전단해 주는 것이 그의 기쁨이고 보람일 뿐이다.
“농산물 시장에 몸담고 있는 한 야채 구입 봉사활동은 계속할 계획입니다. 나의 일터에서 노력봉사만 조금하는 것뿐인걸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안씨의 이 같은 봉사활동은 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용산 도매시장에서 우연히 시설종사자들이 좋지 않은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보고 이일을 시작하게 됐다.
개신교에서 운영하던 영락보린원과 이렇게 인연을 맺은 안씨는 4년간 계속 야채를 구입해주었고 그 후 시립양로원 등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안씨는 지난해 초까지 가락동시장 교우회 구역장을 맡아 교우회 활성화를 위해 뛰어 다니기도 했다.
중림동본당 신자이기도 한 안씨는 본당일에도 열성적이다. 연령회 회계, 부회장을 거치면서 안씨는 병자방문, 연도, 일관예절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새벽에는 생계를 위한 노동의 현장으로, 또 낮과 밤에는 본당의 봉사활동의 현장으로 쉴 틈 없이 오고가는 안씨는 하루에 3~4시간을 잔다.
“피곤해서 쉬고 싶은 생각도 나지만 레지오 활동이나 연령회 활동을 할 때면 새로운 힘이 납니다. 정말 열심히 봉사활동을 다니는 사람들에 비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뿐 입니다. 열심히 살려고 하면 해야 할 일이 끝도 없이 많지요”
안씨에게서는 몸에 배인듯한 겸손이 흘러나온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녀들에게도 겸손되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가르친다. 막내아들이 올해 대학교에 진학한다고 기뻐하는 안씨는 그 아들도 성당에서 봉사할 것을 기대한다고.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는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말하는 안씨는 그렇기 때문에 상대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손님들이 가끔씩 경우에 맞지 않은 요구를 할 때면 서운한 생각도 들지만 이내 예수의 수난을 생각하며 머리를 흔든다는 안씨는 자신의 일터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밤을 낮처럼 살아가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