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돕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쁘고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 상관 않고, 끈질기게 남을 돕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삼년 아니 석 달만 앓아누우면 효자 없다’는 속담이 명언이 되어버린 세태지만, 집안일도 아닌 험한 남의 일을 17년간이나 해오고 있는 할머니가 있다.
그가 바로 지난 2월 24일 성 빈첸시오 서울중앙이사회 정기총회에서 모범 빈첸시안으로 추기경상을 수상한 김경직(68·데레사) 할머니.
평소에 말이 없고 온순하기로 소문난 김할머니는 1.4후퇴 피난민들이 정착한 게딱지같은 행당동판자촌을 돌며 노망들린 노인들이 쏟아내는 똥걸레를 손수 빨고, 비참하게 죽어간 이들의 뒤치다꺼리를 마다않고 해주고 있다.
너무 바쁜 탓인지 너무 기쁜 탓인지 칠순을 눈앞에 두고도 머리카락 하나 쉬지 않은 김경직 할머니.
화투 대신 아직 ‘한국인’ 잡지를 쥐고 “그냥 심심해서 본다”는 김할머니는 비록 국민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무학력자이지만 현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사회의 구조적모순, 즉 현장을 보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빈부의 엄청난 격차와 핵가족에 따른 이기주의 그리고 왜 빈자들이 교회를 멀리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교회에 나오라고 하기 보다는 지금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어야 한다는 김할머니는 “매달 동사무소에서 배급되는 쌀 10kg과 연탄비 2만2천원으로 한 달을 연명해야 하는 달동네가족들의 인간이하의 처참한 생활을 안일한 신앙생활에 만족하려는 저에게 채찍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노장 김할머니는 매주마다 행당동본당 성 빈첸시오 본당협의회(회장 장근복) 회원들과 어울려 빗자루·옷가지·라면 등을 꾸려 5~6가지씩을 돌며, 나이를 잊고 빨래와 설거지, 방청소를 하며 옛날 시집살이를 또다시 자청한다.
판자촌 주민들도 김할머니의 도움을 거북해 하지 않고 오히려 방문 날짜와 시간까지 약속한다. 왜냐하면 김할머니의 손길은 상처받은 이의 상처를 건드리거나, 좌절된 이의 자존심을 은근히 짓밟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달동네 주민들은 매 분기별마다 용돈을 털어 동네 빈민학생 3명에게 각18만원씩을 대어주고, 얼마전 심장병환자 2명을 한양대부속병원에 입원, 치료시켜 준 김할머니와 행당동 빈첸시안들을 정부의 어떤 복지시책보다도 더 믿고 따르고 있다. “눈비가 몰아칠 때 산동네를 오르기가 좀 힘들었다”는 김경직할머니. 김할머니는 17년간이나 이 비탈진 산길을 오르내리며 알코올중독자, 중풍병자, 앉은뱅이, 정신병자들의 벗이 되어 준 것이다.
김경직할머니는 “죽는 순간까지 이 일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달동네 주변을 뒤흔드는 굴착기와 불도저의 굉음이 5~6평의 맨땅에 거죽더기를 덮고라도 살아보려는 ‘뿌리 없는 사람’을 하나 둘씩 쫓아내고 있음을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동네에서 날품팔이나 포장마차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가난한자 축에도 끼이지 못한다”는 김경직할머니는 세간의 과소비추방이라는 말을 뒤로하고 “주민을 위해 하루빨리 손수레나 미싱, 장사도구를 사주어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며 여생의 포부를 밝힌다.
냉혹한 현실에 짓눌려 있는 이들에게 ‘예수 믿어? 안 믿으면 지옥!’식의 표면적 전교가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김경직할머니.
이러한 김할머니의 생활태도를 잘 알고 있는 주변사람들은 김할머니야 말로 종교인은 늘어도 더 더욱 어두워지는 이 세상에 작은 희망의 불꽃이 되리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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