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진(丁旭鎭)님이 쓴 「고통의 신비」는 1956년 「경향잡지사」가 펴낸 책이다. 내가 읽은 재간본은 66쪽의 포켓판으로 고통의 의미와 신비를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이 있다. 지난해 나는 중학생이던 둘째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하학길에, 인도로 뛰어든 승용차가 제 친구와 함께 돌아오던 아이를 덮쳤다. 대학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아이는 이미 참혹한 모습으로 죽은 뒤였다.
자식의 죽음길이 못 견디게 간절한 고통이 있던가. 슬픔과 고통은 뼈를 녹이고 살을 태웠다.
이러한 내 처지를 헤라이고, 수필가 정혜옥님과 작가인 김경남님이 하루는 내 연구실을 찾아왔다. 두 여류문인은 모두 나보다 연조가 높은 분들이다. 두 분은 내게 여러 가지로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정혜옥님이 이 책을 내 손에 쥐어주고 갔다. 그녀의 자당이 가까이 지니다가 물려 준 책이라고 했다.
나는 이 책을 눈물로 읽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때의 심경이 사태를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이 책은 모두 18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책 뒤에는 고통받는 병자들에게 내리여 신 교황성하의 말씀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 책의 내용이 강조하고 있는 점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고통은 인간의 불행이 아니라 도리어 천주님의 축복으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가장 절실하게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자신의 죄악과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자각은 뉘우침을 낳고, 그 회심(悔心)의 뉘우침은 자신을 온전히 천주님께 의탁하게 한다. 자신이 새롭게 거듭 태어난다. 캄캄한 밤이라야 별이 더욱 빛나듯이 사람은 고통 속에서라야 천주님을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다. 이 오묘하고 신비한 섭리가 고통의 의미요 가치이다.
포도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를 치는 고통이 따라야 한다. 아무 뜻도 없는 돌이 훌륭한 조각예술이 되려면 정으로 쪼아내는 고통이 뒤따라야 한다. 인간도 고통과 환란으로 시련을 받아야 구원에 합당한 영혼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가장 완벽하게 표현되었다. 현세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고통 그 자체를 살다가 가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 그 형언할 수 없이 참절한 고통의 쓴 잔을 최후의 한 방울까지 모두 마셨다.
또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신 성모님의 고통은 어떠했겠는가. 그 처절한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겨내심으로서 그분은 하느님의 특은을 받게 되시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고통에서 무엇을 배우고 얻느냐 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원망하고 좌절해 버릴 것이 아니라, 고통의 신비한 가치를 깨닫고, 그것을 하느님 쪽으로 한 발자국 더욱 가까이 올라가는 삶일 때, 고통은 참다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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