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나온 후, 나는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후배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조금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후배 신부님은 물었습니다.
“강 신부님, 병원에서 뭐래요?”
우선 아픈 연기가 좀 더 필요했던 나는 낮고 작은 목소리로, “응, 오늘 오전에 뇌 촬영까지 했어. 휴…. 가서 이야기 해 줄게. 암튼 아프니까 다행이다.”
“아이, 그런 말 하지 마요. 그리고 조심해서 오세요. 아차, 점심은 어떻게 하셨어요?”
“응, 아침은 금식을 했고, 이제 진료가 막 끝나서 점심을 먹기는 먹어야 할 텐데…. 기운이 없네. 어디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혼자 먹어야지.”
“아니에요. 오늘 점심은 저랑 같이 먹어요. 제가 기다릴게요.”
“아냐, 여기서 지하철 타고 가면 1시간 이상이나 걸릴 텐데. 내 걱정 말고 점심 먹어.”
“아뇨, 기다릴 수 있어요. 강 신부님이 많이 편찮으신데, 제가 당연히 기다려야죠!”
“그래? 그럼, 고맙다. 기다리고 있으면, 부지런히 지하철 타고 가 볼게. 음, 혜화역 4번 출구에서 1시간 후에 만나자꾸나.”
“예. 좋아요. 많이 어지러우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암튼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속으로 ‘푸하하하. 딱 걸렸네. 만나면 좀 더 아픈 척을 해야겠다.’ 그리고 지하철 타고 서울로 가면서 큰 병이 아님에 감사드리며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다 꾸벅 꾸벅…. 빛의 신비를 몇 수십 단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안 한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혜화역에서 만났습니다. 정말 아침과 점심을 안 먹었더니 힘들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근처 만둣국 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후배 신부님은 검사 결과가 너무나 궁금한 눈치였습니다. 식사 후,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검사 결과가 뇌 질환으로 갈 수 있는 병이래.”
“뇌 질환이라고요? 이런…. 병명은 뭐래요?”
“응, 병명이 말이야…, 음…, 이석증이래.”
갑자가 후배 신부님이 안도의 한 숨과 더불어, 약간은 화가 난 목소리로, “아이!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이석증, 그거 저도 아파 봤어요. 이그….”
“야, 진짜, 의사 선생님이 뇌 질환으로 갈 수 있는 병이라고 했는데! 헤헤헤.”
그 후로 3주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혼자 미사 드리고 길고 긴, 멀고 먼 종합 병원까지 가야만했습니다. 이석증! 수도원 근처에 있는 이비인후과에서도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인데, 괜한 오기로 큰 병원에서 아프다는 진단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에…, 정말이지, 왕복 4시간 되는 종합 병원을 다녔습니다.
비록 오기가 발동해서 결국은 멀고 먼 종합 병원을 다녔지만, 병원을 다니는 동안 새벽 시간,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진 이들이 대중교통을 통해 멀고 긴 거리를 일상처럼 다니는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 새벽 시간에 대중교통을 타본 적이 거의 없는 우리네 삶. 정말이지 오랜 만에 새벽 시간, 대중교통을 통해서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의 치열한 삶을 곁눈질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문득, 이 세상이 이석증을 앓은 듯 어지러운 삶 속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의 중심을 잡고 억척스레 살아가는 분들의 삶을 보면서, 평온하기만 한 나의 삶을 반성해 보았습니다. 괜한 오기로 인해 결국 몇 차례 병원을 다니는 동안, 이석증도 치료하고, 형제애를 깨달으며, 세상 사람들의 삶도 보면서, 육체와 정신이 함께 치유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