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되다’. 베드로가 스승 예수께로부터 받은 축복이다. 스승은 제자가 자기 가르침을 알아듣고 깨달았을 때 기쁨을 느낀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말씀으로 행동으로 당신의 참 위상을 깨우쳐 주셨는데 제자들은 이제 희미하게나마 눈이 뜨이기 시작함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영원으로부터 마련된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메시아의 신비를 깨닫는 것은 혈육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었고 오직 하느님의 영동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의 입김을 수용할 수 있는 사심 없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베드로는 바로 그와 같은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 복은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임하게 하는 복된 사업을 한 인간이 떠맡는 행복한 사명이다. 이로써 하느님의 이름이 온 누리에 거룩하게 빛날 것이며 모든 사람이 혹독한 세상 유혹에서 벗어나 구원될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최고의 찬양이며 가장 아름다운 찬미가 될 것이다.
이 모든 복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신앙고백을 한데서 이루어 졌다. 네가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보았으니 이제는 내가 네가 누구라는 것을 일러 주겠다. 너는 반석이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요나의 아들 시몬을 베드로라고 명명한 바 있다.이제 베드로는 그 이름에 상응하는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그 이름이 단순한 개명의 이름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명을 부여받는 이름임을 예수께서는 확인하여 주신 것이다.
그 이름 베드로는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신자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질 탄탄한 반석임을 확인하신 것이다.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이것이 주님의 확고한 약속이며 선언이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반석이라고 해석되는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상용어인 아라메아어로는 케파이며(요한 1,42) 케파는 반석이란 뜻으로 복음서의 언어인 그리스어로는 베드라이다. 그런데 마태오복음서는 여성 명사 베드라를 사도 베드로에게 적용시켜 남성명사 베드로라고 했다. 베드로라는 남자 이름은 그리스세계에서는 없던 이름이다. 이제 베드로라는 이름은 비로소 세계사에 들어 왔고 베드로는 교회의 초석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선포 시대에는 하느님의 백성을 표시하는 개념을 하느님 나라로 지적하여 선포하였다. 이 하느님 나라는 베드로에게 그 전파를 위임한 후부터, 다시 말하면 예수후시대 사도들의 시대부터 그리스도 공동체를 교회라는 이름으로 발전시켰다. 교회라는 말이 복음서에는 마태오복음서 16장18절과 18장17절에 두 번밖에 쓰여 있지 않다. 이것은 복음서를 쓸 때에 이미 발전되어 있던 교회라는 말을 예수시대의 하느님 나라대신 썼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은 “이 반석을 주초로 하여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겠다”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 이로써 하느님의 나라는 ‘내 교회’라는 새로운 용어로 바뀌었고 이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의 핏줄이 흐르는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사도 바오로는 이 공동체개념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표현으로 교회에 대한 신학적 개념을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이렇게 탄탄한 반석위에 세워지고 하느님의 생명력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교회공동체는 숙명적으로 원수의 세력과 맞서게 된다. 생명체의 숙명적인 원수가 죽음이듯이 교회하는 생명적인 원수가 죽음이듯이 교회라는 생명공동체의 숙명적인 원수도 죽음의 세력일수 밖에 없다. 이것을 예수께서는 ‘지옥의 문’이라고 표현하였다.
지옥이라고 번역된 원문 ‘하데스’는 죽음의 거처를 뜻한다. 죽음이 죄로 인하여 이 세상에 숨어들었고 죄는 마귀가 유인하는 것인 만큼 죽음의 세력과의 싸움은 곧 마귀의 세력과의 싸움이다. 예수께서 ‘지옥의 문’이 내 교회를 쳐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실 때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생각하고 계셨다. 예수의 부활은 죽음을 쳐이긴데 그 뜻이 있다.
사도 바오로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네 승리가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이 어디 있느냐”라고 외칠 때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가 세기를 향하여 보무도 당당히 행진을 시작하는 사도교회를 생각하였다.
베드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음으로써 하느님나라의 지상 통치권을 받았다. 이 통치권은 베드로 혼자만이 받은 것이 아니고 베드로를 으뜸으로 하는 사도단 전체가 받았다. 마태오 복음 18장18절에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어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확실하다.
베드로가 받은 하늘나라의 열쇠는 이사야서에서 쉠나가 왕궁의 열쇠를 받으며 궁궐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은 것을 연상시킨다(22,22). 베드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음으로써 교회를 다스릴 권한을 받았음을 자각하였다.
매고 푸는 권한을 표시하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계석권(繫釋權)은 성서세계에서 랍비들이 사용하던 관용어로서 교리의 참 거짓을 가려내는 교도권과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시하는 재치권(裁治權)을 말한다. 이러한 권한을 받고 사도들은 만인에게 뛰어들어 가르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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