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에서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이들, 도시빈민 지역에서 무료진료를 얼마간하고 개척교회를 설립한 사람, 6.25직후 구호품을 나누면서 그때의 신자수 증가를 보았던 이 모든 사람들이 복음화에 참여하는 보람을 느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과연 바람직한 복음화일까?
전철에서 예수를 선전하는 이들의 설교 내용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만병이 완치되며 득남하고, 온갖 걱정거리도 없어지고 출세도 자동적으로 된다는 것으로 말한다. 예수님을 선전하면서 복음에서 나타난 예수의 가장핵심적인 내용인 가난을 택하라는 권유나 모든 것을 나누라는 가르침,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당부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 있어서 이들은 ‘가짜예수’를 선전하는 것이며 인간의 모든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예수를 이용하는,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를 심부름꾼으로 부려먹는 완전히 거꾸로 된 일인 것이다.
또한 무료진료나 구호사업을 할 때는 올바른 의식으로 한다면 좋은 일이 되지만 입교의 동기가 세례를 받고서 진료나 밥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참된 예수를 믿게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참 복음화는 숫자놀이가 아니고 참된 예수를 참되게 믿고 닮아가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 믿음에 있어서 확인해야할 것이 있다.
신앙의 첫째가는 대상은 천주교 교리도, 사도신경도 아니고 십계명, 윤리, 도덕 등도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며 믿음의 대상은 바로 예수뿐이며 인격자이신 예수를 믿고 사랑하며 따르는 것이다.
또한 따른다는 것은 ‘나는 길’이라고 하신 예수의 그 길을 걷는 것이며 그 인생의 흐름을 되풀이 하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생활방식을 산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래서 참복음화에는 비신자뿐만 아니라 교황님을 비롯해 추기경, 주교신부, 수사, 수녀, 신자 등 우리 모두가 죽을 때까지 그 대상에 속한다.
우리들은 길거리나 육교지하도를 지날 때 구걸하고 있는 이들을 볼 때가 있는데 누구나 돈을 줄 것인가 주지 않을 것인가를 속으로 망설이는 경우 많다.
몇 푼을 바구니에 던지고 얼른 가버리는데 이렇게 돈을 주었지만 기분이 그리 시원치 않고 좀 찜찜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왜 그러한 생각이 들까?
이는 구걸하는 사람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나와는 다른 종류의 존재, 즉 그 사람을 가난한 사람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무엇보다도 가장 갈망하는 것은 바로 인간 취급이다. 그러기에 도시빈민들도 강제철거 당하는 과정에서 한결같이 “우리도 인간이다. 왜 우리를 개처럼 대하는냐? 추운 겨울에 왜 천막살이를 해야 하느냐”라는 말을 절규에 가깝게 외쳤다.
바로 이점에서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야만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화가 이루어 질수 있다.
예수님도 개인생활에 있어서 가난하게 태어 나셨고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 광야에서 마귀의 온갖 유혹을 뿌리치면서 명예, 권력, 인기 등을 거절하며 절대적인 가난을 택하셨다. 그리고 공생활을 하시면서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할 만큼 실제로 가난하게 사셨다.
예수께서 공생활을 할 당시 세 차례 요한의 설교를 듣는 이들은 주로 가난뱅이들이었고 예수께서도 친히 세례를 받겠다고 하신 것은 그들의 대열에 들겠다고 하신 결단이요 선언이었다.
루가복음서 4장 16절에서 19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해방을, 눈먼 사람들에게 시력회복을,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을 주도록 사명을 받았다’고 예수님은 강조했다.
또한 루카복음 6장20절에는 ‘복이어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라고 말씀 하셨고 “죄인들과 어울리는구나”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가난한 이들과 시간생활을 함께 나누셨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강한 증거임을 마태오복음 25장 31절에서 40절까지의 최후 심판 때의 비유로써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심판기준은 예수께서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이했으며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병들 때 돌보았고, 감옥에 같혀있을 때 찾아주었음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장 미소한 형제에게 베푼 것이 바로 예수께 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선포하셨다. 즉 서로 서로를 위해 어떻게 일을 했느냐에 그 기준을 삼고 계심을 밝히신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 우선 △가난한 이들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며 △헌옷이나 돈 몇 푼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나누며 △그들을 참 인간 훌륭한 하느님의 아들 딸, 우리의 참 형제자매로 대하며 △그들이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생각, 분석한 뒤 △우리 형제자매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적 모순인 제도를 바꾸도록 노력하는데 있다.
혹자는 가난한 이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게 산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빈자들이 있기에 우리들도 예수화 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컬한 말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43절에서 47절까지, 4장 32절에서 36절까지의 복음내용을 볼때 초기교회의 신자들은 자신들이 가졌던 모든 것을 나누었기에 ‘그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사회의 현상은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잘 대변해주고있다.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는 복음화된 우리가 그들을 구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정신대로 올바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며 우리의 것을 나누어 감으로써 우리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어진다는 그 과정과 결과가 바로 우리의 복음화요 구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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