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끼에서 사세보(佐世保)까지는 78㎞이다. 오무라시를 지나자, 오무라만(灣)의 해안선을 따라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205번 국도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여기는 제주도보다도 따뜻한 남국의 풍물이다. 도로변 울창하게 우거지고 동백꽃과 산나초가 붉게 핀데다 노오란 밀감이 가지가 휘어지게 익어 있었다. 눈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면 일망무제의 푸른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고, 군데군데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어, 이국에서 맛보는 남국의 낭만이 차창을 뚫고 온몸에 배어드는 것 같다. 하늘과 산과 바다가 한 빛깔이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면 사랑하는 여인이 곁에 없을지라도 입안에서 나 홀로의 밀어가 가슴을 밀고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몇 번인가 탄성을 발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사세보에 와 닿았다. 여기서 잠깐 휴식을 취한 우리는 이제 아리따를 향해 달렸다.
아리따는 마치 서울 인사동 거리처럼 도자기 상점들이 즐비하였다. 이곳은 임란 때 우리나라에서 노예로 잡혀온 도공 이삼평(李參平)이 이즈미야마(泉山)에서 자석장(磁石場)을 발견하고 그 흙으로 백자를 굽기 시작해 일본 도자기 문화의 길을 연 곳이다. 이곳 아리따야끼(有田燒) 에서 구워낸 도자기는 네덜란드상인과 포르투갈상인들에 의하여 이마리(伊萬里) 항구에서 선적되어 유럽 여러 나라로 팔려갔기 때문에 ‘고이마리야끼(古伊萬里燒)’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다.
한 가게에 들러 “임란 때 한국에서 잡혀온 도공들의 유적지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게를 지키고 있던 40대 중년부인은 상냥하게 웃으며 “도조 이삼평 (陶祖李參平)”하며 “여기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하였다. 그녀가 “이삼평!” 하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약간 가슴이 떨리며 흥분되었었다. 이삼평은 일본에서 ‘도자기의 할아버지’로 숭앙을 받고 있었다.
이곳에는 순교지도 있다. 후다(札) 노 쓰시(迂)가 그곳이다. 북해도에 건너가 포교를 한 안젤리스 신부가 1623년에도 에도(江戶)에서 체포되어 일본인 신자 47명과 함께 이곳에서 화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교지보다는 도자기의 유적지에 더 마음이 끌려 이삼평이 1616년 처음으로 발견한 이즈미야마 자석장으로 달려가 보았다. 흰 돌가루를 캐내는 백석(白石) 의 자석장은 눈이 부시었다. 밑바닥에는 세 개의 굴이 있었다. 지금도 연간 1만톤을 생산하고 있다 한다.
그 자석장 앞에는 선인 도공들의 비가 서 있었다. 도산신사(陶山神社) 도조 이삼평의 비(陶祖 李參平 碑), 이삼평 묘(墓), 이삼평이 처음 도자기를 굽던 덴구다니(天狗谷) 도요지(窯) 등이 문화재로서 잘 보호되고 있었다. 이곳에는 남원(南原) 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는 고려신(高麗神)을 모신 곳이 있었다. 이것으로 보면 이곳에 와 도자기를 구은 도공들은 어쩌면 전라도 남원에서 잡혀간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따를 답사한 우리는 히라또를 향해 달려갔다. 히라또는 본디 섬이다. 그러나 지금은 히라또대교를 놓아 연육되어 있었다. 이곳의 경치는 때마침 석양의 노을을 받고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히라또는 곰개에서 잡혀온 도공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웅천명신(熊川明神)을 제사하고 히라또야끼(平戶燒)를 열고 도자기를 굽던 곳이다. 또 1549년 일본 전교를 위하여 가고시마(鹿兒島)에 상륙한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이 거기서는 한 사람의 신자도 얻지 못하고 있다가, 1550년 6월 포르투갈의 상선이 마쓰우라 다까노부(松浦隆信) 다이묘의 비호 아래 히라또항에 정박하자,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이곳으로 와 일본 전교에 성공을 거둔 곳이다. 이 히라또는 폐쇄되었던 일본의 서구문화를 처음으로 받아들여 문명개화의 길을 연 문호이며, 일본에 최초로 천주교 신앙의 씨앗이 뿌려진 성지이다. 그리고 일본 최초의 성당이 세워진 곳이다.
히라또에 있는 사베리오 성인 기념성당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 총회장 가와바라(川原)씨의 안내를 받았다. 히라또는 많은 관광객과 순례객들이 찾아오는 곳이어서 성물판매소에는 그 기념품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기념성당은 1931년에 세운 것인데 규모는 작았으나 주변 경관과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 성당은 신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바닷가에 나가 돌을 주어 등에 지고 와서, 그 정성을 모아 지은 것이라 한다. 성당 옆에는 순교자 현양비가 서 있었다. 사베리오 성인이 히라또에 와서 처음 기숙한 곳이 무사인 기무라(木村)의 집이었다. 1559년 그 시녀 마리아 오센(仙)의 순교를 시작으로 히라또에서는 1624년까지 4백여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이 가운데는 이름을 일본식으로 개명하여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 동포들도 많이 있었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잠시 묵상해 보았다.
또 그 옆에 사베리오 성인의 기념상이 서 있었다. 여기를 순례한 우리는 가와바라 회장의 봉고차를 타고 사끼가다(崎方) 공원으로 갔다.
거기에는 사베리오 성인의 기념비가 서 있었다. 다시 우리는 히모사시(紐差) 성당을 순례하고 히라또 순교자현양미사가 올려지는 산정으로 갔다. 여기서는 해 마다 성모승천 전야인 8월 14일 밤에 순교자 현양미사가 봉헌된다 하였다. 그 산정에서는 바로 눈앞에 순교지 나까에(中江) 섬이 보이는데, 그 밤엔 섬 앞바다에 불교도(佛敎徒) 및 가꾸레 기리시단(hidden christian) 들이 나와 등불을 밝힌 배로 십자가를 만든다 한다. 또 이 히라또에는 우리 동포가 산 고려 마을이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