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헌장의 배경
레오 13세(1878~1903 재위)의 시대는 대중사회와 대중문화가 출현한 시대였으며 동시에 록펠러·카네기·크루프·노벨 등과 같은 재벌들의 전성기였다.
1760년경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19세기 말 유럽을 완전히 산업사회로 바꾸어놓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공장의 건설, 상품생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16세기 구라파 전체인구의 1/5이었던 빈자의 비율이 19세기말 1/3로 늘어났으며, 빈자들은 일자리를 위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리고 생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하루 15~16시간의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렸다.
또한 빈자의 자녀들과 부인들도 노동을 해야만 가족이 살 수 있었다. 결국 자본주의의 풍요는 소수에게만 돌아간 것이다.
이에 1848년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을 발표, 사회주의운동을 본격화 시켰다. 그러나 이당시 교회는 자본가들의 횡포와 사회주의자들의 운동 가운데에서 독자적인 노력을 진행해 나갔다.
독일의 경우, 공산당선언이 발표된 해에 마인츠의 케틀러 대주교는 사순절 강론에서 노동문제를 제기한 후 강론과 저술로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국가통제 모두를 비판했다. 케틀러 대주교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독일교회 전체는 서민과 노동자들의 문제에 비교적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신자들은 중앙당에 가입해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실현시키는 등 여러 방면으로 활동했다.
1850년대 영국교회도 뉴먼 추기경과 매닝 추기경을 주축으로 노동자 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매닝 추기경은 1872년 농촌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석한데 이어 당시의 수상에게 어린이 노동금지와 노동자들의 주택문제 해결방안을 법률로 제정해 줄 것 청원했다. 또한 1874년에는 ‘노동의 권리와 존엄성’이라는 강의에서 노동자의 단결권을 옹호하고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법률제정을 요구했으며, 어린이 노동의 참상을 신랄하게 고발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기본스 추기경이 1886년 9월 6일 볼티모어의 노동자 2만5천여명이 시가행진을 통해 기존 14~16시간의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단축해 줄 것을 요구하는데 적극 지지의사를 표명,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프리메이슨과 그 밖의 비밀결사단체들이 교회를 반대하고 사회를 무정부주의적인 방향으로 혼란시켰기 때문에 비밀결사를 의심하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캐나다 퀘벡의 대주교는 노동기사단의 활동을 금지시켜 줄 것을 로마 교황청에 요청했고 교황청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본스 대주교는 이러한 행동이 교회에서 노동자들을 영원히 떠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했다. 우선 기본스 대주교는 노동기사단을 설득해 비밀결사의 성격을 버리게 했고, 무분별한 파업과 시설물 파괴, 폭행을 금지하도록 설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추기경 임명을 받기 위해 로마에 가서 노동기사단을 변호하는 활동을 벌였으며, 결국 교황청은 노동기사단에 신자들이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케틀러 대주교에서 시작해 매닝, 기본스 추기경으로 이어진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1880년대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항해서 교회의 독자적이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 새로운 노력들에 깊은 영향을 받은 레오 13세는 1891년 회칙 노동헌장에서 이러한 모든 진보적인 노력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승인했던 것이다.
▨노동헌장의 근본주제들
이념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 개념을 형성한 노동헌장의 핵심적 두개의 기둥은 자연법(自然法)과 공동선(共同善)이다.
자연법은 모든 실정법과 유리규범들의 근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 국가가 자연법을 부정한 채 모든 실정법의 최종적인 근거가 될 때 윤리규범과 인간의 자연권은 약화되며 인간성은 억압받게 된다. 왜냐하면 개인들이 국가에 완전 종속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나치즘·파시즘·관료주의적 공산주의와 국가보안법으로 유지되는 정권들 안에서 흔히 볼수 있다.
그래서 교황들의 사회 회칙들은 항상 자연법에 기초해 왔고 이 회칙들은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좌익과 우익의 모든 독재 체제들을 항상 비판하고 단죄해왔다. 이는 모든 실정법과 자연법은 공동체와 공동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공동선에 의거, 이기적 개인주의나 개인을 집단에 예속시키는 모든 집산주의 (集産主義)를 강력히 반대한다.
공동선은 보조성(補助性)의 원리를 필요로 한다. 이 원리는 개인과 노동조합등과 같은 하부의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에 국가와 같은 상부의 집단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보조성의 원리로 말미암아 개인주의와 집산주의 모두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공동선이 실현될수 있다.
또한 교회는 각 지체의 고유한 직분을 무시한 일괄적인 평등을 강조하기 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인권을 사회교리를 통해 강조해 왔으며 전통적으로 흑백논리에 근거한 산술적 평등보다는 인간들의 근본적 요구에 기준한 분배정의(分配正義)를 원칙으로 해왔다.
이렇게 볼 때 최근 회칙에 자주 나오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란 말은 마르크스주의적 계급투쟁이론이 아니라 빈자들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조건을 요구하는 분배정의의 실현요청이다.
▨맺는말
사실 한국교회도 어려운 노동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회칙에 대한 관심과 이를 읽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아주 부족하다.
노동헌장 1백주년을 맞는 지금부터라도 회칙과 사회교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생활 속에서 실천토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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