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제자 공동체의 복음적 생활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도래하는 종말론적 구원시기에 하느님의 백성을 모으는 일의 조력자로서 제자들을 불렀다. 그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때에 자신의 제자들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 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제자들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표징을 보고 하느님나라가 도래하고 실현되고 있음을 이 세상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표징이 되는 ‘복음적 생활’을 살도록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 ‘복음적 생활’의 내용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라는 요청과 ‘산상설교’ 내지는 ‘평지설교’의 내용 속에 잘 요약되어 있다.
예수의 요청은 예수를 중심으로 영위되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바로 ‘형제자매적 가정’의 성격을 지닌다는 전제하에서 타당하게 나타난다.
실제 예수의 제자들은 일종의 ‘가정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혈연상 남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형제자매처럼 새로운 가정을 이룩할 수 있었다.
예수는 제자들을 새로운 형제와 자매들이 있는 또 다른 하나의 가정에로 불렀고 이 ‘새로운 복음적 가정’이 바로 도래하는 하느님나라의 표징이다.
당시 유다사회에는 엄격한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예수의 제자공동체 안에는 이러한 가부장적 권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예수의 제자공동체의 질서와 구조가 일반사회의 질서와 구조와 대조됨이 더없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세계의 사회질서 속에서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통용되는 지배-종속 구조를 배격하고, 판이한 유형의 새로운 공동체 구조를 형성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인간 세계 안에는 ‘형식적권위’와 ‘봉사적권위’의 두 가지 유형의 권위가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누구도 제자공동체 안에서 다른 성원들을 강제적으로 지배하는 형식적 권위를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기보다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이것이 비지배적이고 비억압적인 사랑의 봉사적 권위다.
초대교회는 하느님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준수하였다. 초대교회 신자들에 의해 생활화된 사랑은 바로 아가페적 사랑이었다. 신자들은 상대방이 아름답고 선하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존재하기 때문에 유보 없이 자신을 건네주는 몰아적 사랑을 실천하였다. 초대교회는 원수에 대한 사랑마저 포함하는 아가페적 삶, 이전의 생활양식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복음적생활’을 영위하려고 노력하였다. 당신 교회의 현존자체가 아가페의 현존을 나타내는 표징이었다.
▨민족공동체의 현실과 교회의 복음화 상황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간략하게 살펴본 초기 복음적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현금 우리 민족 공동체는 단적으로 말해서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은 분열된 세계의 상징적존재로 수치스럽게 비쳐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책임을 지고 연합국측에 의해 1945년 이래 국토가 분단되었던 독일 민족은 서독에 의한 동독합병 형식으로 평화로운 절차를 밟아 지난해 극적인 통일을 이룩했다. 그런데 아무런 세계적 과실 없이 미소 강대국에 의하여 분단된 우리 민족은 거의 맹목적 대결 상태로 특징져지는 철저한 분열상태를 아직까지 근본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위 서방 자유세계의 진영에 속한다는 남한의 현실도 수치를 자아내게 한다. 특히 지도층의 극심한 부정·부패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민족공동체의 정기가 소멸되지 않는가 하는 우려를 자아낼 정도에 이르렀다.
세기말적 혼돈상태를 드러내는 분열된 민족 공동체의 현실에 직면하여 교회의 복음화가 제대로 실현됐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진정으로 수행했다면 이러한 참담한 현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도 민족공동체를 위기와 혼란으로 이끌고 있는 분열요인들이 그대로 존재한다. 이 좁은 나라의 아직 작은 교회 안에 있는 여러 본당과 교구·수도회나 신심단체, 또는 기타 교회단체들이 자신들의 존립, 안전과 규모 내지 세력확장을 주목적으로 정하고 자기 단체에 속하지 않은 다른 개인이나 단체들을 신뢰하고 수용하며 협조를 제공하기보다 경원시 하거나 배척하며, 더 나아가 비난하거나 단죄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유유상종의 붕당(朋黨)주의가 교회 안에 자리잡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해서 일차적으로 자성해야할 집단이 교회이고 특히 교회지도층이다. 한국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제국구조 안에서 교황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는 교구장 주교들에 의하여 통치되는 일종의 ‘분봉왕국’(分封王國)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가르치고 성화하며 통치하는 권한이 교구장주교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되어 있으며, 하위 성직자들에게 권한이 제한된 형태로 위임되는 가운데 교회 구성원 대다수를 구성하는 일반 신도들은 피지배자적 하급위치를 차지할 뿐이다.
만인이 자유롭게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어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거의 보편적으로 정착되어가는 현 역사적 시점에서 권위주의적 전제군주체제의 통치구조를 지닌 교회가 어떻게 구원실재로서의 지상의 하느님나라라고 자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언
교회가 일치된 아가페적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이질적 영향을 지닌 전 구성원들의 여망이 굴절 없이 수렴되는 토론과 친교의 장이 상설기구로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본당과 교구 그리고 전국교회의 차원에서 교회구성원들이 교회의 모든 과제 및 관심사를 허심탄회하고 자유롭게 논의하고 복음의 진리에 입각하여 입장을 정립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일종의 ‘대의원회의’가 여러 차원에서 구성돼야 한다고 본다. 신앙공동체를 분열로 이끌 수 있는 이견과 갈등을 도외시 하거나 간과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사실대로 지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성향을 달리하는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화해를 이룩하여 일치된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게 되는 토론의 장이 마련돼야 인간 상호간의 일치의 성사로서의 교회의 복음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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