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론]
90년 말 현재 신자 2백74만명… 53년 대비 16배 증가
74년에 ‘신자 1백만’ 돌파
50~60년대 연20%이상 폭발적 신장
89년 인구대비 복음화율 6% 육박
80년대 ‘교황방한’ 등 계기 급성장… 평균 증가 7.69%
한국천주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하면서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이후 2백년이 지나 복음화 3백년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교회설립 이후 1백여 년에 걸친 박해와 일제식민시대를 거치면서 열세한 상황에 처해 있던 한국천주교회는 195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교세가 확장되는 등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제몫을 다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국천주교회는 경향잡지에 의해 1953년 처음으로 발표된 신자수가 16만6천4백71명에 불과하던 것이 20여년만인 1974년 1백만명에 달했고, 그 후 12년만인 1986년에는 총신자수가 2백만을 돌파하는 개가를 올렸다. 또 1989년 말 현재 한국천주교회 신자 총수는 2백61만3천2백67명으로 집계돼 1953년 당시와 비교해볼 때 무려 16배에 달하는 폭발적인 증가를 기록했다. 본보는 창간 64주년을 맞아 이같이 세계교회가 부러워할 정도로 단시기만에 급성장한 한국천주교회의 5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의 △신자현황 △전인구대비 복음화율 △성직자현황 △수도자현황 △신자생활현황 △본당현황 △공소현황 등을 비롯 △냉담자, 행방불명자문제 △도·농 교구간의 문제 등 한국천주교회가 안고 있는 제 문제점들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매년 연말 집계, 발표하고 있는 교세통계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2천년대의 한국천주교회를 전망해 본다. 아울러 5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의 ‘신자수 증감’ ‘복음화율’ ‘성직자수증감’ ‘신학생수 증감’ ‘수도자수 증감’ ‘냉담자, 행불자수 증감’ 등을 도표와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한국천주교의 교세는 1953년 경향잡지가 처음으로 서울대목구, 대구대목구, 춘천지목구, 전주지목구, 광주지목구, 대전지목구 등 우리나라의 6개 대·지목구의 신자 총수를 집계발표 할 당시 16만6천4백71명에서 89년말 현재 2백61만3천2백67명이라는 엄청난 증가를 보여 왔다.
이 같은 신자수는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20~30%라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증하다가 60년대 후반부터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되는 현상을 보이면서 급기야 71년도는 70년도에 비해 0.29%성장이라는 기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74년 신자수 1백만명을 돌파하면서 다시 점진적인 성장을 이루기 시작, 80년대를 열면서 1백32만1천2백93명이던 신자수가 86년 초 2백만명을 넘고 89년 말 2백61만3천2백67명으로 집계됐다.
80년대 신자 평균증가율은 7.69%정도로 평균 20%의 증가율을 보인 50년대에 비해 다소 뒤지고 있으나 60·70년대에 비해서는 월등이 높은 신장을 나타냈다. 특히 80년대 10년 동안 증가한 신자수는 70년대 신자 총수의 배를 넘었으며, 80년대 후반 이룩한 연평균 신자증가수 15만명선은 첫 교세통계가 나온 53년도의 전국신자총수와 비슷한 규모를 나타내고 있어 80년대 신자증가율이 아주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말 몇 년을 놓고 볼 때 앞으로 신자증가율의 향상은 물론 현상유지도 힘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은 80년대 신자증가수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전년도와 비교해서 증가수가 같더라도 증가율면에서는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측면에서 해볼 수 있다.
특히 90년도 말 현재 신자수가 2백74만5천여 명으로 잠정 집계, 90년 초 신자증가율이 89년도 5.88%보다 낮은 5.0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한 신자증가율은 82년도 9.6%증가를 기점으로 점차 감소하면서 85년부터는 80년대 평균증가율 7.69%를 밑돌기 시작, 신자증가율 둔화를 뒷받침해주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40년도 채 안된 기간 동안에 한국천주교회가 이처럼 신자수가 증가된 이유는 △50년대 한국전쟁 이후 교회를 통한 구호물자 배급으로 인해 급조된 신자들의 대거 배출 △62년 교계제도 설정으로 자립교회로의 탈바꿈 △70·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의 교회의 역할 △80년대의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한국천주교회 2백주년·세계성체대회 등의 대규모 행사 △2차례에 걸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 70년대부터 시작된 평신도운동의 활발한 전개 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제 편승, 우리나라 인구증가에 비해 훨씬 높은 신자수 증가를 보여 온 한국천주교회는 53년 당시 전 인구 대비 복음화율이 0.11%에서 89년 말 현재 6%에 가까운 5.9%를 기록,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70년대는 산업화의 영향으로 60년대 말부터 현저히 나타나기 시작한 인구의 도시집중화 심화로 인해 초반부터 교적 미정리자인 행방불명자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70년대 초반 한때는 신자수 증가율이 인구의 자연증가율에도 못미처 실질적으로 마이너스성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행불자와 함께 냉담자수는 89년말 현재 신자총수의 10.05%를 차지하고 있으며 행불자 12.88%와 함께 전체 신자수의 22.92%에 달하고 있어 한국천주교의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행불자는 도시집중화 현상에 따라 70년대 대두된 문제인 반면 냉담자는 61년도부터 교세통계표에 등장할 정도로 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문제이다. 61년 당시 냉담자수는 신자총수의 4.40%에 해당하는 1만9천9백명으로서 그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후 계속 증가하기 시작, 79년에 13.89%까지 증가했다가 다시 89년 말 12.88%까지 낮아져 비율면에서는 점차 낮아지는 고무적인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같은 냉담자 증가요인은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급조된 신자들의 탈락, 인구이동의 증가, 영세자에 대한 사후 교육부실, 관면혼인 급증, 교회제도상의 문제 등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도시인구 집중화 현상은 농·어촌지역의 신자수 감소와 맞물려 있는데 50년대 16.12%, 60년대 4.36%씩 증가하던 본당수의 증가 둔화현상과 함께 50년대 6.21%, 60년대 3.26%의 증가를 보였던 공소가 70년대에 이어 80년대에 계속 감소, 폐쇄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세통계표에 처음 본당수가 집계된 55년 우리나라의 본당수가 1백83개였으나 89년 말 현재 7백76개로 34년간 전국에서 6백38개의 성당을 건립했다.
특히 50년대·60년대 외원에 의존, 성당을 건립했던 한국천주교회는 60년대 자립 교회로 탈바꿈한 이래 70년대 1백83개, 80년대 2백개 등을 건립하는 등, 성당건립이 곧 교회성장이라는 등식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성당 신성은 같은 기간 동안 신자증가 7.69%에 못 미치는 3.03%에 불과, 본당의 대형화 추세가 심화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서울대교구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신설된 성당수에 비해 신자수의 증가가 3.34배에 달하는 10.11%로 본당 대형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해 농촌교구들은 대도시교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자증가율뿐 아니라 본당증가율도 줄고 있어 교구 전체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등 한국천주교회가 도·농교구간 큰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70년대 말에는 서울·인천·부산 등 3개 교구만이 전입자가 늘어났을 뿐 나머지 11개 교구는 모두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심화, 89년 말 현재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많은 교구는 서울, 수원, 인천교구인 반면 춘천, 대전, 안동, 전주교구는 전입자에 비해 전출자가 2배에 달했으며, 원주교구는 전입자에 비해 4.07배, 안동교구는 3.15배 많게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 서울대교구는 전국 신자 대비 신자수가 매년 늘어나 70년도 21.05%, 79년도 28.06%, 89년도 말 현재 35.58%에 달하고 있다.
성직자의 경우 1954년 한국인 신부 1백88명 외국인 신부 59명 등 총 2백47명에서 89년 말 현재 한국인 신부 1천3백83명, 외국인 신부 2백21명 등 총계1천6백26명으로 상당히 증가했으나 신자증가율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신부의 증가폭이 월등히 높던 50년대와는 달리 62년 교계제도 설정 이후부터 한국인 신부의 증가율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신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인 신부의 점유율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인 신부의 점유비가 꾸준히 증가, 89년 전체 신부수중 86.22%를 한국인 신부가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교회에서 외국인 신부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실정이다.
한편 한국천주교회는 교구 중심의 교회 성격상 80년대말 현재 88.53%에 이르는 거의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교구소속신부인 반면 수도회 소속의 신부는 극히 미약한 형편이다.
수사신부의 경우 80년대만 보더라도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이 80년도에는 57명대 88명이었으나 89년도에는 84명대 88명으로, 한국인 신부가 계속 증가는 하고 있으나 외국인 신부보다 점유율이 낮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국천주교회는 현재 주로 특수사목에만 치중하고 있는 수도회 신부를 많이 배출시켜 교회의 발전과 성직자들의 영성적인 심화를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신학생의 경우 한국천주교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신학생이 57년의 경우 1개의 대신학교 1백99명에서 89년 말에는 전국 4개 대신학교에 1천4백83명으로 증가됐다.
특히 80년대의 사제지망자수는 성직자, 본당수 증가와는 달리 신자증가율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 한국교회의 성장과 한국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아주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제지망자의 감소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질적 하락에 대한 강한 우려가 일고 있기도 하다.
수도자의 경우 수사가 57년 총 28명에서 89년 말 3백41명으로 8.2배 증가했으며, 수녀는 54년 5백19명에서 5천6백16명으로 9.2배 상승, 증가율면에서는 수사·수녀가 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수치상으로는 5천2백75명의 차이를 나타냈다.
수사·수녀의 수도성소의 지원율이 계속 증가하면서 80년대 총 증가율이 70년대에 비해 배에 달하는 신장률을 보이고 있어 현재의 4개 대신학교와 수도자영성신학원 이외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시행할 고등교육기관이 요청되고 있다.
한편 60·70년대 양로원, 농·맹아, 행려환자들과 같은 사회소외계층을 위한 사업을 해온 한국천주교회는 80년대부터 이들과 함께 정신질환자, 알코올중독자, 정박아, 미혼모 등을 위한 각종 시설, 재활원을 설립하는 한편 정부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등 다양한 복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사회 복음화 운동과 토착화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통일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 등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각종 공해로 죽임을 당하고 있는 자연환경을 살리고 보전하기 위한 생명공동체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70년대부터 일시 시작한 교회의 급격한 팽창으로 교회가 중산층화 되기 시작, 가난한 신자와 하류층 신자의 소외가 해결돼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교회의 중산층화는 본보가 이번 창간 64년을 맞아 실시한 전화설문조사에서도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신축성전의 지나친 외형적 화려함 지양 △성직자들의 사목활동중 가난한 이들을 위한 충분한 배려 △일부 성직자들의 사치스런 레저활동 지양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외형적인 엄청난 성장 속에 나타나고 있는 ‘신자 감소추세 문제’ ‘행방불명자·냉담자 문제’ ‘도·농 교구 간 격차 문제’ ‘신학생 감소 문제’ 등이 한국천주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내적성장에 충실할 때 2천년대의 한국천주교회는 80년대보다 더욱 전망이 밝을 것으로 기대된다.
[각론]
61~89년 동안 냉담자 무려14배 늘어
본당증가 비해 공소쇠퇴 현상 “뚜렷”
도·농간 불균형 극심, 교회의 중산층화 해결과제
■신자증가
「도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신자증가 중 평균증가율은 50년대가 16.08%로 최고치를 보였으며, 이어 80년대 7.69%, 60년대 6.47%, 70년대 4.92% 등의 순으로 나타냈다.
한국천주교회는 처음으로 교세통계가 나온 1953년도 신자 총수가 16만6천4백71명에서 89년말 현재 2백61만3천2백67명으로 증가했다.
또 한국천주교회는 1974년 교회설립 1백90년만에 신자수가 1백만명에 도달했으나 그 후 12년만인 86년도에 2백만명의 신자를 확보하게 됐다.
특히 80년대에는 10년 동안 증가한 신자 수가 53년도 신자 총수의 8배에 달하는 1백36만6천9백99명이 증가, 한국천주교회 총신자중 반 이상이 영세한지 10년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1년 동안 수치상으로 가장 높은 증가를 보인 해는 87년도로써 16만3천7백21명이 증가했으며, 그 다음이 86년도 15만5천7백21명, 88년도 15만2천7백2명 등으로 성장했다.
86년부터 88년까지 3년간 증가한 신자수는 70년대 10년 동안 증가한 총수 46만7천2백68명으로 나타나 엄청난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신자수’ 증가에도 불구, ‘신자증가율’은 82년도 9.6%상승을 기점으로 점차 감소하면서 85년부터의 신자증가율은 80년대 평균증가율보다 낮은 수치를 보였다.
또 50년대 이후 증가율이 가장 저조한 해는 전년비 신자증가율이 각각 1.7%, 0.29%밖에 상승되지 않은 70년도와 71년도로 나타났다.
교구별 신자증가율은 서울대교구가 53년 4만5천2백 95명으로 대구대목구보다 신자수가 적었으나 60년대와 70년대 20% 80년대 30%대의 상승률을 보이며 계속 증가, 89년 말에 이르러 전국 최고치인 91만4천2백99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밖의 교구는 신자증가율이 서울대교구에 비해 훨씬 낮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으며, 농촌교구의 경우 계속 감소되는 추세를 나타냈다.
■냉담·행방불명자
냉담자수는 61년부터, 행불자수는 72년부터 교세통계표에 나타나기 시작, 매년 증가추세를 보여 60년대 17.4%, 70년대 8.59%, 80년대 5.16%의 증가율을 보였다.
61년도 당시 냉담자수는 1만9천9백명에서 89년 말 현재 26만2천5백15명으로 증가했으며, 행불자수는 72년 9천5백6명에서 33만6천4백67명으로 증가, 각각 13.19배, 35.4배의 증가폭을 보였다.
특히 신자수에 비해 가장 높은 냉담자율을 나타낸 해는 66년도로서 전년비 35.74%의 냉담자율을 보였으며, 행불자수가 가장 높은 해는 73년도로서 145.51%의 증가를 나타냈다.
60년대 교회에서 베푸는 물질적 혜택으로 급조된 신자들의 탈락과 70년대 인구의 도시화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냉담자ㆍ행불자문제는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총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증가율면에서는 소폭이나마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냉담자가 가장 많았던 해는 2만4천53명이 증가한 84년, 2만1천1백47명이 증가한 88년으로 드러났고, 행불자가 가장 많았던 해는 73년이 8만9천8백80명, 87년이 3만8천6백86명을 기록했다.
특히 냉담자수는 73년에 11만명에서 84년 20만명을 넘어섰고, 89년 말 현재 26만2천5백15명에 달했고, 행불자수는 72년대비 89년 말 현재 35.4배 증가한 33만6천4백67명을 기록했다.
한편 89년 말 총신자중 냉담자가 10.05%, 행불자가 12.88%에 달해 총신자의 22.93%가 냉담중이거나 행불자로 나타나 교회의 새로운 행불자로 나타나 교회의 새로운 선교정책수립과 함께 냉담·행불자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후속신앙교육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성직자
「도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인 성직자는 계속 증가하는 반면 외국인 성직자는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한국천주교회 총 성직자수는 54년도 2백47명에서 89년 말 현재 총 성직자수는 1천6백4명으로 증가, 매년 평균 7.45%씩 상승했다.
성직자의 평균증가율 중 최고치를 보인 연대는 12.35%의 증가를 보인 50년대이며, 그 다음이 60년대 10.46%, 70년대 3.85%, 80년대 3.04%의 순으로 나타났고, 그중 한국인신부의 경우는 60년대 7.54% 외국인신부의 경우는 50년대 29.89%로 연대별 최고 증가치를 보였다.
한국인신부가 가장 많이 배출된 때는 88년으로서 한 해 동안 87명이 서품, 전년비 7.18%성장했으며, 89년 84명, 76년 68명 순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신부의 경우는 교계제도가 설정된 60년대부터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 현상이 70·80년대까지 계속 하강선을 그려, 70년대는 60년대 대비 마이너스 2.70% 80년대는 70년대 대비 마이너스 27%까지 줄어들었다.
전체 성직자수가 54년 총2백47명에서 89년 말 현재 한국인신부 1천3백83명, 외국인신부 2백21명 등 총 1천6백26명으로 상당히 증가했으나 신자증가율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본당·공소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본당수는 꾸준히 증가를 해 왔으나 교회 최소단위인 공소는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도표1). 이는 한국사회의 이농 및 도시집중화 현상이 교회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고 있다.
1백38개 본당으로 시작된 55년 본당수에 비해 89년말 현재7백76개 본당으로 늘어나 났으며, 공소 수는 54년1천개에서 1천5백46개로 증가, 각각 5.6배, 1.5배의 증가폭을 보였다.
본당의 경우 가장 높은 평균증가율은 50년대 16.12%로 나타나 있으며 신설된 본당수로서의 최고치는 80년대 2백 개, 70년대 1백83개, 60년대1백35개, 50년대 1백6개 순으로 기록됐다.
한 해 동안 본당이 가장 많이 신설된 연도는 58년으로 45개가 늘어나 전면대비 25.14%를 기록했으며 그다음은 57년 44개로 같은 대비 33.59% 88년 31개의 4.22%의 순서를 차지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본당신설수는 늘어나 있지만 50년도에서 80년도까지를 10년 단위로 묶어 볼 때 평균증가율은 각각10.12%, 4.36%, 3.91%, 3.03%로서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공소의 경우 50·60년대의 평균증가율은 6.21%, 3.26%인데 반해 70·80년도는 「도표Ⅱ」에서와 같이 마이너스 0.76%, 1.23%를 차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음을 나타냈다.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율이 둔화되는 가운데 가장 많은 공소가 설립된 때는 58년도 2백99개소이며 60년 1백90개소, 62년 1백72개소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특히 61년도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증가를 기록한 공소수는 70년대에 6번(60.65.68.69년)80년대에는 84.85년을 제외한 모든 연도에서 감소하는 현상을 나타냈다.
■신학생
신학생 총수 중 대신학생은 57년1백99명에서 89년 1천4백83명을, 소신학생은 57년 2백7명에서 84년 폐교 때 52명을 기록해 각각 7.45백 증가, 3.9배 감소했다.
「도표Ⅰ·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신학생 수는 80년대 12.5%로 최대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50년대 10.91%, 60년대 9.66%, 70년대 0.18%로 나타났다.
또한 소신학생수는 50년대 6.78%, 60년대 6.11%, 그다음 70·80년대는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84년 폐교 때까지 계속 감소해 왔다.
전년대비 증가율에서 대신학생수를 보면 75년 38.77%로서 가장 높은 증가를 보였고, 인원수로도 2백21명이 입학했으며, 소신학생수는 60년 90.25%를 기록, 인원수도 2백13명이 입학한 것으로 드러났다.
59년 2백44명을 기록한대신학생수는 당시 본당수와 동일, 1개 본당에 1명이라는 수치를 나타냈으며, 89년 말에는 대신학생 1천4백83명으로 본당수 7백76개의 두 배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수도자
수도자 총수는 54년 5백19명에서 89년 말 현재 5천9백57명을 기록, 37년간 약11.5배의 증가폭을 보였다.
「도표Ⅱ」에서 볼 때 50년대 수사는 평균89.23%의 높은 증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70년대 7.03% 80년대 6.94% 60년대 4.36%의 순으로 증가된 것을 알 수 있다.
증가된 인원수치로 보면 80년대에 1백48명으로서 가장 많이 증가했으며 70년대가 그다음으로 67명 50·60년대가 각각 32명씩 증가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그러나 이러한 증가폭은 성직자와 수녀 증가율에 비해 비율면에서는 앞서나 수치면에서는 훨씬 뒤져 수사수가 상대적으로 열세, 신자들의 수사성소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것을 반영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증가한 수치를 놓고 볼때 한국인 수사는 68년 91명 외국인 수사는 81년에 43명 증가, 각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총수사수는 93명이 늘어난 72년도가한 가장 많이 증가한 연도로 나타났다.
한국인 수사는 진출초기인 60년대 76.13%로 가장 높은 평균증가율을 보였으며 연도로는 59년에 147.62% 수사의 수로는 91명이 증가한 68년도로 밝혀져 있다.
80년대에 증가폭을 넓힌 외국인 수사는 59년에 전년대비증가율 210%를 기록했으며 그 다음이 110.26%를 나타낸 81년으로 수치상으로도 한 해 동안 43명이 증가한 81년이 최고치로 드러났다.
50년도부터 80년대까지 여자수도자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연도별 평균 증가율로는 60년대 12.16%가 최고치이며 50년대 9.86%, 80년대 5.62%, 70년대 5.40%의 순서를 차지했다.
특히 외국인 수녀보다 한국인 수녀의 인원이 꾸준히 증가, 89년 말 현재 전체 5천6백16명의 수녀 중 96.46%인 5천4백17명을 기록했다.
한국인수녀의 전년대비 증가율은 61년 44.11%가 가장 높으며 그다음이 55년 30.88%, 66년 27.59를 나타내고 있고 수치상으로 많기로는 89년 5백48명, 74년 3백93명, 61년 3백18명 등으로 기록됐다.
외국인 수녀는 미약한 숫자로 증감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중 67년이 전년대비 평균 증가율과 인원수에서도 수위를 차지, 49.75%, 1백1명으로 집계됐다.
54년 대비 89년 전체 수녀증가수는 10.82배인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6백6명이 늘어나 86년이 인원증가 수로는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수녀수는 61년에 1천1백명을 넘어섰으며 67년에 2천2백명을, 77년에 3천명, 86년에 4천5백명, 88년에 5천명을 각각 돌파했다.
※도표Ⅰ 53~89년 한국천주교 교세통계현황
53 59 69 79 89
신자총 수 166,471 417,079 779,000 1,246,268 2,613,267
신자증가 수 250,608 361,921 467,268 1,366,999
성직자 수 247(54년) 437 835 1,133 1,604
수사 수 28(57년) 83 129 192 341
수녀 수 519(54년) 758 2,161 3,200 5,616
신학생 수 199(52년) 244 543 461 1,483
본당 수 138(55년) 244 415 576 776
공소 수 1,000(54년) 1,410 1,884 1,765 1,546
※도표Ⅱ 연대별 평균 증가율 (%)
성직자수 수사 수녀 본당 공소 냉담자 행불자 신학생
50 12.35 89.23 9.86 16.12 6.31 10.91
60 10.46 4.36 12.16 4.36 3.26 17.74 9.66
70 3.14 7.03 4.13 3.91 -0.76 8.59 43.49 0.18
80 3.85 6.94 5.62 3.03 -1.23 5.16 7.42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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