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분별력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여
어둠속을 헤매고만 있으니
세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시편 82, 5
희뿌연 대기 속으로 사람들이 밀려간다.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뜨는 중앙통으로
제가끔 하루의 몫에 매달려
황황히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곳곳 버스 터미널과 남쪽 여객선창서도
목전(目前)의 삶을 보퉁이 하나로 뭉쳐들고
초조하게 휩쓸려 가는 군상(群像)들….
어디로들 가고 있는가
오랜 남루의 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가난이 얼룩진 얼굴과 개기름 번져 속이 매스꺼운 면상이
전의·자유·평등의 거리에서
같은 공기를 숨쉬고 먼지를 일으키며
저마다 생각을 톱질하며 간다.
4월의 하늘이 왜 이렇듯 우중충할까
너무나 많은 욕망이 스모그 현상을 일으켜
하느님의 자연을 더럽혀 놓았다.
보통시민과 급진학생의 목소리가 다르고
노사의 뜻이 부딪쳐 불똥 튀기며
민주화의 여울목에서 복병인 양
서슬퍼런 공안(公安)이 번득이는 걸.
첨예한 날(刀)은 쉬 이빨 빠지고
무딘 날은 녹슬고 말리라.
이러고도 우리 사는 마을이 반석 위에 서고
양바퀴 공존해서 달릴 수 있을까.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바로 나아가게 하며
나뭇가지마다 여린 새순이 돋게 해
은총의 날을 꾸미게 할 것인가.
일어나 깨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소돔과 고모라가 쌓은 죄업(罪業)으로
순식간에 불타 없어진 재앙과
홍해 바다를 건너 구원받았던 백성이
금송아지를 받들어 번제(燔祭)를 드렸던 잘못을
다시금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모든 정황의 정수리를 뚫고
시대의 어둠과 사람의 황막함 위로
가톨릭신문의 소리가 골고루 미쳐야 할 때이다.
기름 부어 성별된 왕이면서도
끊임없이 야훼께 간구한 다윗의 기도를
널리 일깨워 주어야 한다.
하느님 백성 가운데엔
살아 숨쉬는 신앙을,
여직 복음을 접하지 못한 이에겐
구원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는
지상의 등불이 되어야 하리.
예순 네 해 나이테를 감아 우람해진
한국천주교회의 공기(公器) 가톨릭신문이여.
그리하여 봄햇살 속에 나선 사람들이
진실로 서로 평화의 인사 나누고
믿고 도와가며 공평한 몫을 타 갖도록,
마침내는 영원한 참삶을 찾아 누리게끔
하느님의 공의(公義)를 뚜렷이 드러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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