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시대 소외받던 인문학이 다시 시대의 주요 콘텐츠로 부각되고 있다. 인문학 관련 도서들은 베스트셀러에서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강연에서도 인기를 끄는 주제가 됐다. 가히 인문학 열풍의 시대다.
교회 역시 이 인문학의 열기에 함께하고 있다. 교회 내 기관·단체들이 인문학의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인문학으로 풍성한 신앙생활을 가꾸어 보면 어떨까.
산업화시대 소외받던 인문학이 다시 시대의 주요 콘텐츠로 부각되고 있다. 교회 역시 이 인문학의 열기에 함께하며 인문학의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위에부터 인문학 독서를 바탕으로 하는 가톨릭독서포럼, 국내 유일 인문학대학원인 유스티노 자유대학원, 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 인문학 교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인문학이 뭐길래
인문학은 무엇일까.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인문’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및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이 자연계와 사회계의 현상을 경험적으로 접근한다면, 인문학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 사변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그 ‘의미’를 찾는 학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인문학 열풍이 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발표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WHR)에서 우리나라는 157개국 중 57위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34개국 중 32위로 거의 꼴찌다. 우리나라 2017년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2위임을 생각하면 경제발전에 비해 행복감은 상당히 저조하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불행 속에 방황하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 김정우 신부는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요하다”면서 “보리밥 먹다 햄버거 먹으면 성장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성장인가라는 질문에 인문학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 교회와 인문학
오늘날 인문학은 마치 신앙과 별개의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역사적으로도 우리의 신앙을 다루는 신학과 인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사도들의 설교 내용을 가르치며 신앙과 교회 생활면에서 중대한 영향을 주던 교부들이 바로 대표적인 인문학자들이다. 교부시대 이후로도 교회는 수많은 인문학자들을 내면서 인문학을 발전시켜왔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신학대전」에서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시킨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본성은 이성, 정서, 양심 등과 같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지닌 특성을 말한다. 이 말은 하느님이 인간을 은총으로 이끌 때 우리 각자의 인간적 본성을 존중하고, 우리는 본성의 능력으로 하느님께 협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바로 인간의 ‘본성’을 닦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이다.
인문학대학원인 유스티노 자유대학원 원장 최원호 교수는 “교부들은 그 시대의 문화와 사상 속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토착화시켰다”면서 “교부 아우구스티노 성인 같은 분은 ‘서양의 스승’이라고 불리며 최고의 인문학자로 꼽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 신앙 교육의 도구, 인문학
인문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앙 교육의 중요한 도구로 꼽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신앙과 이성」을 통해 “신앙과 이성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다”고 말하고 인문학의 대표적인 학문인 철학을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복음의 진리를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달하는 데 필수불가결의 수단”이라고 전하고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김병수 신부는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초월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인간적으로 다가오셨다”면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이야기하자면 인문학에 가깝다”고 말했다.
교회 내 인문학교육 관계자들은 인문학은 오늘날 삶 따로, 신앙 따로 신앙인들을 위한 훌륭한 신앙재교육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한 이해, 다시 말해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삶과 신앙을 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원교구 제2대리구 복음화2국장 조한영 신부는 “현대의 많은 신자들은 이성적 비판에 익숙하기 때문에 인문학 안에서 신앙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양성하지 않으면 종교 자체에 관심을 잃을 수 있다”면서 “인문학 교육은 자신의 삶 안에서 신앙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 인문학의 무비판적 수용은 경계해야
신앙인에게 인문학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인문학만을 강조하게 되면 자칫 유물론, 무신론적인 사상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신앙과 이성」에서도 “문화적 격변에 따라 일부 철학자들은 진리 그 자체를 탐구하는 일을 포기하고, 다만 주관적 확실성이나 실용주의적 공익성을 취득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게 됐다”면서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가속화시키는 철학 사상을 비판했다.
지속적으로 인문학 독서교육을 전개해온 가톨릭대학교 교수 최대환 신부(의정부교구, 대신학교 지성교육담당)는 “신앙인에게 ‘인문주의’의 자세는 큰 유익을 주지만, 무신론적인 사상들도 있고, 신앙의 계명과 배치되는 윤리적 견해들도 있을 수 있다”면서 “인문학적 사상 모두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앙과 반대되는 사상에 대해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겠지만, 두려움과 원천적인 배척은 답이 아니다”라면서 “대화와 비판적 대결과 존중의 자세가 함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교회 내 다양한 인문학 교육
올해는 교회 내에 더욱 다양한 인문학교육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가톨릭대학교는 국내 유일 인문학대학원인 유스티노 자유대학원(원장 최원오 교수)을 설립했다. 대학원은 지속적인 학문 탐구와 참다운 인간 연구를 원하는 학사 학위 소지자들에게 시대정신에 맞갖은 인문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이다.
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국장 이재화 신부)은 오는 3월부터 매월 두 번째 수요일 의정부 신앙교육원에서 ‘신앙의 눈으로 보는 인문학고전’을 주제로 인문학 강좌를 실시한다. 의정부교구는 이미 수년에 걸쳐 해마다 여름과 겨울, ‘인문학 피정’을 열어 인문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수원교구 제2대리구 복음화2국(국장 조한영 신부)도 3월부터 가톨릭인문학강좌를 실시한다. 총 9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강좌는 수원교구 성남동성당 소성당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2~4시, 의왕시 제2대리구청 성당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7~9시 진행된다.
한국외방선교회(총장 김동주 신부)가 주관하는 ‘성서인문학’도 주목할 만하다. 김병수 신부(한국외방선교회)가 강의하는 이 강좌는 성경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다. 강좌는 매월 첫째 수요일 오후 3~4시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문화관 2층 소성당에서 열린다.
최원오 교수는 “교회는 항상 인문학을 품어 안고 지켜오는 역할을 해왔기에 인문학은 교회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라면서 “인문학은 신앙을 막론하고 모든 이가 다가올 수 있는 만큼 인문학을 통해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가치 지키는 작업을 함께 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