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은 올해로 64살이 되었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60을 넘긴 나이는 막중한 책임이 동반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교회와 더불어 살아온 60여년을 돌아보면서 같은 나이로,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를 찾아보았다. 박정일 주교, 현재 마산교구를 맡고 있는 박주교는 1927년 1월생, 가톨릭신문과 동갑나이인 셈이다. 같은 나이 즉 동갑의 나이는 한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77년 제주교구장으로 입명되면서 주교로 제주를 거쳐 전주, 그리고 현재의 마산교구에 이르기까지 3개교구를 섭렵, 교구장직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활절을 며칠 앞둔 3월 26일, 같은 시대의 동반자 박주교를 만나 가톨릭 신문의 위상을 살펴보면서 이 시대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을 함께 진단해 본다.
- 주교님께서는 동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려운 부탁을 기꺼이 들어 주셨습니다. 가톨릭신문사 모든 가족들과 더불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우선 주교님께 저희 신문에 대해 몇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가톨릭신문은 64살이라는 나이에 비춰 볼 때 크게 성장하지 못한 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간신문에 비해 독자수가 크게 뒤떨어진 점이 가장 두드러진 취약점이라 여겨집니다. 12면에 불과한 지면도 연륜에 비해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 이유를 주교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64살이라는 동갑에 걸려 오히려 좋은 시간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가톨릭신문의 지령이 60을 넘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정말 힘겹고 어렵기만한 시대를 잘 견디어내고 오늘을 맞은 가톨릭신문의 64회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방금 지적하셨지만 12면이 결코 적은 지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스컴의 홍수시대인 오늘의 현실에서는 양적 공세가 오히려 부담을 줄 수가 있으니까요. 그 안에 닫는 내용만 알차다면 면수는 큰문제가 될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신문도 그렇고 아마 대부분의 교회언론매체들이 독자수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신문사 자체가 적극적인 전략으로 독자확보를 하는 것과 더불어 교회전체가 특히 사목자들이 교회매체를 키우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신문사 자체가 교회와 사목자, 그리고 신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기사를 선택하려는 자세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 주교님께서는 가톨릭신문이 현재까지 어떤 내용들을 가장 많이 다퉜고 어떤 부분을 소홀히 했다고 보시는지요. 전국지를 표방해온 가톨릭신문이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느끼신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영성 교리 신학 칼럼 사설 그리고 교회소식을 가장 많이 다뤘다고 보았습니다. 한때는 특정 교구의 주보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으나 지금은 상당히 폭넓게 활동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아직도 지역별 소식의 형평문제는 남아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신문내용전반에 대한 질적 향상에도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계층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신문사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클 것이고 그 점에서 본다면 그동안 가톨릭신문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해외 교포신자들에게 가톨릭신문을 반드시 읽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가톨릭신문은 신학 영성 교리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선생님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너무 후한 점수를 드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 최근 민주화의 열기가 우리사회 전체를 휩쓸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그 같은 호름 속에서 약간의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가 맞물려 가톨릭신문의 비판기능 문제가 거론되기도 합니다. 교회의 언론매체들이 교회내의 비판기능을 가져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은 것 같구요. 건전한 비판은 이제 교회 안에서도 수용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비등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주교님의 견해는 어떠하십니까.
▲교회언론매체의 비판기능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비판’이라는 말 자체에 불만을 갖습니다. 오히려 사실보도 기능이 부족하다는 말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언론매체에 있어 사실보도는 생명이라고들 합니다. 교회언론 역시 사실보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부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이라고 모두 보도를 해야하는가 하는 문제가 걸립니다. 감추어짐으로써 오히려 전체가 이로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실보도가 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저는 교회언론이 교회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도록 권고하고 싶습니다. 가톨릭신문 역시 교회 구원사업에 동참하는 신문으로서 위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교회 언론매체들의 비판기능을 꼭 이야기해야 한다면 하느님 백성의 입원으로서, 교회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첨언한다면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기능에 있어서도 비판내용이 교도권의 그것과 일치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비판기능이 교회의 예언직이 분명하지만 개인의 생각이 전체를 대변하는 식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시정되어야 할 부분은 시정이 되도록 돕는 것이 교회언론매체의 중요한 역할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 한국교회는 지난 몇십년간 눈부시게 성장했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기간 중에 교회의 성장률은 모든 면에서 두드러진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최근 신자증가율이 둔화되고 있고 사제지망율도 낙관만 할 수 없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속적 성장에 제동이 걸린 이 같은 현실을 주교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어떤 걸림돌이 한국 교회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교회의 쇠퇴현상은 세계적 추세라 여겨집니다. 고도의 물질문명이 종교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고나 할까요. 하느님과 만물(물질)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말이 새삼 생각납니다. 물질만을 뒤쫓다보니 하느님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지요. 신자인 우리들에게는 종말론적 구원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잘사는 것이 최종목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잘사는것이 최종목표인 기복신앙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종교가 줄 수 있는 역할은 극히 미미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어려움·핍박 속에서 믿음이 강화되었고 성장했습니다. 핍박, 가난, 전쟁, 억압 등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역사가 교회성장의 요소가 된 셈이라면 지나친 진단이 될까요.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 같은 요소가 많이 축소되었고 사회 전반에서 일고 있는 민주화의 기운 역시 종교적 심성을 야화 시켰다는 분석을 해 볼수 있습니다.
- 지난 몇 달 간 밖으로는 걸프전, 국내적으로는 수서 뇌물사건 그리고 최근에는 낙동강오염을 비롯 ‘물 사건’이 온통나라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케 하는 전쟁과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키는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새삼 종교의 나약함을 보게 됩니다. 상실되어가는 인간성, 불신풍조, 미움, 갈등이 괴력을 발휘하는 이 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어떤 것이어야 하며 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요.
▲우선 우리 크리스천 모두가 하느님을 증거하는 증거의 삶을 사는 것이 시급합니다. 종교인들이 종교인답게 살지 못하니까 종교의 정신적 영향력이 축소되었다는 사실을 반복해 강조하고 싶습니다. ‘소금이 짜지 않고, 밝아야 할 빛이 흐리다면’ 그 소금과 빛은 아무 쓸모가 없지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역할, 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됩니다.
정의와 평화의 실현, 윤리 도덕의 향상, 문화발전을 위한 근원적·원칙적 방향을 고회는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교회가 정신적 가치를 부여해 주는 ‘정신운동’을 보다 적극 펴 나갔으면 합니다. 물론 교회, 신자가 그 정신대로 변화하고 살아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입니다. 한국교회 2백주년 기념해에 교회가 시작한 ‘정신운동’을 지금까지 계속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해요.
- 최근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난해부터 우리교회도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접근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지켜야한다는 측면에서 교회의 역할은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까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환경문제를 다루어 보신 주교님께서는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시리라 봅니다만 교회의 노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매일처럼 터지고 있는 사건들은 우리의 환경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무참히 파괴되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은 존재 자체마저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지요.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몫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문제는 생명문제이고 이는 바로 교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90년 교황성하의 평화의 날 메시지도 환경문제가 핵심주제였고 우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보다 앞서 전문위원회를 조직,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관장하고 있는 마산교구의 예를 들면 구역반모임에서 실질적인 환경문제를 다루었는데 상당한 호응과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이 문제야말로 교회가 앞장서 위험성을 경고하고 실천적 차원에서 선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 금년은 노동헌장 반포 1백주년이 되는 해로서 전세계 교회가 이들 기념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고 또 한국교회도 기념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교회는 사회회칙, 즉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아는 것이 평신도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만….
▲교황 레오 12세가 반포하신 「노동헌장」은 효시입니다. 교회의 사회적 사명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노동헌장을 비롯,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대한 우리교회의 무관심과 교육 부족을 지적하신 질문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주교회의와 교회당국이 교회서 내에 사회교리부분을 삽입, 모든 신자들이 배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현대는 억지가 통하는 시대입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인간을 지배하고 이 때문에 사회각부분에 걸쳐 질서가 파괴되고 윤리가 상실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정치단체도 사회단체도 아닌 교회가 이 시대의 참된 지표로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또 살기 위해서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알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주교님께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제주, 전주 그리고 현재의 마산에 이르기까지 3개 교구장을 역임, 현재에 이르고 계십니다. 특히 마산교구는 올해가 교구설정 25주년이 되는 해라고 알고 있는데 25주년 계획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아울러 기초의회 탄생으로 이른바 지방시대가 열리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 3개 교구장을 관장하신 주교님의 관심은 크시리라 생각됩니다. 지방시대 개막에 따른 주교님의 충고를 듣고 싶습니다.
▲3개교구를 두루 다닌 주교는 아마도 제가 처음일 것입니다. 경험적 측면에서는 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산은 급속도로 발전된 도시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공단지역이 상당히 많고 공해문제도 심각합니다. 부동인구가 많다보니 신자화율도 3.7%에 불과한 실정이고 따라서 복음화가 시급합니다. 지난해부터 분비해온 교구설정 25주년의 목표를 ‘그리스도교회의 모습을 찾아나가자’고 세운 것도 여기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회의 모습을 찾는 것은 곧 ‘쇄신’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복음의 정신으로 살면 복음화는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확신합니다.
기초의회 선거로 지방시대가 가까이 다가온 것은 사실입니다. 지역 간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 지방자치는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칫 ‘지방자치’가 ‘집단이기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체 안에 하나로서 열려있는 자세가 필요하고 책임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합니다. 교회야말로 지방자치제도의 본 고장이 아닙니까. 개별교회가 모여 하나의 교회를 이루듯이 지방자치제도 운용은 공동체를 생각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 복음화 2천년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로 서는 복음화 3백년대에 진입한 상황에 있습니다. 이 중대한 시기에 교회는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외형적 성장에 비해 내적 성숙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스스로 진단하는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말씀해 주십시오.
▲첫 번째로 말씀드릴 것은 교회가 자기의 모습, 설 자리를 바로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것은 바로 쇄신이며 교회의 쇄신 없이는 발전도 복음화도 무의미합니다. 다음은 현대사회에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해 토착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교회가 바로 이 땅, 이사회에 보다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함입니다. 사회와 더불어 사는 교회가 그 사회 안에서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선 토착화는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또 한 가지는 교회의 본질적사명인 ‘선교’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부수적인 일에 집중하다보면 본질적인 것이 잊혀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한눈을 팔지 말라는 얘기지요.
- 끝으로 동갑이라는 입장에서 가톨릭신문에 대한 충고의 말씀을 주시기 바랍니다. 가톨릭신문을 비롯 교회 언론매체들이 어떠한 위상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고견을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을 충고로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봉사하는 신문’ ‘모든 이에게 유익한 신문’ ‘공정한 신문’ ‘형평을 지키는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교회 언론매체에 종사하는 모든 분에게는 일 자체가 하나의 ‘사도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면 여러분들을 통해 나오는 모든 메시지는 분명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찬 복음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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