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죄를 지으며 산다. 하루도 죄를 짓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곧이 곧대로라면 이 세상자체가 거대한 교도소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중 극히 일부가 이른바 ‘교도소’를 간다. 강도 상해범에서 폭행, 살인범, 그리고 소년범에 이르기까지 ‘몹쓸 죄’를 짓고 영어의 몸이 되는 ‘교도소사람들’. 어쩌면 이들은 가장 나약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최남순 수녀는 세상이 이들을 가장 나약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최남순 수녀는 세상이 이들을 거부하고 외면할 때 이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마음을 활짝 열어온 사람들 중의 한사람이다. 20여 년간 교도소사람들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어온 최수녀는 시를 쓰는 구도자답게 이들의 가려진 영혼과 본성을 되살려 내는데 자신을 바쳐왔다. 본보가 연재를 시작하는 ‘교도소일기’는 사회 고독한 외침을 담고자한다.
○○구치소에서 14세의 소년 이군을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은 나이에 비해 키가 훤칠하게 크고 체격이 아주 좋아 운동선수 같아 보였다. 머리를 푹 숙이고 있어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약간 망설지여며 가엾게 생각됐다. 퍽 순진해보였고 졸지에 당한 큰 사고로 온통 얼이 빠져 있었다. “누가 면회 오시니?”하고 묻는 말에 “아무도 없습니다”고 했다. 무단가출한 아들이 불의의 큰 사고에 접한 것을 집에선 아직 모를 뿐 아니라 전혀 행방을 모르고 있는 때였다.
이군은 지방 모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인데 그 학교 체육선생님이 학생 개인의 의사나 적성 등은 전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씨름선수 훈련을 시켜왔던 것이다. 체격에 비해 여성적이고 소심한 그는 죽어도 씨름이 하기 싫고 견딜 수가 없어서 학교가 싫어졌고 그래서 차츰 결석하게 되었다. 그는 시골에서 큰 과수원을 하시는 젊은 부부의 맏아들이었다. 자녀들과 별로 대화가 없었던 부모님은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들의 심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다. 학교는 가기 싫고 부모님은 아들의 고민은 아랑곳없이 학교 안 간다고 야단만 치고 한 지붕 아래 단한사람도 그가 당면한 고민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이가 없기에, 외로워 한순간도 살수가 없어서 가출하여 서울로 왔다고 했다.
낯선 객지에서 우선 침식이 막연한 그는 태능쪽 어느 생산공장에 공원으로 취직했고 그곳 합숙소에서 숙식하며 살고 있는데 함께 거취하는 아저씨가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치근거리며 귀찮게 굴었다.
그런 일이 지겹게 여겨졌고 매일 밤마다 반복되던 어느 날 밤 그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그만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어 엉겁결에 손에 잡힌 물건으로 돌아서며 반사적으로 한번 내려친 것이 단숨에 숨지고 말았다. 그는 얼굴을 푹 숙이고 공포에 떨며 처음엔 묻는 말에 대답도 없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서 수녀를 처음 본다는 아주 순진하고 때 묻지 않은 아이였다.
교무과에서 상담을 하면서 특별히 슬라이드도 보여주며 상담이 거듭됨에 따라 그는 차츰 질문도 하고 나와 친해져 갔다.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고 웃기도 했다.
교무과장님의 특별 배려로 일반 성인들 틈에 끼어 유일하게 혼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법정에서 사건의 모든 사실이 정상 참작이 되어 2년6월형을 받고 소년 교도소로 이감 됐다. 나는 목사님이신 그곳 소장님을 찾아가 특별히 부탁드려 검정고시반에 들어가게 알선해 주었다. 법적 입장에서 볼 때 재판 중에 있는 미결수는 교화 대상에서 제외된다. 고로 구금에만 중점을 두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미결 때부터 교화의 기초작업이 대단히 중요하다. 초범자 일수록 초조와 불안에 떨며 안절부절 못하고 큰 어려움 중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는 때여서 상담을 통하여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빨리 찾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소년이 걸어온 길과 끔찍한 사건을 놓고 볼 때 많은 것을 반성하고 생각하게 된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할 이 학생이 왜 구치소에까지 와서 불안에 떨며 고생을 해야만 했을까? 첫째 부모와의 대화 두절, 몰이해, 그리고 선생님의 일방적인 교육태도, 공장합숙소 아저씨의 지각없는 행동 등 기성세대가 자라나는 어린싹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참으로 심각하다.
불행 중 다행히 구치소 교무과장님의 갚은 관심과 배려, 또 수녀의 역할, 소년교도소의 교육시설 등의 혜택으로 재소기간을 통하여 대입 검정고시와 예비고사를 거쳐 대학 입학관계로 가석방 되어 지금은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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