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기적을 바라고 있다. 아니 사람들이 기적을 찾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 같은 기대에 부응이나 하듯 기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나타나곤 했다. 기적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 성모발현이다. 루르드, 파티마, 바뇌 등등 널리 알려져 유명한 발현지로부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발현지에 이르기까지 성모관련 발현지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유고슬라비아의 ‘메주고리에’ 역시 ‘성모발현 사건’으로 매일처럼 기적을 찾는 이들로 붐비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아직 교회의 공식적인 인준을 받지 않은 상태지만 작고 보잘것없으며 평범하기만한 이곳 메주고리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신자들의 기도 속에 아침이 열리고 저녁이 마감된다. 과연 이 메주고리에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보고자하는 기적과 맞대면 하고 있을까. 교회당국의 판결이 유보된, 그래서 기적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메주고리에를 취재차 방문했다.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한 유고슬라비아, 변화의 틈바구니에서 새롭게 기지개를 켜고 있는 교회들, 그리고 메주고리에의 사건들을 통해 동구교회의 오늘, 그 현주소를 살펴보았다. 아울러 동구권 중에서 우리나라와 제일 먼저 수교함으로써 친근감을 부러 일으킨 헝가리를 방문, 개방과 개혁의 밑거름이 되었던 교회의 역할을 조명해 본다.
변화는 몸살을 동반하는가. 유고슬라비아가 최근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모자이크의 나라 유고의 전통은 어쩌면 이미 예견된 것 이었는지 도 모른다. 2개의 자치구가 있고 4개의 언어가 사용되며 다섯 개의 민족들로 구성됐는가 하면 3개의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유고는 6개의 공화국으로 이뤄진 하나의 나라다. 모자이크의 나라라는 애칭(?)이 걸맞은 이 나라의 공식국명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지난 3월 9일 발생한 유혈사태에 이어 계속되고 있는 혼란은 모처럼 일기 시작한 민주화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 소련을 필두로 줄줄이 개방과 개혁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받아들인 동구권 중에서도 일찍이 개방적 분위기를 맛보아온 유고의 혼미는 변화의 어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민주화라는 ‘감기’에 민족분규라는 ‘몸살’이 겹쳤다고나 할까.
유고의 6개 공화국 가운데 크로아티아공화국이 바로 메주고리에가 속한 공화국이다. 작고 보잘것없으며 가난하기만한 메주고리에는 이제 유고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마을중의 하나가 됐고 일 년 내내 이곳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신앙인들로 붐비는 장소가 됐다.
3월 9일부터 일기 시작한 소요사태로 현재의 분위기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메주고리에는 유고의 개방을 앞당긴 일등 공신으로 손꼽혀 마땅하다는 게 사람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이 같은 지적은 메주고리에를 직접 방문해본 이라면 쉽게 수긍을 할 것이다.
최근에 합세한 한국 등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로 메주고리에는 가히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사람의 물결이 유고의 변화에 기름을 부었다고 혹자는 진단하기도 한다.
기자가 방문했던 지난해 10월과 11월은 개방의 물결이 동구 전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직후였다. 이 시간적 상황 때문에 유고, 그리고 메주고리에의 분위기는 서방세계 사람들이 몰고온 부의 냄새, 개방적 자세 등과 맞물려 가일층 고조된 때이기도 했다.
메주고리에의 방문은 우연히 주어진 일종의 행운이었다. 새로운 여행코스를 개척하기 위한 스터디 그룹에 운 좋게 합세했지만 나에겐 하나의 모험과도 같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곳이라는 현실적 여건 때문에 약간의 망설임이 내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순례’가 아니라 ‘취재’라는 타이틀이 이 제한적 사고의 한계성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메주고리에는 생각보다 훨씬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유고의 대표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4백56㎞,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채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불과 1백48㎞가 떨어진, 유고의 신데렐라 메주고리에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의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짙푸른 아드리아해를 좌우로 끼고 도는 이자동차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서도 손색이 없는,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여주었고 2시간 30분을 길거리에 버린다 해도 전혀 아까울 것이 없었다.
굳이 공식적인(?) 순례자가 아님을 기억하면서 들어선 메주고리에 입구에서부터 융통성 없는 나의 이 고집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형성하는 묘한 분위기에 우선은 압도당했고 메주고리에는 그것이 장점인 듯 했다. 그랬다. 메주고리에는 기도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장소 같았다. 마을 전체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있는 곳, 이것이 메주고리에가 나에게 준 첫 번째 인상이었다.
유고슬라비아에 들어서면서 받았던 어떤 중압감이 이곳에서는 없었다. 오히려 편안하고, 어디엔가 기대하고 싶은 감정을 유발시키는 곳이 메주고리에였다.
‘메주고리에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1981년 6월 24일에 시작됐다는 것이 이곳의 공식적인 견해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바대로 미르야나 ‘드래지새비치’라는 16세 소녀와 이빈카 이반코비치라는 15살의 소녀가 ‘포드브르도산’에서 보았다는 ‘한 젊은 부인의 출연’에서부터 ‘메주고리에 사건’은 시작됐다는 것이다.
첫 번째 날에 해당하는 6월 24일, 두 번의 출현을 시점으로 이 젊고 아름다운 부인은 25일과 26일, 27일 계속해서 6명의 소년 소녀들에게 나타났고 이런 형태의 현상은 10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메주고리에 사건’의 간략한 줄거리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은 이 사건이 얼어나고 있는 현장, 메주고리에의 입장이며 이 지역을 관장하고 있는 성 야곱(제임스)본당 측의 확고한 견해이기도 하다.
마을안쪽으로 깊숙이 자리한 ‘포드브르도산’은 붉은 빛깔의 흙속에 뾰족한 돌들이 잔뜩 숨어있는 나지막한 야산이었다. 현재까지도 젊은 부인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는 3명 가운데 한사람인 비치카 이반코비치(상시 17세)의 집에서 약 15분 정도를 오르는 거리였다. 아름다운 부인의 첫 출현지라는 이곳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소박한 십자가가 특별한 장소임을 순례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비좁은 산길 중간에 서있는 이 십자가의 이음새 부분을 비집고 촘촘히 박혀있는 빛바랜 쪽지들이 순례자들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기복신앙적 분위기에 젖어있는 내 안목으로도 조금은 생경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쪽지속에는 순례자들의 기원과 소원 그리고 축복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담겨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곳에서 다시 10분여를 산쪽으로 올라가면 정상이보이고 두 번째 출현 장소가 나타나게 된다. 넓게 트인 공간 한복판에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순례자들을 맞고 있었다.
가로 1.5m, 세로 3m가 됨직한 이 십자가를 향해 포르투갈 에이레, 이태리 등지에서 왔다는 순례자들이 각자 자기들의 언어로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험한 돌산을 오른 한 어린이가 지루하기만한 이 기도시간을 양전히 참아내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성직자 또는 신자의 선창에 따라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이들의 자세는 경건하기조차 했다.
일명 선견자라고 불리는 목격자 중에서 비치카와 이반 두 사람이 순례자들과의 대화시간을 갖는 것도 메주고리에가 갖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였다. 포드브르도산 입구에 자리한 비치카의 집은 아침 일찍부터 선견자의 증언을 듣고자 몰려든 순례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매회마다 20여 분간 진행되는 이 증언 시간은 순례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언어별 통역자가 딸려있었다.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금은 27세의 성숙한 처녀가 된 비치카는 이들이 성모라고 증언하는 아름다운 부인이 응답의 말을 들려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안내자가 일러주었다. 여기서 사람들과 대화중에 언급된 비치카의 증언부분을 옮겨본다. “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기도하여라”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여라” “회개와 보속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라”
오후에 순례자들 틈에 끼어 방문한 또 한사람의 선견자 이반 역시 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것을 성모님께서 바라셨으며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촉구했다고 증언했다. 이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부인의 출현을 목격했다는 다른 선견자들의 증언들도 한결같이 회개와 기도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이 증언하고 있는 내용에 의하면 이 아름다운 부인은 성모 마리아가 되어야 마땅한 것 같았다. 여러 가지 환시를 동반하기도 한 발현 중에서 이 부인은 가시관을 쓰고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발현했다는 사실이다. 선견자들은 슬픔에 잠긴 그리스도를 보았고 성모는 “이는 내 아들이다. 인간을 위하여 그가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회개가 메시지의 핵심을 이루고 있듯이 이들이 증언하는 성모는 이세상이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인간들이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모체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태아들을 도덕성 타락의 극치로 지적한 성모는 교회가 ‘총 없는 전쟁’으로 죽어가는 어린영혼들을 결코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주제로 여겨지는 이 메시지에 대해 순례자들의 질문이 가장 많이 쏟아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성모발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통칭 아름다운 부인으로 불리는 젊은 여인의 모습일 것이다. 메주고리에의 아름다운 부인은 ‘중간정도의 키에 나이는 열아홉이나 스무살 가량’으로 증언이 모아지고 있다. 밝고 투명한 회색빛깔의 옷에 눈이 부시도록 ‘흰 베일’을 쓴 전형적인 모습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면 베일 아래의 ‘새까만 곱슬머리’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6명 또는 7명의 소년 소녀들이 보았다는 이 아름다운 여인 발현사건은 첫 목격으로부터 3일째 되던 날 정부의 개입으로 이들이 경찰서에 소환돼 심문을 받음으로써 실제사건으로 발전한다. ‘노동자자주관리제도’를 도입하는 등 ‘유고형 시장 사회주의’를 실시해오긴 했지만 엄연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테두리에 있던 유고의 형편에서 볼 때 이 같은 소동은 법적제재를 받아 마땅한 ‘불온적 사건’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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