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 성음악대학 합창단 내한연주가 모두 막을 내렸다. 3월 24일 서울 청담동성당과 중립동성당 성주간 전례를 그레고리안 성가로 선보이면서 시작된 이번 내한연주는 기도로서의 그레고리안 성가의 진면목을 한국신자들과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서울을 비롯 대구 부산 전주 마산 그리고 인천 등 전국 각 교구를 순회하면서 보여준 그레고리안 성과와의 만남은 신자들에게는 전례음악의 진수를, 일반인들에게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경이로움을 함께 보여준 기회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은 3월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제3체육관(역도경기장)에서 타종파 및 종교계 지도자, 음악계와 학계 등 각계인사를 초청한 가운데 열린 그레고리안 성가의 밤 연주를 지켜본 서울대 음대 이강숙 교수의 음악평이다.
지난 3월 25일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로마교황청 성음악대학 합창단이 그레고리안 성가의 밤을 베풀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과 후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음악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집회에 참여하려고 사람들이 모인 것 같은, 필자에겐 별로 달갑지 않은 분위기가 음악회가 시작하기 전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자 마자 올림픽 역도경기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음악은 반드시 음악회장에서만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에서나 음악은 인간에게 선사되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참으로 성스럽고 아름다운 음악이 음악회장이 아닌 역도경기장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이 세상에 있을까 싶었다.
연주에서는 훌륭한 앙상블이 중요하다. 로마 교황청 성음악대학 합창단만큼 완벽한 앙상블을 구사하는 합창단은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그들의 앙상블은 훌륭했다. 여러 사람이 노래 부르는데, 단 한사람이 참으로 단 한 사람만이 노래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여러 사람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었기에 소리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여럿’을 상징했다. ‘하나’인데 ‘여럿’을 상징하는 인간이 위대한 인간이듯이. ‘하나’인데 ‘여럿’을 상징하는 음악이었기 때문에 이날 밤의 음악은 위대한 것이었다.
통념적인 박자 같은 것은 없었다. 물론 기능화성법적 장치라든가 교향악적 매체같은 것이 관여되는 화려한 반주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영혼의 호흡만이 있을 뿐이었다. 소리를 통한 영혼의 흐름뿐이었다. 벨칸토 창법 운운할 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통상적 목소리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소리였다. 그러한 소리가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었다. 비록 신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냥 막연하게 하느님께 겸허하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하는 소리였고, 그러한 소리의 흐름이었다. 인간이 관여된, 인위적 목소리를 음악제 매체로 삼는다기 보다, 신이 원래 인간에 준 태초의 목소리로, 상장을 초월할 정도의 아름답고 참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음역이 지나치게 과다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바다와 하늘같은 그 깊이와 넓이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의미를 지닌 선율들의 진행들로 부터 거시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나 무아지경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믿어졌다. 마음속으로 시종일관 “아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생각만을 하면서 음악을 들어 본, 참으로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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