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신간과 공간의 은혜 안에서 성장, 성숙한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생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시간과 장소는 기억하고 삶을 되새기며 보람된 삶을 전망한다. 예컨대 생일, 결혼한 날, 기일, 민속의 날들, 국경일 등.
종교적 존재인 인간은 종교의 차원에서 이와 같이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일이나 축일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과 의미에서 이루어진 날들이다.
■주일과 축일의 개념
1. 주일
낱말의 의미대로 주님의 날이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고 공경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다(묵시 1,10). 주일이라고 불리기 전에는’주간의 첫째 날’로 호칭되었다(마르 16,2:요한 20,19:사도 20,7등).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에 돌아가시므로 제자들이 슬픔과 공포에 싸여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 속하시지 않고 부활하시어 살아계심을 확인시켜 주신 날이 샤발 다음 날로 되었기 때문이다. 즉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날로 경축하던 샤발 다음날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구약의 샤발이 아니라 새로운 계약을 맺어주신 예수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제자들을 위로하여 주시기 기쁨과 희망, 죄의 용서와 평화를 베푸신 ‘주간의 첫째 날’이 성스런 날이고 경축해야 할 날이 되었다.
2. 축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스런 인간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하여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신 ‘파스카의 신비’가 축일 중에 축일이 된다. 그것이 곧 신약의 과월절인 그리스도의 약속대로 당신의 성령을 사도들에게 내려 주시어 세속의 어떤 세력이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공적으로 증가한 ‘오순절’ 즉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가 죄에서 해방되고 죽음을 면하게 된 구원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더욱 가까이 의식되고 선포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증인인 교회는 역서 안에서 여러 기념사건들을 경축하게 되었다. 강생의 신비를 기념하는 성탄 대축일과 우리의 영적 양식으로 몸과 피를 내어주신 성체성사 기념 대축일, 인류 구원사에 가장 긴밀하게 동참하신 성모 마리아의 기념일인 ‘성모 영보’ ‘하늘에 올림을 받으심’ ‘원죄 없이 잉태되심’ 등의 대축일들과 기타 성서에 나타나는 여러 사건들을 기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웅적으로 증거하고, 일생을 바친 많은 성인성녀들의 기념일 등이 있다(전례헌장 102~111).
■주일과 축일의 의의
우리 생활에 있어 경축일에는 각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상응한 행사를 함으로 뜻있게 보낸다. 그러면 주일과 축일을 어떻게 하면 뜻있고 보람 있게 지낼 수 있을까? 교회는 신도들에게 적극적 방법과 소극적 방법을 통하여 구체적 규정을 마련하였다.
첫째, 주일과 축일은 인류의 구원이 성취된 파스카의 신비를 즉 구세주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고 이로 인하여 베풀어지는 은혜를 받도록 합당한 예배를 드린다. 가장 합당하고 완전한 예배는 미사성제를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모든 신도들은 주일과 축일에 미사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둘째, 바르고 참된 예배를 드리는데 방해되는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상적 육체노동이나 번거로운 일들(소송, 매매 등)을 피하고 기도생활에 적합하거나 심신의 휴식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주일과 축일이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지 그리스도인이 주일이나 축일을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마르 2,27-28 참조). 한국 주교단은 신자들이 주일과 축일을 잘 지낼 수 있도록 두 차례에 걸쳐 가르침을 발표하였다(‘주일 성화와 사목에 관한 주교회의지침’ 1979년 4월 27일: ‘주일 파공과 금육재 관면 취소에 즈음한 담화문’ 1989년 10월 19일)
■주일과 축일의 파공(罷工)과 주일성화(聖化)
1, 역사적 개관
주일을 뜻있게 보내기 위하여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주님의 만찬’을 거행 했으며(사도 20,7:2,42:1코린 11,23-34참조) 특별한 생활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구약의 샤발에 견주어 여러 가지 생활 지침들이 나왔다. 특히 노예제도가 있던 당시 노예들을 그 힘든 노동에서 면제시켜주어 주일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그리스도인의 평화와 안식의미에 상치될 수 있는 소송행위나 시끄러운 시장 매매 행위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율법주의적 샤발관행은 신랄하게 비판하고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을 경계했다 (유스티노 담화 12,2). 창조주 하느님도 천체도 쉬지 않고 운행한다고 강조하며 주일과 축일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여흥에 도취하는 것을 경고하였다. 샤발 지키듯 일을 기피하는 것은 미신행위나 다름없다고(유스티노 담화 23,3:29,3)했으며 육체적 노동을 안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의미가 없다고 했다. 춤추며 노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루 종일 땅파는 것이 건전하다고까지 했다(아이구스티노 설교 9,3). 한마디로 주일의 의미를 살리는데 중점을 두었었고 전례를 통해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요했다.
2. 시대적 변화와 주일 파공
과거 농경 사회의 문화는 주일과 축일을 공동으로 지내는데 무리가 없었으나 현대는 사회의 산업화, 도시화, 다원화로 인하여 일률적인 예배의식을 갖추기가 힘들어 졌다. 이 때문에 토요 특전미사도 허용된 것이다. 사회의 분업화, 다원화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들은 그의 직업과 소명상 대부분이 쉬는 날에 더욱 바쁘거나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교통과 통신에 근무하는 사람, 공장에 있어서 24시간 중단 없이 작업이 진행되는 곳, 병원이나 국방과 치안에 종사하는 이들, 약국이나 식당업이나 기타 봉사업에 종사하는 이들 등.
그러므로 파공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보다 주일과 축일의 의미를 깨닫고 이를 선포하며 이에 걸맞은 삶이 중요하다 :주일은 ‘주님의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로 죽을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삶이 약속된 희망의 날이며(전례102):죄의 용서와 암흑이 극복된 날이고(전례106):간사와 찬미와 축제의 날로서(전례42):구원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와 함께 가장 완전한 예배인 미사성체를 봉헌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누가 직업일로 주일에 쉬지 못할 때 자기의 정기휴일을 주일로 지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이렇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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