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기획/주님 따라 사서 고생] ① 호스피스 봉사자 김순애씨
“아들 떠나고 힘들었던 시간들… 기도·봉사로 위로받았죠”
뇌경색 아들 돌보며 봉사 시작
40대 초반부터 15년째 활동 중
“환자들 마음까지 돌봐주고파”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호스피스 봉사자 김순애(오른쪽)씨가 환자에게 발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가 돌아왔다. 교회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며 이 시기를 보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에 따라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희생과 극기를 실천하기 위해 사서 고생하는, 바로 십자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순 시기를 맞아 십자가를 자처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를 향해가는 이들을 만나봤다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의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은 고요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복도 한켠에서 열린 다도교실에서 풍기는 고소한 무차 향기와 간호사가 환자에게 건네는 일상적인 농담과 웃음소리는 병원이라기보다는 사랑방을 연상시킨다.
말기질환 환자들이 모인 곳이지만, 그들에게 평안하고 안락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병원 관계자들의 노력이 더해져 병동은 따뜻한 봄기운으로 가득 채워졌다. 환자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자의 얼굴도 봄꽃처럼 밝다. 목욕이나 발마사지, 손톱 정리 등 세심하게 챙길 게 많지만 자신의 가족처럼 환자를 대하는 봉사자들의 얼굴에서는 힘든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2월 28일 인터뷰를 위해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을 찾은 날도 병실 한 곳에서는 환자의 발마사지가 한창이었다. 호스피스 봉사자인 김순애(데레사·56·제1대리구 봉담성체성혈본당)씨는 “발이 너무 예쁘시네, 여기는 아프지 않으시죠?”라며 꼼꼼히 환자의 기분을 살핀다.
성빈센트병원에서만 9년간 봉사해온 김순애씨는 호스피스 봉사팀장을 맡으며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을 책임지고 있다. 40대 초반부터 시작해 15년간 봉사에 열중해 온 그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저는 30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요. 그때 당시 아들이 많이 아팠거든요.”
결혼 후 선물처럼 귀하게 찾아온 아이는 뇌경색을 앓았다. 먹고 듣고 말하는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했고 열네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병간호를 하면서 가정 호스피스에 교정 봉사까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다 했어요. 그때는 몸을 혹사시키면서 힘든 마음을 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아들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아들이 곁을 떠나고 나서도 봉사는 계속됐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위로를 받았고, 하느님과 만날 수 있었다고 김씨는 회상한다.
“젊은 시절에 하느님은 어렵고 무서운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가 아프고 나서 이냐시오 영성을 배우고, 신학원과 성경세미나를 다니면서 하느님을 찾다보니 어느새 제 옆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신앙적인 채워짐은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전보다 편하게 아들을 보내줄 수 있게 됐다.
김씨는 “아들이 떠나고 한동안은 아들을 업고 기저귀를 가는 꿈을 매일 꿨다”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면서 서서히 힘들었던 기억이 잊혔고, 마음이 전보다 편안해졌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호스피스 봉사를 하며 다양한 환자들과 만났지만 더욱 마음이 쓰이는 것은 20대 젊은 환자라고 말한다.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비슷한 또래였을 20대 환자들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암투병을 했던 22살 아가씨를 돌본 적이 있는데,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몸과 마음이 많이 치유됐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수난과 죽음을 맞았고, 사순시기에 우리는 이를 묵상하고 기도한다. 40일간 참회와 희생, 극기를 경험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리스도 부활의 순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다. 희생과 극기로 단련된 인생의 사순 시기를 보낸 김씨는 부활을 앞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인생을 계획하고 있다.
“환자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돌보는 봉사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겠죠. 앞으로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봉사에 필요한 공부도 꾸준히 해서 오랫동안 봉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