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기획-사순 시기에 찾을 만한 십자가의 길] (1) 남양성모성지
고난의 길 묵상하며 생명수호 위해 기도하는 곳
성당 입구 왼쪽 길 따라가면 큰 벽 같은 십자가의 길 만나
낙태에 대해 속죄·보속하며 주님 수난 묵상할 수 있어
성모상 옆에 낙태아기 무덤도
남양성모성지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 중 제7처.
■ 십자가의 길
사순 시기의 대표적인 기도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도는 십자가의 길이 아닐까. 십자가의 길 기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십자가의 길은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교회의 신심행위다.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간 길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일어난 주요 사건을 표현한 성화나 조각을 따라가면서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십자가의 길의 기원은 초세기 교회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길,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묻힌 자리를 순례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억했던 것이다. 물론 현재와 같은 기도가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수난 사건이 일어난 각 장소를 따라 행렬하던 모습은 오늘날의 십자가의 길 기도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중세시기를 지나면서 ‘십자가의 길’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이 ‘십자가의 길’에 큰 관심을 두고 참여했다. 성인들은 이 순례의 여정을 단순히 기억에 그치는 순례가 아니라 심신을 수련하는 기도로 여겼다.
오늘날의 십자가의 길처럼 ‘처(處)’를 만들고 기도하는 모습은 12세기경부터 나타났다. 예루살렘 성지순례가 이뤄지면서 순례자들은 각자 자신의 도시에도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을 본 딴 모형, 바로 ‘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는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은 길에서 그리스도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장소다. 특히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나 경당에 이런 처들이 설치돼 십자가의 길 기도가 널리 퍼졌다.
1688년 복자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은 프란치스코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하고, 이 기도를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를 허락했다. 1694년 인노첸시오 12세 교황도 이 전대사를 확인했고,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모든 신자들이 이 전대사의 특전을 누릴 수 있도록했다. 1731년 클레멘스 12세 교황은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때 십자가의 길이 오늘날과 같은 14처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십자가의 길은 19세기에 이르러 전 세계로 퍼졌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기도로 특별히 사순 시기에 널리 거행되고 있다.
우리 신앙선조들도 이 십자가의 길을 열심히 바쳤다. 신앙선조들은 ‘십자가의 길’을 ‘성로선공’이라 불렀다. 신앙선조들은 기도를 ‘신공(神功)’이라 불렀다. 하지만 ‘십자가의 길’에는 선행이나 선업(善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존경할만한 행동 또는 찬양할만한 업적을 뜻하는 ‘선공’이라는 말을 붙였다. 신앙선조들은 ‘십자가의 길’을 그저 입으로 외는 기도로 여긴 것이 아니라, 예수의 수난과 고통, 죽음을 묵상하는 ‘실천’으로 여겼던 것이다.
남양성모성지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 옆 낙태아기의 무덤과 과달루페 성모상.
■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
현대에는 대부분의 성당에서 십자가의 길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특색 있는 십자가의 길이 있는 교구 내 여러 성지와 성당을 순례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바친다면 그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사순 시기에 찾을 만한 교구 내 십자가의 길을 소개한다.
남양성모성지(전담 이상각 신부) 성지 성당 입구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큰 벽처럼 생긴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을 만날 수 있다.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은 수없이 일어나는 낙태에 대해 속죄·보속하고 낙태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고자 마련한 십자가의 길이다. 성지는 십자가의 길 뿐 아니라 과달루페 성모상과 낙태아기의 무덤도 함께 조성했다.
과달루페 성모상은 1531년 멕시코에서 발현한 마리아의 모습을 조각한 상이다. 과달루페에 발현한 마리아는 검은 띠를 두르고 있는데, 이는 멕시코 현지인들이 임신했을 때 두르는 띠다. 이에 신자들은 과달루페에 발현한 마리아에게 생명수호를 위한 전구를 청하고 있다.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 조각에는 기도문이 적혀 있어 별도의 기도문을 가져가지 않아도 십자가의 길을 봉헌할 수 있다. 또 성지는 지속적으로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를 바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생명수호를 위한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책을 판매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