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열여섯살, 오 아무게 입니다. 제 위로 형이 둘 있고 제가 막내거든요. 형들은 항상 성적이 상위권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못하거든요. 돌대가린가봐요. 부모님들의 나에 대한 과중한 기대에 도무지 부응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을 맞으면서 집을 나왔습니다. 서울로 와서 할일 없이 방황하며 무작정 돌아다녔는데 돈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때 저와 처지가 비슷한 여고생을 공원에서 만나게 된 겁니다. 둘이 값싼 여인숙들을 전전하면서 동거를 하는 동안 재수 없게 임신까지 됐어요. 서로가 합의한 결과 적당한 장소에서 동반 자살을 하기로 결심 했어요” ‘너를 먼저 잠들게 하고 나는 경찰에 가서 자수한 뒤 사형수가 되어 네 뒤를 따라 갈게’하자 김양은 아무 말 없이 오군에게 살색스타킹을 건네주었고 그는 김양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후 곧바로 경찰서에 가서 자수 하였다.
오군은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지 않게 되자 그는 자살할 기회만을 궁리하고 노리게 되어 요시찰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인명 경시풍조가 언제부터 왜 시작됐을까?
악착같이 죽으려고만 하는 그에게 나는 정말 할 말이 궁해졌다. 1주 1회씩 석 달 가량은 참으로 서로가 상당히 힘든 고비였다. 그가 좋아할만한 시도 지어서 읽어주고, 하느님의 존재, 생명의 존엄성, 우리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생명의 주인은 절대자이신 하느님이시라는 것과 삶의 의미, 삶의 가치, 하느님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등 사이사이 교리 이야기도 짧게 넣어주며 나는 그에게 엄마, 누나, 애인, 친구가 되어 최대의 사랑과 정성, 친절로 감싸주고 이해해주며 적극적으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그에게 고의적으로 냉정하게 돌변하여 상담을 중지하고 3주정도 안 만나 주었다. 자주 사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른바 ‘쇼크’요법을 써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울면서 나를 기다린다고 천주교담당자의 전화가 왔다. 나는 긴 침묵을 깨고 그를 찾아가 다시 만나주었다. 그는 “수녀님의 사랑과 정성에 크게 감동했어요”하고 울면서 죽지 않고 열심히 살아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그녀의 몫까지 남을 위해 살아보겠다고 내손을 잡고 오열했다.
그는 이제 새로 났다. 나는 놀라운 이 기적 앞에 하느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는 기능사자격 취득을 위한 기술 훈련생으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신자가 되었다. 오늘날 자녀들의 능력이나 적성 등은 아랑곳없이 몰아치는 수많은 부모들, 학교 명예를 위해 학생들을 혹사 시키는 일은 너무나 만연되어 있다. 인간의 인격은 신성이다. 즉 신격과 같은 위치를 갖춘 인간을 한낱 그들의 허영과 만족을 위해 도구시 한다는 것은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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