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6월 27일, 6명의 선견자가 관할 경찰서로 소환됐다. 이들이 성모라고 증언하는 아름다운 부인이 나타나기 시작한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그러나 경찰서에서의 어떠한 추궁도 이들로부터 성모님이 발현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얻어내지 못했다. 다음 절차로 이들을 의사에게 보내졌다. 역시 정답은 없었다.
다시 이틀 후 정부관리들에게 불려간 선견자들은 여기서 ‘모스타’(메주고리에 관할교구가 있는 도시)의 한 정신병원으로 옮겨져 정신과 진찰을 받아야만 했다. 6월 30일 정부가 파견한 여자 사회사업가 2명이 아이들이 발현 장소를 가지 못하게 제시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선견자들의 증언대로라면 성모님은 장소를 옮겨 이들이 있는 곳에서 발현을 했기 때문이었다.
7월 1일에 경찰이 직접 관여, 아이들과 사람들이 발현장소로 가는 것을 막았으며 이들은 관할본당 주임신부에게 도움을 청하기 이른다. 프란치스코회 소속이며 메주고리에가 소속된 성 제임스(야곱) 성당의 주임 조죠 조보코 신부. 발현사실에 대한 조심스런 자세로 이성적 태도를 취해왔던 조죠 신부는 바로 이날, 선견자들을 보호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증언했고 이는 곧 그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의미했다.
8월 17일, 경찰은 조죠 신부를 체포했다. 수녀들이 골방에 갇혀있는 동안 경찰이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으며 발현초기에 관한 서류들이 압수되었다. 재판에 의해 선동죄가 조죠 신부에게 선고되고 3년 6월의 금고형이 떨어졌다. 이 사건으로 조죠 신부는 18개월간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정부당국과 경찰의 제재에도 불고하고 메주고리에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자 경찰은 금지령을 내렸다. ‘포드브르도산’의 소위 발현장소는 접근이 금지됐으며 종교행사는 오직 성당 안에서만 허용된다는 법이 발효되는 것으로 발전하고 만다.
사회주의 체제하의 정부가 종교집단의 ‘불온한 사건’을 두고 볼 리도 만무했지만 당시 전부는 크로아티아공화국 소속의 주민들이 혹시 종교적 행사를 빌미로 봉기를 할까봐 두려워했다고 안내자는 설명해 주었다. 유고의 6개 공화국 가운데 메주고리에 가속한 크로아티아공화국은 가톨릭계 주민들이 다수를 차지, 종교활동에 대한 정부의 통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현지주민들의 증언이 나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어쨌든 메주고리에 사건은 통제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확산됐으며 순례자들은 전세계에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메주고리에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메주고리에 자체가 기도의 장소가 되겠지만 순례코스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코리제바크산’이다. 15톤의 무게가 나간다는 대형 콘크리트 십자가가 마을 전체를 굽어보고 있는 곳. 일명 ‘크로스 힐’=십자가 산이라고 불리는 크리제바크산은 순례자들이 맨발로 오르는 고행의 산이다. 해발1천7백70피트 높이의 이산을 정상속도로 오른다면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지만 순례자들에겐 거의 반나절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시간과 반나절의 시간차이는 곧 입증이 됐다. 성모발현의 표식들이 이 크리제바크산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의 산행은 표식에 대한 물증확인에 불과했고 산행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못 되었다. 반면 나를 앞질러 출발했던 포르투갈 순례팀을 하산하는 중간지점에서 만났는가 하면 거의 같은 시각에 떠났던 브라질 순례단은 십자가의 길 기도중 제5처에 머물고 있었다. 쏟아진 빗물이 채 빠지지 않은 돌산의 미끄러움은 유난했지만 이들의 맨발기도는 중단이 되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하던 내 마음이 괜스레 부담스러운 순간이었다. 이태리에서 왔다는 7순의 한 할머니 수녀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정상을 정복(?)하고 하산하는 나에게 다시 만나 반갑다며(산 입구 십자가의 길 제1처에서 인사를 나눈 사이) 사진촬영을 제의했다. 얼마나 부끄럽던지!
이 크리제바크산의 콘크리트 십자가는 1933년 구원의 19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당시 이곳은 우박이 자주 왔고 농작물 피해가 극심했다. 자신들의 기도가 부족하고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회개의 뜻으로 주민들이 세워 성모께 봉헌했다는 이 십자가는 따라서 이들의 소박한 신앙의 표지라 할 수가 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크리제바크산에서 확인된 여러 표식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위로 나타나 ‘미르’(평화)라는 글자였다는 것이다. ‘평화’는 성모님이 메주고리에를 통해서 이 세상에 준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이 시대가 간절히 바라는 평화를 구하기 위해 이렇듯 사람들은 험난한 돌밭을 기도로 정복하고 있는가. 크리제바크산 정상에서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 정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순례자들은 각자 자신의 언어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콘크리트의 대형 십자가 주위를 돌며 성모송을 노래하는 사람, 십자가에 머리를 대고 자기만의 소원을 비는 사람, 촛불을 밝혀들고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그룹, 기도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얼마나 신비하고 복된 일인지 크리제바크산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약 1백50여평 곳곳에는 크고 작은 십자가들이 각각의 사연을 담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투박한 나무로 엮은 작은 십자가들은 산 정상 곳곳의 돌들에서 발견할 수가 있었는데 순례자들이 남긴 이 흔적 속에는 병든 아들의 치유를 비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 먼저 간 남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아내의 따뜻한 기도가 꼭꼭 숨어 있었다. 모두 제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이 기도들을 절대자께서는 과연 알아들으실까. 한 젊은 여성 순례자가 자그마한 사진과 함께 쪽지 하나를 십자가 틈 속에 소중히 끼우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성모님께서 혼돈(?)을 일으키실 것 같은 쓸데없는 우려가 떠올랐다.
크리제바크산 등정은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성모발현이라는 주제가 강력한 힘이 되고는 있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도가 무엇인지 몸으로 증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금식과 고행 보속으로 강조되는 메시지의 또 다른 핵심을 이들은 이곳 현장에서부터 실천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안내자는 성모발현 첫해인 81년 9월 크리제바크산에서 성 십자가 현양축일을 기념하는 야외미사가 거행됐을때 약 70만에 달하는 신자들이 이곳에 운집했다고 들려주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군중집회에 놀란 당국과 경찰은 포드브르도산에 이어 크리제바크산을 금지령으로 묶어버렸고 이 금지령은 83년 5월에야 비로소 풀리게 된다.
크리제바크산을 떠난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성 제임스(야곱) 성당으로 옮겨진다.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이 성당은 현재까지 성모발현이 이어지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는 곳으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순례 장소이기 때문이다. 발현 제7일, ‘체르노’라는 지역을 시발점으로 메주고리에 사건은 여러 장소로 확산이 되고 82년 1월 12일을 계기로 제임스성당의 감실 옆 작은 골방은 성모발현 사건의 새로운 장소로 정착이 된다.
제임스성당 제의실 맞은편에 자리한 이 방은 가로 세로 각 15피트 크기의 창고용 방으로 이날 이후 선견자들은 주로 이곳에서 성모님을 만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기자가 성당을 찾았던 금요일 저녁은 마침 조죠신부가 순례자들과 더불어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서 증언을 하는 날이었다. 약 7백명 가량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성당 안은 이미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고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조죠신부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대로 발현사건 초기, 경찰에 연행돼 옥살이를 치른바 있으며 현재는 인근 프란치스꼬회 소속본당에 머물면서 메주고리에 순례자들에게 자신의 발현목격 사실을 증언해주고 있었다. 조죠신부는 이날 선견자들을 보호하라는 성모님의 목소리를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곧 그는 선견자들의 메시지를 보호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며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메시지를 보호함으로써 교회를 지키라고 요청하셨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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