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기획/주님 따라 사서 고생] ③ 연령회 봉사자 강재오씨
“벌써 30년 넘게 봉사… 1000여 명 임종 지켜봤죠”
1987년부터 연령회 활동 시작
임종 소식에 언제든 봉사하려
짧은 여행조차 가지 않고 대기
장례 후에도 사별가족 돌봐
호계동본당 연령회는 15년째 주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에 위령기도를 바치고 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죽음을 향해 간다. 생명 탄생은 행복하고 기쁜 순간으로 여겨지지만, 죽음의 순간은 그렇지 않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영원한 어둠을 향해 간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본당 연령회에서 30여 년간 활동하고 있는 강재오(보니파시오·83·제2대리구 호계동본당)씨는 신자 1000여 명의 임종을 지켜봤다.
오랜 투병 끝에 죽음을 앞두고 세상을 원망하거나, 남겨둔 자식들이 걱정돼 쉽게 눈을 감지 못하는 노인 등 죽음을 앞둔 이들의 표정은 다양했지만 강씨는 그들이 세상을 떠난 뒤 영원한 안식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며 ‘사서 고생’을 자처한 강씨의 신앙생활은 사순시기에 우리가 돌아봐야 할 모범이다. 사순시기를 맞아 뜻 깊은 봉사를 하고 있는 강씨를 만나봤다.
직업 군인으로 복무한 뒤 1987년 전역한 강씨는 아흔이 넘으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봉사단체를 찾았고 호계동본당 연령회 활동을 시작했다.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누군가의 임종 소식을 들으면 다른 일을 제쳐두고 가야했기에 이 일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연령회를 시작한 이후 30여 년간 한 번도 외지에 나가서 자본 적이 없습니다. 3~4일씩 가는 짧은 여행조차 불가능했죠.”
자신만을 위해 쓸 시간은 없었지만, 임종을 앞둔 신자가 있으면 병원을 찾아가 장례가 끝날 때까지 길게는 2주가 넘게 돌봤다.
강씨는 “몸이 아픈 신자가 있으면 수첩에 간략한 정보를 적어두고 잊지 않도록 관리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에 찾아가 말동무도 하고 기도를 해드린다”며 “제가 해야 할일은 그 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하느님 품으로 갈 수 있게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죽음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성당에 갈 때 가장 예쁘고 깨끗한 옷을 입고 가듯, 죽은 이들에게도 평소에 아꼈던 옷을 입혀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염을 할 때 시신을 깨끗이 닦고 평소에 좋아했던 옷과 내의를 입혀드릴 뿐 아니라 화장도 해드린다”며 “거친 삼베옷을 입고 얼굴이 덮인 채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것을 좋아할 신자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3년 전 돌아가신 한 할머니의 마지막은 강씨의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가족들이 냉담하고 있어 늘 걱정이 많았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저희가 가서 기도하고 이야기를 해드리면 너무나 좋아하셨던 할머니는 가족들과도 성당에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자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너무나 편안하게 천사같은 얼굴로 눈을 감으신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연령회 일은 장례를 돕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은 가족들이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돕고, 냉담을 했던 신자들이 교회로 돌아올 수 있게 인도한다.
강씨는 “장례가 끝나고도 사별한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다”며 “특히 갑자기 자녀나 부인, 남편을 잃은 가족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통해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위령기도도 호계동본당 연령회만의 전통이다. 취재를 위해 호계동성당을 찾은 날도 연령회원들의 기도소리가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강씨는 “주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성당 지하에서 불쌍하고 억울한 영혼을 기억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매일 하는 기도가 힘들 수도 있지만, 매번 20여 명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위령기도에 참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연령회 봉사를 하며 참 즐거웠다”며 밝게 웃는 강씨의 모습을 통해 고생일 수 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