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관계개선 움직임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친 것과 달리, 올해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다소 주춤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평화를 향한 염원은 더욱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와 ‘통일’ 그리고 ‘평화’는 하느님의 은혜이며 하느님께 청하면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 아래, 지난 30여 년간 한국교회가 남북교류를 위해 지원한 연혁을 짚어 보고 평화를 향한 길을 전망해 봤다.
■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 움직임
기도는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기도로써 분단의 벽을 허물어 왔다.
주교회의는 제일 먼저 1965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 공식 제정해 북한 복음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1992년 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변경해 기도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1984년부터 한국교회의 본격적인 북한 선교 활동이 드러나게 됐다. 1982년 12월 12일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내에 ‘북한선교부’를 마련했으며, 1984년 주교회의 직속기구로 개편했다. 현재 명칭인 ‘민족화해위원회’(이하 주교회의 민화위)는 1999년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변경된 것이다.
서울대교구는 1995년 3월 1일 민족화해위원회(이하 서울 민화위)를 설립하고, 같은 해 3월 7일부터 매주 화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를 봉헌해 왔다. 이 미사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 재임 당시 봉헌하기 시작한 것으로, 한 주도 빠짐없이 이어와 최근 1200차를 넘어섰다. 또 북녘 땅에 있던 57개 본당의 5만2000여 명의 신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기도 운동 등을 펼쳐 나가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올해 3월 5일 1201차로 봉헌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강론에서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교회가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매우 중요한 행위”라며 “우리 교회와 국민 모두 남북한이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미래를 열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호소한 바 있다.
의정부교구는 2013년 3월부터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매주 ‘토요기도회’를 열고 있으며, 지난 1월 19일 300차를 맞았다. 아울러 주교회의 민화위(위원장 이기헌 주교)와 의정부교구 등은 2015년 분단 70주년을 맞아 매일 밤 9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모경을 바치는 기도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 대북 인도적 지원과 위기
한국교회는 1995년 ‘한 형제’로서 먼저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민족화해의 돌파구를 만들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열악한 상황은 한국교회가 대북지원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북한은 수해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1990년대 대기근에서 비롯한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 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는 1995년 수해 피해를 입은 북한에 북녘 동포를 위한 첫 성금을 전달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당시 교구 사회사목 담당 최창무 주교(전 광주대교구장)가 선구적으로 시작한 대북지원은 20여 년간 지원액수가 220억 원을 넘어섰다.
같은 해 6월 11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대북지원에 대해 “한 동포인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진정 정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을 것”이라면서 “피를 나눈 형제요 자매인 우리들은 북한의 식량 지원에 그 어떤 조건도 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형제적 응답을 시작으로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아울러 1996년 북녘의 동포들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 ‘북녘 형제와 국수 나누기 운동’을 시작했으며, 1997년 1월까지 6차에 걸쳐 총 4억3000만 원을 전달했다. 또 1997년 3월 6대 종단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와 연합으로 ‘북한 동포에게 옥수수 1만 톤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교회 차원의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한편 2002년에는 주교회의 민화위 명의로 통일부 대북지원 창구를 개설했으며, 이후 수원교구 민화위, 한국가톨릭농민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등 다양한 교회 단체들이 대북지원에 동참했다.
하지만 2010년 정부의 5·24조치 이후 대북지원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후 한국교회는 인도적 지원 대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 운동과 교육, 본당 활동 등으로 저변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현재 한국교회의 대북지원은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①1995년 수해를 입은 북한에 성금을 전달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②1998년 북한 동포 돕기 걷기대회.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③2007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북한에 수해 구호물자를 보내기 전 봉헌한 축복식.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④올해 3월 5일 1201차가 봉헌된 서울대교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⑤올해 1월 19일 300차를 맞은 의정부교구 ‘토요기도회’.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 다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하여
남북의 정치적 관계가 급속하게 경색된 상황에서도 한국교회는 평화를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2015년 12월 1~4일 한국 주교단은 남북 평화와 화해 인식 확산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소속 주교단은 북한 조선카톨릭교협회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남북 교류와 협력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방북 기간 동안 주교단은 사제 파견 문제를 비롯해 장충성당 보수 등을 논의하며 남북 화해의 길을 넓혔다.
앞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같은 해 10월 25일 평양 장충성당에서 ‘평화통일 기원미사’를 봉헌하고 남북 교류에 마중물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자 2016년 2월 10일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교두보였던 개성공단에 대한 전면적인 운영중단을 선언했다. 바로 다음달인 3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민족화해위원회는 공동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다행히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평화를 위한 발걸음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3월 20일 본지가 주최한 제2회 한중 국제심포지엄에서 “남북 종교교류는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멈춰서는 안 된다”면서 “신중하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헌 주교는 “유엔의 대북 제재 속에 인도적인 지원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남북 관계는 호전될 것”이라면서 “기도를 중심으로 한 평화와 용서, 화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 “교황님이 북한을 방문하신다면 현재의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하자”고 당부했다.
한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성기영(이냐시오) 책임연구위원은 “한반도가 교회 차원의 평화를 실천해 나가는 데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하길 바란다”면서 “한국교회가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세계 교회에 알리는 실천 활동을 힘 있게 전개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