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 49년째 구독하는 이상열 교수를 만나다
“천주교를 좌파라 비난할수록 사회교리 가르침 더 다뤄야”
1959년 세례 받고 신자라면 당연히 교회신문 봐야한다 생각
반세기 교회 움직임 알려준 ‘풍향계’… 신앙성숙에도 도움 돼
가톨릭문학·교회사·윤리철학 등 ‘인문교육’ 분야서도 활용
교회의 누룩으로,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역할하는 언론되길
올해로 49년째 가톨릭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이상열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가톨릭신문은 교회의 움직임을 알게 한 풍향계이자, 나의 지적인 어두움을 밝혀 주는 등대 역할을 했다”며 “개인적 신앙 성장에 아주 유익한 매체”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올해로 49년째다. 이상열(베르나르도) 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매주 ‘영적 양식’을 먹는 마음으로 가톨릭신문을 읽는다. 가톨릭신문은 “가톨릭적 소양을 쌓고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내용을 얻을 수 있는 매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의 동반자”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가톨릭신문이 창간 92주년을 맞아 장기독자 중 한 명인 이상열 교수와 장병일 편집국장과의 특별대담을 3월 15일 가톨릭신문 역사전시관에서 마련했다. 이 교수는 이 대담을 통해 가톨릭신문이 신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떤 발전을 이루길 바라는지 등에 대해 가감 없이 의견을 밝혔다. 특히 “신자로서 내가 먼저 복음화 되어 세상을 복음화 하는 노력은 필수”라며 “이러한 신앙여정에 가톨릭신문은 든든한 선생이자 친구”라고 강조했다.
●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가톨릭신문이 올해 4월 1일 창간 92주년을 맞이합니다. 90년을 훌쩍 넘어선 가톨릭신문 역사의 최고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독자 여러분들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축하해 주시는 분들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축하받아야 할 분들이기도 하죠. 창간 92주년을 맞이한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서 소감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상열 교수(이하 이 교수) : 가톨릭신문이 1927년에 창간되었는데, 나는 1929년생이니 신문이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아요. 비슷한 나이에다가 거의 반세기 동안 구독함으로써 상호 끈끈한 인연이 맺어졌다고 여겨집니다. 1959년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라면 당연히 교회 신문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교회의 동향을 거시적으로 보는 안목이 필요하고 지적·실천적으로 가톨릭적 교양과 소양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을 잘 만들어서 배부해 준 신문사에게는 감사와 축하의 뜻을 표하며 앞으로도 열심히 신문을 계속 구독하고자 합니다.
-장 국장 : 가톨릭신문도 창간 이후 일제 압박과 6·25 한국전쟁 등으로 인한 휴간, 폐간, 복간 등의 갖가지 굴곡을 겪어왔습니다. 한 개인의 삶의 역사도 늘 평탄치만은 않을 텐데요. 그럼에도 49년간 쉼 없이 가톨릭신문을 보실 수 있었던 이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교수 : 가톨릭신문은 교회의 움직임을 알게 하는 풍향계이기도 하고 나의 지적인 어두움을 밝혀 주는 등대 역할도 했습니다. 교회 안의 여러 가지 직분을 맡으면서도 더욱 더 신문 구독의 당위성을 느끼게 됐죠.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신문의 지면이 늘고 기사 내용이 충실해지면서, 나의 구독 의욕과 관심을 더욱 높여 주었습니다. 나의 개인적인 신앙 성장을 위해서도 가톨릭신문은 정말 유익합니다. 가톨릭신문에 별로 읽을거리가 없었다면 구독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장 국장 : 평소 ‘가톨릭신문을 구독하길 정말 잘 했다’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다는 말씀인데요. 지금까지 읽으신 소식보도와 기획특집, 연재물 등은 헤아리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 가운데에서도 이 교수님의 뇌리에 오래 남았거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기사를 떠올려주신다면.
▲이 교수 : 평소에 알고자하는 문제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 더욱 도움이 되지요. 예를 들면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청주교구 교구장이자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이셨을 때 가톨릭신문에 15회에 걸쳐 연재하신 ‘교회법 해설’은 법학을 강의하는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문 제호가 ‘천주교회보’였던 시절, ‘영혼성질론’(靈魂性質論)과 ‘영혼불멸론’(靈魂不滅論) 기획 연재를 보고도 무릎을 탁 쳤답니다. 가톨릭신앙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영혼의 존재를 인식하고 긍정하는 것이 기본인데요. 과학적으로 영혼의 실존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당시 천주교회보를 보지 않았다면 이런 논제의 글을 어디서 볼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하며 정말 구독을 잘 했다는 생각을 거듭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웃들에게 널리 소개했던 기사 중엔 2008년에 게재됐던 ‘결연한 자세로 묵묵히 고난의 길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안중근 의사가 아시아 평화를 기원하며 의연히 순국한 내용의 기사도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이 기사는 나에게 신앙심과 애국심을 성찰케 했으며 지금도 뇌리(腦裏)에 남아 있는데요. 지난해 연재한 위령성월 기획도 가톨릭신문만이 제공할 수 있는 신앙생활 정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장 국장 : 가톨릭신문이 신앙의 풍향계이자 등대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사실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등을 밝혀드리는 기사에도 항의를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교수 : 대사회적인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갖춘 대표적인 종교가 가톨릭입니다. 특히 사회교리는 가톨릭교회의 항상적, 지속적, 교도적, 실천적 관심사이며, 이러한 문헌들은 사회가 봉착하는 문제들에 대한 반성 원리와 판단 기준, 행동지침들을 제시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사회교리를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일부 교우들은 일반적으로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을 정치활동으로 보고 정교 분리의 차원에서 비난하거나 거부합니다. 그러나 사회교리는 정치문제의 차원을 넘어서는 복음적·윤리적 차원의 문제이지 정교분리를 위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인류 구원사업을 펴셨는데 정치범으로 간주되어 십자가의 죽으심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예언자들도 박해를 받거나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또 교회는 성경 가르침에 의하여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합니다. 이를 두고 외교인들은 천주교는 좌파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일반 신자들이 사회교리를 더욱 잘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장 국장 : 가톨릭신문의 첫 모습인 천주교회보 창간 당시 한국 사회 문맹률은 80%를 웃돌았습니다. 신자 수도 적었던 터라 교회 매체 창간은 무리라고 우려하셨던 분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선 급속도로 디지털화 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신앙과 글을 멀리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구독자들조차 신문을 수동적으로 대하고 신문을 매개로 한 대화와 소통에 미지근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원인과 해결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 교수 :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간이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짐으로써 인간이 할 일도 더 많아졌습니다. 물질만능주의 편의주의의 만연으로 실용주의적 사고에 젖어 다른 가치를 추구하려 하지 않는 모습도 크게 늘었고요. 그래서 신문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외면당하는 것이지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사색하면서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도도한 흐름을 극복하여 해결하는 무슨 즉각적이고도 특별한 처방이 있겠습니까? 인간이 인간다움으로 회귀해야 하는데 그것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인문학적 소양과 교육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3월 15일 가톨릭신문 역사전시관을 둘러본 이상열 교수(오른쪽)와 장병일 편집국장이 가톨릭신문의 비전과 역할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이상열 교수가 3월 22일 오후 자택에서 본지 2004년 8월 22일자 18면에 소개된 ‘꾸르실료운동 연구보고서’ 특집기사를 살펴보고 있다.
-장 국장 : 젊은 신자들과 나누고 싶으신 말씀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 교수님께선 오랜 시간 교육계에 계셨지요. 가톨릭신문은 서정섭, 윤창두, 이효상, 최재복, 최정복 등 당시 청년들이 뜻을 모아 만든 신문입니다. 반면 요즘엔 신문을 가장 잘 접하지 않는 층이 바로 청년들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신문이 청년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더 해야 할지 조언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교수 : 저는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나라가 인문교육에 너무 소홀했다는 것을 깊이 느낍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이른바 ‘방치된 인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때, 가톨릭신문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인문교육에 힘을 실어주길 바랍니다. ‘인간다움’을 북돋우는 것이죠. 가톨릭문학, 교회사, 가톨릭윤리철학 등 각 분야 교육에서 가톨릭신문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신문이 청년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선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복음적으로 청년들의 삶을 조명하고 신앙과 그리스도교적인 가치관을 심어 주는 청년란을 두거나, 작은 청년판 신문을 별도로 만들어 다가가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청년들을 위한 소울 스테이(Soul Stay)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청년들에게 올바른 신앙 묵상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장 국장 : 김수환 추기경께서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휘호가 바로 가톨릭신문 창간 80주년 기념 휘호였습니다. ‘세상의 빛’. 가톨릭신문을 표현하고 또한 저희에게 남기신 명료한 한 마디의 당부였는데요. 가톨릭신문이 ‘세상의 빛’으로서 어둠을 밝히고 독자 분들을 밝은 길로 안내해 드리기 위해 해야 할 몫에 대해 고견 청합니다.
▲이 교수 : 가톨릭신문이 ‘세상에 빛’을 비추어 어두움을 밝히라는 것인데, 빛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환언하면 교회와 세상을 그리스도화 하고 복음화 하는 신문이 되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가톨릭신문이 교회와 세상을 복음화 하는 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는 구성원들이 복음화 되어 하느님의 나라 건설과 구원에 이르도록 하고, 외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 정의와 공동선이 실현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요약하면 대교회적(對敎會的)으로는 가톨릭신문사가 누룩의 역할을 하고, 대사회적(對社會的)으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사진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