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기획/주님 따라 사서 고생] ④1인 성극 공연 펼치는 배우 심우창씨
“벌써 11년째… 신앙 전파 다짐하며 무대에 서죠”
개신교 공연 천주교화해 무대로
2008년부터 400회 공연 진행
장소 섭외·분장·음향 ‘1인 다역’
배우 심우창씨가 3월 30일 제1대리구 병점성당에서 1인 성극 ‘예수님을 만난 대장장이 이야기’ 공연에 앞서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무대, 하얀 불빛 사이로 대장장이 ‘바데스’가 걸어 나온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못박혀 죽어야 그 못을 만들어 파는 내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물질만 좇는 바데스. 우연히 예수를 만나 회개하고는 180도 변한다. 그러다 어느 날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하는 장면을 목격한 바데스는 목놓아 운다.
“아아….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힌 못이 너무도 낯익다. 저 못을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는 나뿐인데, 내 손으로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바데스는 무릎 꿇고 앉아 절규한다.
3월 30일 오후 8시30분, 제1대리구 병점성당에서는 1인 성극(聖劇) ‘예수님을 만난 대장장이 이야기’(이하 대장장이) 공연이 펼쳐졌다.
바데스를 연기한 인물은 배우 심우창(세베로·72·제1대리구 천리요셉본당)씨. 그는 한국 천주교계에서 바데스를 연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개신교계에서 이뤄지던 공연을 심씨가 직접 개작해 천주교화(化)했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공연이 이뤄지는 곳이면 어디든 심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심씨는 매년 사순 시기만 되면 대장장이 공연을 벌였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대림 시기·특별 초청 공연까지 합하면 공연은 곧 400회를 돌파한다. 실제로 심씨는 공연 무대에 오르기 위해 뉴질랜드까지 다녀온 적도 있다. 올해 사순 시기에도 심씨는 수원·대구·부산 등 전국 성당 곳곳에서 4~5일에 한 번꼴로 7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심씨의 공연은 그야말로 ‘주님 따라 사서 고생’이다. 장소 섭외부터 공연 준비, 분장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심씨가 도맡아 한다.
배우자 김춘자(율리타·70)씨가 항상 도와주지만,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 성당을 찾아 공연 허락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멀리까지 찾아가 요청했는데 “대본을 먼저 보겠다”며 경계하거나 무관심할 땐 신앙심 굳은 심씨도 지치곤 한다. 그럴 때면 심씨는 “문화도 복음화의 한 방법인데 참 안타깝다”고 말한다.
장소를 섭외했어도 매번 성당마다 공연할 무대의 조건이 다르다. 그 탓에 심씨는 음향부터 조명까지 세세히 신경쓴다. 심씨는 3월 30일에도 공연 시작 5시간 전부터 병점성당을 찾아 마이크를 점검하고 조명을 꼼꼼히 살폈다.
바데스로 변신하는 것도 온전히 심씨의 몫. 심씨는 대장장이 복장으로 갈아입고, 눈썹과 콧수염 그리는 것까지 하나하나 혼자 해 낸다. 60분 가량의 공연을 위해, 심씨는 거의 온종일을 공연에 투자한다.
주님 따라 사서 고생하는 이유에 대해 심씨는 “주님 따라 사는 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행복하기에 죽을 때까지 주님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서다.
배우 심우창씨가 3월 30일 공연을 펼치기에 앞서 분장하고 있다. 심씨는 매번 분장을 직접 한다.
‘예수님을 만난 대장장이 이야기’ 공연에서 대장장이 바데스를 연기한 배우 심우창씨가 공연 중 절규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씨는 공연을 거듭하면서 자신도 많이 성숙했다. 그는 “인생에는 누구나 굴곡이 있지만, 10여 년 동안 대장장이 공연을 하면서 신앙심이 단단해졌고 어떤 순간에도 방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불교 신자였던 심씨는 1987년 40세의 나이에 국립극단에서 나와 힘들었던 시절 주님의 말씀에 힘을 얻어 천주교로 개종했다.
공연이 끝난 뒤 “걸을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공연해 달라”는 관객들의 반응도 그가 1인 성극 강행군을 잇게 하는 동력이다.
심씨는 지금도 매일 산을 오르며 체력을 관리한다. 어릴 땐 앞날을 알 수 없어 세상 잣대로 살아가곤 했지만, 이제는 삶을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성극 공연은 자신이 신자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서다.
심씨는 “성극 공연은 내게 주어진 축복”이라며 “주님의 부르심에 언제든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답한다”고 고백했다.
더불어 심씨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성극은 ‘아마추어’였다”며 “신앙을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성극을 ‘프로화’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또 다른 성극도 구상 중이다.
서울가톨릭연극협회 소속인 심우창씨는 1969년 중앙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했다. 1973년부터 1986년까지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KBS 드라마 ‘태조 왕건’과 ‘정도전’, 연극 ‘요셉 임치백’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빛으로 나아가다’ 등에서 다양한 연기 경력을 쌓았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