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예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셨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타볼산에 오르시고 하루를 거기서 묵고 내려오셨으니 군중들은 예수를 사흘 동안 보지 못한 셈이다. 내려오셨을 때 예수를 맞이한 사람들은 남아있던 제자들과 군중이 있었고 이들을 놓치지 않고 미행하던 율법학자들이었다.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은 초대교회의 교회상을 묘사한다. 그들은 아직 신앙이 굳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반대자들이 늘 끼어 있었다. 제자들은 그동안 율법학자들과 무엇인가 토론을 하고 있었고 예수께서 내려오신 것을 보자 군중과 함께 반가워했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왜 놀랐을까. 아마도 산상에서 변모했던 성스러운 용모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군중들은 세 제자만 골라 데리고 올라가면서 꽤 오랫동안 못 뵈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뵈옵게 되어 의외로 생각해서였을까. 아무튼 복음사가는 군중이 예수의 가르침에 경탄하고 치유 기적에 엄숙한 놀라움을 표시하고 하는 광경을 우리에게 전한다. 이것은 예수의 신성이 사람들에게 드러났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관하여 그들과 토론했느냐고 물으셨는데 그 대답은 복음사가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한 아버지가 병든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왔다면서 제자들은 그를 고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대답으로 미루어 볼 때 제자들과 율법학자들의 토론내용은 예수를 중심으로 한 제자들의 마귀축출에 관한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무능한 제자를 세차게 몰아세우던 율법학자 들은 예수께서 나타나신 것을 보고 움츠려 들었는가 이야기 광경에서 퇴장하고 군중속의 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는 간질발작을 하는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를 찾다가 찾지 못하고 그 제자들에게 부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고치지를 못하였다. 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를 만나고 반가워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그가 아들의 병증세를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간질병임에 틀림없다. 이 병을 마르코는 ‘벙어리 마귀’에 들렸다고 했고 마태오는 월광증(月狂症)이라고 했으며 루카는 ‘악령에 사로 잡혔다’고 했다.
간질병은 오늘날까지도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거룩한 병’이라 명명했던 것으로 일반 민중은 달이 밝을 때 마귀가 아이에게 들어가 증세를 일으킨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고통’이라고 불렀다.
애 아버지는 제자들이 고칠 능력이 없었음을 호소하였다. 이어지는 예수의 한탄어린 말씀은 좀 의아스럽다. “이 불신의 세대를 보겠나(마태오와 루카는 ‘비뚤어진 세대’를 덧붙였다)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언제까지 이 성화를 받아야 하는가. 그 아이를 내게로 데려 오너라”
이 세대에 대한 탄식의 말씀은 구약성서 신명기 32장5절 “비뚤어지고 비꼬인 세대가 되었구나”와 시편 95장 10절 “헷갈린 백성이로구나”에 근원을 두고 있는 말씀으로 신약성서에서는 이 말씀을 예수가 메시아임을 거부하는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마태 11,16:12,39). 그렇다면 이 탄식의 말씀은 제자들이나 군중에게 한 것도 아니고 아이 아버지에게 했다고도 볼 수가 없다.
말씀의 후반부 “언제까지…” 등등은 예수께서 곧 이 세상을 하직할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탄식의 말씀은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두고 한 말씀이 아니고 그들 뒤에 있는 비뚤어지고 불신하는 세대 일반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곧 이어지는 믿음의 위력에 관한 말씀으로 더욱 그러하다.
하여튼 아이 아버지는 불신의 책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믿음이 없는 자기를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이야기는 예수와 마귀와의 대결과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는 장면으로 이어 진다.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나가라고 호통을 치셨고 마귀는 그 아이를 죽여 놓고 떠나갔다. 사람들이 ‘아이가 죽었구나’하고 확인하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이 광경은 다음 대목을 이어지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언을 준비하는 마르코의 의도이다.
이어지는 믿음을 강조하는 대목은 초생교회에게 중요하다. 제자들이 자기들은 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는지를 물었을 때 예수의 대답은 굳건한 믿음을 강조하였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말 한마디로 산도(루카) 옮겨 놓을 수 있다. 이렇게 믿음을 강조하시고 이런 기적은 기도로써만 가능하다고 덧붙이셨다.
여기서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믿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되는가, 기도만 하면 다 이루어지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우선 신약성서의 기적의 의의를 잘 생각해야 한다.
예수의 기적은 힘의 과시가 아니고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게 하고 하늘나라를 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제자들도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쳤다(마르 6,13:사도 3,1-10:12-16:9,31-43) 그러나 그들은 주 예수의 파견을 받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느님 나라를 전파할 때에만 기적을 행하였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의 부재중에 율법학자들에게 기적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였는지 모른다. 믿고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과 그 능력을 믿고 그의 도움을 기원하는 것을 뜻한다.
과연 초대교회는 겨자씨와 같은 작은 힘을 가지고 강력한 로마제국을 옮겨 심는 믿음의 힘을 발휘하였고 오늘도 그 힘은 밑바탕에서 발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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