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탕의 후끈후끈한 열기로 1년을 한여름으로 살아가는 여의도 충무대중탕 종업원 오병화씨(30·요셉).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마음은 욕탕의 열기만큼 따뜻하고 만나는 누구에게나 경계심을 유발시키는 일이 없다.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의 바쁜 일과에 시달리면서도 오씨는 가뭄에 콩 나듯이 얻어 걸리는 휴일이면 으레 응암동 도티기념병원을 찾아 무의무탁 환자들과 어울려 하루를 보낸다. “갈 곳도 없고 외로워서 병원에 간다”며 싱긋이 웃는 오씨는 전공을 살려 수족을 못 쓰는 환자와 욕창에 걸린 환자들을 일일이 씻어주고 대소변을 받아주며, 오물로 더럽혀진 세탁물을 손수 빨아주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오병화씨가 휴일이면 여의도에서 상당히 떨어진 응암동을 홀로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62년, 이미 자식을 거느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씨는 국민학교 4학년 때 부친상을 당한데 이어 어머니조차 전남 영암으로 훌쩍 재가해 버려 이복형 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고아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복형의 잦은 구박과 구타로 무단가출을 기도한 오씨는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인생 밑바닥 이라는 구두닦이·넝마주이·짜장면배달로 전전하며 인생의 서러움을 한껏 맛보았다.
잘 곳이 없어 몰래 여인숙 빈방에 잠을 자다 길바닥으로 쫓겨난 오씨는 통금의 사이렌에 놀라 남대문 파출소에 호소, 현재 응암동 ‘소년의 집’ 내 시립아동보호소에 들어가게 됐다.
“제가 처음 수용보호된 곳이 알고 보니 정신박약아실이었다”며 미소 짓는 오씨는 그 후 소년의 집에서 국·중·고등과정을 이수한 후 봉제와 선반업, 현대전공과 삼성전관을 돌며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소년의 집 원장 소알로이시오 신부의 사랑으로 77년 부활절에 천주교에 발을 들여놓은 오병화씨.
그는 이제 인생의 설움과 분노를 씻고 욕탕 마룻바닥에서 묵주알을 굴리며 잠을 청하고 있다.
“야! 이리 와봐” “종업원주제에 건방지게” 등의 욕지거리와 반말을 식은 죽 먹듯이 듣는 오씨의 마음에도 앙칼진 분노와 복수심이 차오르지만 싱긋이 웃고 넘겨 버린다.
2년째 충무탕에서 음료수를 팔고 있는 오병화씨의 꿈은 2년 뒤쯤 1천5백만원을 모아 호텔사우나에 음료수 가판대를 전세 내 독립하는 것이다.
또 독립해 돈을 벌어 전세방이라도 얻을 정도 되면 결혼하겠다는 오씨는 그때는 너무 늦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소하며 “그것도 문제”라며 웃는다.
깡마른 체구에 해맑은 미소를 짓는 오병화씨의 얼굴에서는 과거의 쓰라린 상처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오병화씨에게는 소년의 집이라는 고향과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무의무탁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옛 소년의 집 동료들과 만나 축구를 하고 수족을 못 쓰는 환자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오병화씨의 가장 큰 꿈은 이 세상이 누구를 버리는 일도 버림을 받는 일도 없이 모두 손을 잡고 함께 사는 곳으로 변해가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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