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구치소 여자 사무실로 미결소년수 상담차 내가 들어섰을 때 마치 법정에서 막 재판을 마치고 돌아온 14세의 소녀 홍양의 검신이 있었다.
출정을 나갈 때와 또 돌아와서 반드시 한사람씩 검신을 철저히 한다. 이것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교도관들과 나는 아연실색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어린 소녀의 온 몸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엄마와 같은 애석한 마음으로 담당 여직원이 “누가 이랬니”하고 물으니까 그는 오빠들이 그랬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이 홍양은 어렸을 때 집안이 파탄 되었고 그 때부터 동가숙 서가식을 거듭하면서 범죄 소굴로 물위에 떠내려 온 나뭇잎처럼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간 모양이고 폭력배소굴에서 완전히 험악한 남자들의 노리갯감이 되어 살아온 것이다.
가족이나 연고자가 한사람도 없이 넓은 세상에서 소외된 채 배고픔과 외로움에 지친 그 어린 소녀는 아빠 같기도 하고 오빠 같기도 한 젊은이들이 맛있는 것과 예쁜 옷 사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니까 그들에게 완전히 의탁하고 그들이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라 살아온 것이다.
피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에서 종교를 바탕으로 한 교육을 부르짖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하여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하는 어른들을 새롭게 보았다. 어른들은 전교육의 장에서 교육자여야만 할 것이다. 이런 아이들도 내 아이로 봐주는 따뜻한 시선들이 있었다면 홍양의 인생행로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범죄와 전쟁’이 선포된 후 거리마다 많은 현수막의 갖가지 구호들이 나붙어 있었는데 그중 이색적인(?) 말이 있다. “비행소년 외면하면 내 자녀 오염된다” “내 자녀를 범죄 없는 세상에서 키우고 싶어요”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속에 오늘도 음지에 속한 사람들, 소외 계층의 사람들은 악순환만을 거듭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서울역등에서 현재도 무작정 가출하여 상경하는 아이들의 인신매매가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대단히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었던 지난 제44차 세계 성체대회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한마음 한몸 운동 본부에서는 양자녀 입양운동이 있었고 어느 젊은 교우 부부가 다섯 명의 아이들을 맡아 친자녀처럼 양육하며 함께 산다는 가슴 뭉클한 소식도 들었다. 이런 것이야 말로 크리스천들이 할일이요, 복음 정신대로 사는 것이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매우 아름답고 바람직한 실화가 생각난다. 지방 ○○천주교 어느 회장님께서 저녁 귀가 길에 한 어린이가 무자비한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물건처럼 흥정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차마 눈감고 지나칠 수 없어 얼마인가를 건네주고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 왔다. 그 아이는 회장님의 호적에 올려 그 댁 막내딸이 되었다. 지금쯤 고등학생이 되어 귀염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복덩어리가 되었을 것이다.
내 아이 귀한 줄 알면 남의 아이도 귀할 텐데….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 짓지 않고 우리들의 아이로 봐주는 어른들의 폭넓은 사랑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도 목마른 때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