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 원리는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다.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이란 「노동헌장」(1891)을 반포한 교황 레오 13세로 부터 현재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의 여러 교황들, 2차 바티칸공의회, 그리고 세계주교대위원회(Synod)가 사회문제에 대하여 말한 신학적 가르침 전체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이다. 그것은 가톨릭 교리의 사회적 관점과 20세기 현대 사회의 구체적 상황들을 연결시키는 체계적이고 규범적인 신학적 이론 전체를 말한다. 사회적 가르침은 여러 가지 문헌에 들어있는데, 몇 가지 주제들로 구분될 수도 있다. 그 주제는 기본원리, 국가관, 가정에 대한 가르침, 인간노동의 의미와 권리, 그리고 윤리, 사회주의에 대한 견해, 자본주의에 대한 견해, 교회와 민주주의, 이상적 사회질서, 국제적 빈부격차에 대한 가르침, 진리와 언론의 역할, 교회와 국가의 관계, 자본의 의무와 권리, 그리고 의미, 사유재산에 대한 가르침, 교회의 정치참여, 전쟁과 평화 등을 포함한다.
기본원리는 다른 주제들의 토대가 되는 것이고 다른 주제에서 말하는 것은 기본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좀 더 구체적인 지침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다른 주제들의 가르침은 이 기본원리를 사회의 현실로 만들기 위한 지침이요 수단인 것이다. 사회적 가르침의 기본원리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인정되는데, 그것은 인간 존엄성 원리·연대성원리 그리고 보조성 원리이다. 이 세 가지 원리들 가운데서도 인간 존엄성 원리가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이어서 연대성과 보조성 원리도 따지고 보면 인간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이론과 사회윤리든 그것의 고유한 인간관에서 출발하듯이, 사회적 가르침의 뿌리는 인간은 누구나 존엄성을 가지며 그 존엄성은 언제나 보호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있다. 이 가르침 전체를 지배하는 기본 신념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요지부동의 확신과 그 옹호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회적 가르침이 최선을 다해서 보호하려는 최고의 가치이다. 「노동헌장」도 기업인을 향한 권고에서 노동자의 존엄성을 강조하였다. “종업원은 노예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인격적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단순히 영리의 수단으로 취급하거나 물리적 힘의 도구로 밖에 보지 않는 생각이야말로 비인간적이며 수치스러운 일이다”(31항).
사회적 가르침이 인간 존엄성을 논증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의 접근법을 사용 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본성과 본질적 구성요소에 토대를 두면서 존엄성을 주장하는 자연법적 접근이고, 다른 것은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신앙체계 안에서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이끌어내는 신학적 접근법이다. 자연법적인 접근을 철학자들의 접근법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 반면에 신학적인 접근은 자연법적 논증을 반대하면서 단지 신학적 논증만을 고집하는 개신교의 접근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자연법적 논쟁
인간 존엄성에 관한 논증은 교회의 여러 가지 교서 가운데서도 특히 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인 「사목헌장」에서 가장 상세하게 발견된다. 우선 자연법적 논증을 보면(12-17항)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고 다른 피조물에서 발견되지 않는 훌륭한 능력, 즉 지성, 자유, 그리고 양심이 있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능력들은 인간의 본질적 요소들이며, 그 능력의 힘으로 인해서 인간은 만물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영물이 된다. 육체를 가지기 때문에 별수 없이 물질의 세계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그 법칙에 예속되어 있다고 하지만, 인간은 이상의 세 가지 능력의 힘으로 말미암아 물질세계의 정점에 도달할 뿐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다. 이 능력들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물질 이상의 존재가 되고 자연의 한 조각으로 남아있는 신세를 면한다. 이들의 힘으로 인간은 인격체가 되고 존엄성을 갖는다.
인간은 지성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본성적으로 진리를 끝없이 탐구하려는 충동을 느끼며 그렇게 할 의무도 갖는다. 지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사색하고 이해하며 현상들의 상호관계를 파악하고 자신을 의식하며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위한 목표를 세운다. 인간은 지성을 사용해서 과학지식과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물질세계에 대한 정복과 지배를 엄청나게 증대시켰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은 지성의 사용을 통해서 예술의 발전과 아울러 도덕적 진리의 발견에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다. 인간은 자신 안에서 양심이라고 불리는 법의 소리를 발견한다.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이 이 양심은 성장 과정에서 발전하는 후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이 각자에게 새겨준 하느님의 법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따라서 양심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하느님을 만나고 따르는 사람이다. 양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방종을 멀리하고 도독적인 기준을 따라서 행동하도록 항시 인도한다.
그 외에도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자유의지는 여러 가지 가능성 앞에서 자력으로 하나의 결정을 내리고 한 가지 가능성을 선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결정과 행동은 물질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 요인들에 의하여 전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간이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하여 제약이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은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는 동물의 행동이나 필연적 법칙에 따르는 물질의 행동과는 질적으로 따른 것이다. 그리고 자유 의지대문에, 인간의 행동은 선행일수가 있는가 하면 악행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자유 의지로 말미암아 다른 힘에 예속되는 객체에 머물지 않고 자기행동의 진정한 주체가 된다.
지성과 자유, 그리고 양심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행동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지 못한다. 범죄를 다룰 때에는 상황적인 요인들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어떤 결정요인들의 결과라고만 돌릴 수는 없다. 선행이 칭찬과 상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면, 범죄도 인간의 행동이기 때문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행동의 책임을 전적으로 제도, 국가의 법률, 상사의 명령, 혹은 다른 상황 등에 돌릴 수만은 없다.
● 신학적 논쟁
인간의 존엄성을 논증하는 데 있어서 요한 23세와 그 이전의 교황들은 자연법적 논증에만 의존하였으나 2차 바티칸공의회는 신학적 논증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현재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자신의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신학적 논증에 치중한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신학적인 논증은 인간이 지성, 자유의지 그리고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말하는 자연법적 논증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신학적 논증은 인간이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하느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은 인간의 능력이나 속성에 대한 관찰보다는 성서의 말씀에 의존하는 논증이다.
「사목헌장」(22항)이나 「인간의 구원자」(8-10항)에서는 성자의 육화, 수난, 그리고 인간부활에 대한 교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데에 토대로 사용된다. 먼저 “말씀이 혈육을 취하신 것” 즉 성자의 육화는 하느님 아버지가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셨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 그 자체는 인간의 지위를 높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멸시나 천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받을만한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성자의 육화는 인간의 존엄성을 밝혀준다. 성자는 인간의 본성을 소멸시키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취하셨기 때문에 인간 본성은 자동적으로 들어 높여지고 존엄성을 얻은 것이다. 성자는 죄 외에는 인간의 모든 것, 즉 육체, 지성, 의지, 그리고 마음을 취하였다. 인간이 지극히 높으신 성자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지극히 커다란 영광이고 과분한 대우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말해준다. 그리스도는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인간에게 생명을 주고 하느님과 화해시켰으며 죄의 노예상태에서 구원하였다.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의 피와 죽음을 대가로 치루면서 구출한 인간이 존엄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최대의 희생을 통해서 구원된 존재이기에 누구라도 그를 천대하거나 함부로 다룬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인간에게 약속된 부활도 그의 존엄성의 토대가 된다. 물론 인간은 많은 환난을 당하고 죽음까지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육신도 썩어서 없어질 것이 아니고 성신의 힘으로 부활할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미래를 약속받은 인간은 존경스러운 대우를 받을 만하다.
● 인간존엄성과 인권
교회는 인권이 인간의 존엄성에서 나오고 그것에 토대를 둔다고 가르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인권이 사회나 국가 혹은 정치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과 그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에게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이 양도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누구에 의해서 제거될 수 있는 것도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인권의 침해는 단지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고 침해하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서 인간을 고귀하게 창조하고 그의 지위를 높여주신 하느님의 의도를 모독하는 죄악이다. 비오 12세 교황은 추기경단에게 한 연설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개인의 생명에 대한 권리, 육체의 안전권, 필요한 대우를 받을 권리, 위험에서 보호받을 권리 등을 창조주의 손에서 직접 받는 것이지 타인이나 인간집단, 국가나 국가의 집단, 혹은 어떤 집단에서 받는 것은 아니다”(A·A·S·38, 144-146쪽).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는 인권을 가장 종합적으로 다루는 문헌이다. 그것은 개인들 간의 인권, 국가와의 관계에서 인권, 그리고 국가 간의 인권을 다룬다. 회칙은 또한 인권이 공동체의 필요나 권리에 대항하는 것으로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권리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른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받자면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며 존중해야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회칙은 유엔의 「인권헌장」이나, 우리나라의 헌법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을 세밀하게 지적한다. 「지상의 평화」는 문화가치, 종교활동, 가정생활, 집회, 이주, 정치활동 등에 관한 권리, 즉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기본인권에 포함시킬 뿐 아니라, 생명과 적절한 생활수준, 그리고 경제활동에 대한 권리 등을 내포하는 사회적 경제적 권리들도 기본권에 포함시킨다.
여기서 유엔의 「인권선언」에 나타난 인권론과 비교하면서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이 보여주는 인권론의 특징을 지적하는 것이 마땅하다. 유엔 헌장은 시민 정치적 권리와 사회경제적 권리를 통합시키지 못하고 구분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강조하는 반면에, 사회주의자들은 사회 경제적 권리를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학적 체계와 정치체계가 서로 크게 상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은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교회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우선한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사회 경제적 권리가 우선한다고 고집하지도 않는다. 교회는 그 두 가지 권리들을 동등한 지위에 올려놓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그의 「유엔연설」에서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는 모두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고 모든 정치체제가 제공해야한다면서 그런 구분을 배척한다.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
이렇게 고찰하면, 인간 존엄성과 인권에 관한 것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존엄성 원리가 가장 기본적 원리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70년대와 80년대의 유신정권과 5공화국 시절을 거치면서 위정자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극심하게 유린하고 침해하는 상황아래서 살아야 했고 엄청난 아픔과 고통을 당했다. 집회의 자유, 진실한 정보를 받을 권리, 그리고 참정권이 극단적으로 침해되었다. 명맥을 유지하던 단체들은 거의 어용화되었다. 정부는 언론과 보도매체들을 철저하게 통제하였으므로 왜곡된 보도가 판쳤는가하면 진실한 보도는 극도로 억제되었다. 투표권은 완전히 거부되거나 왜곡되었고 비판자들은 온갖 명목으로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사회적 경제적 권리도 과도하게 침해되었다. 부당한 연행, 심문, 체포, 구금, 투옥, 고문이 자행되었고, 기본권을 행사하려고 하였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랑들이 불구자가 되고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빈부의 격차를 조장하던 정부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서민층은 의식주의 권리를 거부당했다. 노동자는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다가 해직되어 노동권 자체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빈번하였으며, 직장에 머물러 있던 노동자도 인간적 노동조건의 권리와 정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
이러한 현실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교회의 신념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방관적 자세를 취하면서 침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현실적 상황과 인간존엄성에 대한 신념 사이에 존재하던 괴리는 교회로 하여금 비판적 발언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러한 경우에 침묵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배신을 의미하거나 현실에 대한 묵인을 의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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