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람도 자기 자신만의 힘이나 지혜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자기 내부에서 힘차게 활동하는 생명력에 의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생명력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의 제1독서에서 바로 그 점을 상징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현대문명이 고도의 과학을 발전시켰고 인간이 우주를 향해 발돋움하면서부터 스스로 인간 자신의 하느님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까지 바벨탑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란 시대착오적인 어리석은 일이거나 비문명적인 미신으로 밖에 여기지 않거나 아예 무시 내지는 무관심하게 되었으며 혹은 돈 많고 한가한 사람들의 소일거리이거나 액세서리 정도로 까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한 관념들이 교회(특히 개신교)를 오늘날과 같은 심한 ‘공포분위기’를 만들어 인간들을 현혹시키는 곳으로까지 타락하게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종말론’을 왜곡시켜 ‘지구의 멸망’이니 ‘휴거’니 ‘최후의 심판’이니 하는 것들이 교회의 존재를 사회에 확인시키는 마지막 카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이 인도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라 할 수 없다. 물론 ‘최후의 심판’을 들먹이는 자들 역시 성령의 역사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결코 성령은 그렇게 비그리스도교적인 황당무계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따위 일은 절대로 하시지 않는다.
성령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갈라 5,22) 등의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만을 맺게 하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처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그래서 성령에 인도되지 않는 삶은 진정한 삶이라 할 수 없고 더군다나 크리스천이라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성령 없이 사는 것이 곧 바벨탑을 쌓는 일이요, 성령의 인도 없이 믿는 신앙은 형식적인 믿음이거나 전혀 비그리스도교적 신앙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교회는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세상을 향해 그 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성령 강림 날’이 바로 교회의 생일이다. 사도들은 물론이요, 다른 신도들도 예수님의 설교와 기적들을 그렇게 많이 보고 들었건만, 신앙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증거하지는 못했다. 사도들까지 도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요한 20,19). 그런데 성령이 사도들에게 내리시자,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한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성령은 하느님의 능력인 동시에 온 인류를 하나로 묶는 끈이시다. 그래서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에페 4,3)해야 한다. 바벨탑을 쌓을 때 흩어진 언어가, 성령강림 날에 일치를 이루었듯이 인간이 각 종족에 따라 갈라진 문화와 풍습 언어 등을 초월하여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러기 위해 성령의 샘에서 마셔야 한다.
그때 인간에게서도 샘솟는 생명의 물이 끊이지 않게 된다. 인간의 노력이란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허망한 것들뿐이다. 지금 굉장한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뽐내는 과학문화는 지구 자체를 멸망의 구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현대인은 마치 오만한 자들이 스스로 저질러 놓은 그 교만의 응보에 속수무책으로 있는 것 같은 가공할 시점에 있다. 그러니 지금도 늦지 않았다. 모두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려는 오만을 버리고 하느님의 능력(성령)으로 삼도록 하는 일이다. 그때만이 인간은 지구의 멸망을 구할 수 있고,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다운 존엄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은 간곡히 인류를 향해 호소하신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
인류는 스스로 쌓은 문화의 바벨탑에 짓눌려 멸망의 일보직전에 있다. 그래서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상을 제2독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22)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27).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는 하는 일마다 파괴용, 교란이요, 분열뿐이지만, 성령의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능력이 샘물처럼 끊이지 않고 솟아날 뿐 아니라, 사랑으로 일치하고, 이 세상을 하느님나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초국 위에, 그리고 전 세계에 성령의 사랑과 능력이 가득히 내리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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