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서 어느 날 오후 쇠창살 넘어 먼 들판의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의 신비를 바라보며 ‘어떤 소년을 만나게 될까?’ 생각하고 있을 때 상담실 문이 열리며 하얀 한복 차림의 볼이 붉은 미남형의 박군이 교도관의 계호를 받으며 들어섰다.
17세의 그 소년은 약간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지나간 사건의 내용을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핵심은 광신적인 프로테스탄트신자 부모가 몰고 온 가정파탄의 비극이었다.
그 교파는 오늘날도 사교로 지탄을 받고 있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바 있는데 박군 역시 그 희생자였다.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고 교회 일에만 광신적으로 몰두하는 부모에게 박군은 수차 눈물로 호소하며 간청했으나 그의 부모는 마이동풍격이었다. 마침내 학업을 중단하고 고의적으로 빗나갔다.
부모에 대한 반항심에서 그는 부모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장 잔인한 방법을 택했다. 대단히 추운 엄동설한에 친구 세 명과 범행을 모의하고, 택시 기사를 산으로 유인하여 나무에 매달아 동사케 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라디오 뉴스를 일부러 크게 틀어 놓고 저녁밥을 먹으며 “지금 보도된 저 범인이 바로 저입니다”라고 부모에게 밝히고 자수했다고 한다.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일인가? 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이지만 부모의 관심도, 즉 사랑이나 보호는 당연히 자녀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고, 반드시 주어야 하는 것이다. 박군의 경우 가치관이 잘못된 어른들의 광적 열기가 파생한 가슴 아픈 일이다.
상담함에 있어 수녀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별 거부감 없이 타의든 자의든 무슨 이유로 만나게 되든 상관없이 첫 면담 때부터 마음의 문을 열고 다 털어놓았다.
내가 본당에서 전교할 때 대학 졸업한 어느 레지오 단원 부인이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여호와의 증인이 자주 자기 집에 심방 와서 설교를 해주었는데 솔깃하여 거의 개종할 뻔 했으나 어느 날 그가 말 중에 ‘마리아는 마귀’란 말을 하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어 그나마 레지오 단원을 하면서 성모님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덕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며 체험을 말했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서를 모르는 사랑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목자를 모르는 양은 분별력이 없어 이리를 따라갈 수밖에…. 천주교에서 개종하는 사람은 모두가 성서를 모르기 때문이다.
박군이 살고 있던 감방에는 8명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그는 39도 고열로 신음하며 정신없이 앓고 있었다. 머리맡에 누가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언제부터 인지는 몰라도 마태오 형제가 자기를 위해 자지 않고 묵주의 기도를 바치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고마운 형제적 사랑에 감격하여 자기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고 했다.
그가 회복된 후 본인 스스로가 천주교에 입교하여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말없이 궂은일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하고 복음을 실천했다. 마침내 모범적인 생활로 재소자 교화 활동에도 많은 공헌을 하여 소장님 표창도 받았다. 교도소 측에서는 부모님들의 마음의 변화를 위한 방법으로 2박3일간 집에 귀휴도 보내준 결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고 그는 모범수로서 2년6개월을 앞당겨 가석방 혜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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