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교훈은 사도시대교회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의 바람직한 방향을 잡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의 근본정신을 간추린 요약이라 할수 있다.
모든 말씀은 사랑의 나라를 구현하려는 의도로 표현된다. 이 사랑의 원칙에서 모든 그리스도교의 생활 윤리가 적용되어 나왔다. 사도교회가 바야흐로 세계를 향하여 발전해 나아갈 때 교회는 외적으로 박해를 받고 있었고 내적으로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박해를 받는 교회는 이 세상의 삶과는 성질이 다른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였고 내적으로는 진정한 사도직의 법통을 지켜야할 필요가 있었다. 산상교훈은 어느 모로 보면 예수님의 교설의 시작이기도 하였고 신앙생활의 끝마감을 알리는 완세적(完世的)인 종말론이기도 하였다.
사도교회시대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행세하는 자들이 많았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며 주님의 제자임을 사칭하는 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유별나게 주님소리를 많이 입에 올렸다. 사도들은 내외로 죄어드는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했다. 사도 바오로는 예언、 구마 (驅魔)、 기적들이 신앙생활의 보증이 아니고 오직사랑만이 신앙생활의 표라고 하였다 (Ⅰ고린13、 2) . 마태오는『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하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고 한 예수님의 경고를 들려주고 있다. 루가는 자기들만이 예수와 동포이며 친한 사람들임을 자처하는 유대아인들을 가리켜 당신들은『우리가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거리에서 직접 주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았습니까』라고 하지만 예수님은『너희는 내 말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언제 봤다고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을 전하고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며 주님의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예수를 하느님이 보내신 구세주로 믿는 신앙과 이웃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실천이다. 남을 해치면서 주님주님 기도하는 것은 악을 일삼는 자들의 짓거리이다. 그들도 문을 두드릴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어디서 온 자들인지 모른다고 일갈하실것이다. 악을 일삼는자들! 물러갈지어다 주님을 부르는 것은 미사나 그밖의 전례에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하는 것으로 넉넉하다. 진정으로 자기를 뉘우치는 사람들만이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심정으로 주님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도는 사랑의 실천이 뒤따른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예수를 믿던 사람들은 정녕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였다. 사랑의 실천은 간단하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남에게 해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실천생활의 황금률이다. 『남에게서 바라는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공자도 비슷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다. 기소불욕 (已所不慾) 이면 물시어인 (勿施於人) 이라、 내가 싫은것이면 남에게 주지말라. 기원전 4세기에 아테네의 한 현자도 같은 말을 하였다. 남이 네게 화내게 하는 일을 너는 남에게 하지 말라. 이 명언을 유대아의 율법학자 힐렐도 율법을 해설하는데 사용하였다. 네게 나쁜 일이면 남에게 그것을 하지말라.
남을 해치지 말라는 성현들의 명언과 한걸음 더 나아가 남에게 좋은 일을 하라는 예수님의 활금률과의 차이는 구약시대의 정신과 신약시대의 정신의 차이이다. 예수께서는 지금 하느님나라를 열고 모든 사람을 교화시켜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악인과 선인을 가리는 심판이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이 나라백성이 될 자격을 주신다. 그런데 사람들은 식품과 같아서 내평개쳐두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닮은 자연적인 모습이 있다. 그것은 부정이며 모정이다. 아들에게 빵대신 돌덩이를 줄 아버지 어머니가 없고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수 없다. 빵과 돌、 생선과 뱀은 좋은것과 나쁜것을 대조하는 팔레스티나의 어법이다. 루가는 비슷하지 않은 달걀과 전갈을 비교하였는데 아마도 의사로서 몸에 유익한것과 해로운 것을 대조한것일 것이다.
악에 기우는 사람들도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자기 자녀들에게 이로운 것을 주지 않을 수 없거든 하물며 아버지 중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나쁘게 내 버려 두시겠는가. 이와같은 설득력있는 이론으로 늘 하느님께 청원하도록 간곡히 부탁하신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살이에서 요청할 것이 너무나 많다. 사실 요청할 것뿐이지 더 할 일이 없다. 어린이는 부모에게 요청하는 것이 효도하는 일이다. 하느님께 우리가 효성하는 일도 요청하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모르니 찾는 일이 도리이다.
찾자、 그리고 배우자. 하느님의 진리를 얻게 될것이다. 그리고 두드리자 반겨주실 것이다. 이렇듯 예수님의 산상교훈은 선의의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실한 언약으로 매듭짓는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권위있는 가르침에 놀랐다. 그 권위는 율법의 전통적인 권위가 아니라 하느님께로 부터 위임받은 권위임을 초대교회신자들은 성령으로 실감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새삶의 가르침이었고 기쁜 소식의 선포로 초대신자들은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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