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 이연숙 기자
■장소 : 가톨릭신문사 서울분실
■일시 : 1989년 12월13일
참석자
△오경환 神父 <가톨릭대학 교수>
△임보영 修女 <보라매청소년회관 관장>
△한홍순 敎授 <한국외국어대학 상경대학장>
△사회 : 이윤자 <가톨릭신문취재국장대우>
▲사회=바쁘신데도 이렇게 나와주신 오신부님 ㆍ 임수녀님 ㆍ 한교수님께 우선 감사드립니다.
80년대 격변의 시대는 교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사회변동에 따른 교회의 역할이 그어느 때보다 컸다고 봅니다.
이런 시기에 교회 스스로가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는지 반성해보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늘 좌담에서는 80년대 교회의 양적 질적 성장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면서 90년대를 여는 교회 모습을 진단해 보고자합니다.
80년대의 교회를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먼저 오신부님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대규모 교세확장
▲오=글쎄요.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들지만 80년대 교회는 70년대와 끊어진 것이 아니라 연관지어서 생각해야한다고 봅니다. 80년대에 특히 신자수의 엄청난 증가는 70년대교회 활동의 결과일 수 있기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교회가「자기」를 분명하게 보여준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한=저도 오신부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한국천주교회 2백년 역사를 보면 전반부 1백년은 박해시대였고、 후반부 1백년은 박해를 거쳐 자기모습을 드러내는 시대였습니다. 교회가 원했든、 원치않았든간에 교회모습을 이 사회、 이 세계 속에 드러내면서 자신감을 갖고 주체의식도 확인했습니다.
특히 80년대에 두차례의 걸친 교황 방한이나 1백 3위 성인탄생들으로 전세계 교회가 한국을 주목하게 됐습니다.
▲임=80년대 교회는 한마디로 분주하고 어수선했다고 봅니다. 조선교구설정 1백 50주년 ㆍ 2백주년 ㆍ 세계성체대회 등 3차례의 대규모 행사를 통해 거대한 집단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이같은 집단행동은 집단행동을 잘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맞물려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 내면을 잃고 허위의식이 많아진 것이지요.
특히 지난 10년간의 교세 신장율이 1백 90년간의 증가폭과 맞먹는다는 것은 놀랄만한 사실이지만 냉담자 ㆍ 행불자가 많다는 사실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교세의 급신장은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냉담자가 전체 신자의 10%、 행불자가 13% 정도로 50여만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큰 문제입니다. 왜 냉담을 했는지、 행불자는 어디에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또 신자들이 도시에 집중돼있고 중산층에 몰려있는 계층별 지역별 편중현상도 큰 문제입니다. 교회가 가난한 계층을 싫어하고 밀어낸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는지、 과연 가난한 계층이 우리교회를 어떻게 보고있는지 격정됩니다.
그리고 중산층 신자가 많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신자화율이 낮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성직자가 서민보다 중산층에 더 관심을 갖느냐」는 최근의 한 설문조사에서 본당신자들은「그렇지 않고 고루 관심을 갖는다」고 대답한 반면、 JOC나 농민회 ㆍ 천도빈 등의 사회운동단체 신자들은「중산층에 더 관심있다」고 응답해 의식의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이것이 대표성을 갖는다고 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교회가 농촌과 달동네 전교에 더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안나오면 나올수 있는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합니다.
▲임=오신부님 지적대로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심각히 생각해야 하겠지만 아직까지 교회하면 성직자 ㆍ 수도자를 연상하기 쉽습니다. 거룩하고 훌륭하고 희생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부정적 요소 등은 이해의 양극화 현상을 뚜렷하게 나타냅니다.
예를들어 고위성직자가 가난한 지역을 자주 방문하는 것도 좋은 격려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방문할 때 몇번쯤은 자가용대신 공공교통수단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자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도자들의 삶에 있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가는 바른 시각이 정립돼야 한다고 봅니다.
▲한=평신도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평신도 스스로가 어떤 것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두어 자제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외형적인 것에 집착하고 물질 중심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평신도의「양과 질」의 문제를 논할 수 밖에 없는데 1930년대「가톨릭청년」에도 양이냐、 질이냐 하는 문제를 거론한 것을 보면 이 문제는 계속 제기돼온 문제라고 봅니다.
오신부님 지적처럼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대상으로 하는 가난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많은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때문에 불만과 갈등을 더 갖는듯 합니다.
▲사회=70년대에 이어 80년대 한국교회는 정의를 향한 목소리를 높여 이 사회의 숨통을 트게 함으로써 힘있는 교회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80년대에는 평신도들의 활동이 두드러졌지만 과연 교육 ㆍ 영성 등 내적인 면도 충실했는지 문제가 제기됩니다. 평신도이신 한교수님이 먼저 말씀해 주시죠.
▲한=무엇보다 평신도들에게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심어주어야 합니다. 또 평신도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우리 교회는 평신도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교회라고 자랑을 하지만 평신도들이 얼마만큼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성직자 ㆍ 수도자의 역할이 크지만 평신도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평신도에게 지식전달의 교리교육도 중요하나 신앙 ㆍ 삶으로서의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주교님들이 실시한 현장체험이 일선 본당 사목자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도 폭넓게 확산돼야 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교세성장의 허와실
▲사회=몇년전 우리 주교님들께서 소외지역들을 현장체험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교님들은「정말 몰랐었다」「진한 체험을 했다」는 소감을 털어놨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삶의 자리에 가서 함께 살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오=한국의 많은 평신도들은 신영세자들입니다. 영세 후 과연 얼마나 깊이있게 변화했는지、 그리스도교적인 정신이 깊이 배어있는지 의문입니다. 너무 성급하게 영세하는 것은 그 신영세자 자신이나 교회 전체를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충분한 기간을 갖고 철저히 교육받은 후 영세하도록 예비자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아울러 신심 ㆍ 액션단체의 적극적인 참여와 신자 재교육도 계속돼야 합니다.
▲임=지난번 주부들의 모임에서 나온 얘기들인데요. 2~3시간동안 열심히 이야기한 결론이 남편출세 ㆍ 재산증식 ㆍ 자녀교육으로 모아졌습니다. 바로 이 3가지 문제는 사회전반을 휩쓸고 있는 가치관으로、 결국은 신자건 비신자건 똑같이 머리 속에 꽉 차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가치관이 극대화될때 복으적인 가치관은 힘을 잃게 됩니다. 더 나아가 사람으로서의 본 모습을 상실하게 할 수도 있겠지요.
왜 세상이 이러냐고 한탄만하고 비판을 하지만 자신들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교회는 이런 가치관이 극대화되는 것을 막고 사람으로서 살아갈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한=삶과 신앙의 이원화 현상이 심각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 자신이 교회라는 주체의식을 느끼고 성전건립 등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자기 도취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90년대는 눈에 보이는 교회활동에만 국한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 평신도들의 활동이 폭넓게 확산돼야 하겠습니다.
나눔의 일원화 심각
▲사회=이번에는 나눔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교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은 3백개를 넘고있어 결코 교세성장에 뒤떨어지는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이상태로 만족할 수는 없겠지요.
또 고착되어가고 있는 교구 본당간의 벽을 과감히 허물고 서로 나누는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농촌이 점차 피폐화돼가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과 맞물려 있는 것이기에 근본적인 나눔실천이 잘 안되는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회현상이 그렇다고 교회도 마찬가지라면 곤란하겠지요.
▲임=사회에서 청소년 문제가 점점 심각하게 부각되는데 이는 한쪽 가치관만을 강조하는데서 빚어지는 현상이 아닐까요. 청소년 전인교육의 장이 무엇보다 아쉽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보라매 청소년 회관과 같은 시설들이 적어도 각 도단위에는 하나씩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 본당들도 자기 입장에서 볼 때는 늘상 부족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본당예산의 상한선을 정해놓고 주위를 둘러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옆을 쳐다보지 않고 올라만 갈 겁니까. 「나눔의 제도화」가 필요하고 또 청소년 교육을 위해서도 교회가 이바지해야 합니다.
▲한=지금 임수녀님께서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해주셨는데 교회상황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제도화했을지라도 본당신부의 사목방침에 따라 그 내용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본당 평신도 지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서울의 모본당이 지방의 한 교구와 자매결연을 맺고 계속 지원해오다가 본당 주임신부가 바뀌자 지원을 중지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칫 타성에 젖어 자립심을 키우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지역에서 무턱대고 중지하면 어떻하느냐고 항의가 왔고 뒤이어 다시 부활시킨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눔문제에 있어 필요한 것부터 함께 나누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넉넉한 본당 ㆍ 교구가 그렇지 않은 지역에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나눔이 강제성을 띠어서는 곤란하고 자발적이면서 조직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받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생길수 있다는 한교수님의 지적은 사목 경험상 공감합니다.
이런면에서 볼 때 자립을 원칙으로 세워두고 그때까지 활발한 지원활동이 이뤄져야 하리라 봅니다.
성직자들의 나눔문제도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어느 본당이나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본당신부들이 바쁜중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사회=최근 거론되고 있는 토지공개념 문제에 대해 교회일각에서는 성명서를 내는 등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토지고개념과 나눔문제、 이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오=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여러방안이 나온것 중에 하나가 토지공개념입니다. 주교회의 산하 정평위에서는 이에 대한 성명서를 냈으나、 주교단은 독자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고 정평위 성명서를 그대로 추인 했습니다.
이제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회에서 활동하는 다른 이들과의 나눔을 위한 일에도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임=저는 경제문제에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서투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토지공개념은 극히 크리스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자원은 하느님의 몫이고、 자본은 그 사회의 것이고、 자기 몫은 스스로의 노동의 대가를 통해 얻는 것이라는 개념이 정립된다면 땅이 투기의 대상이 되지는 않겠지요.
▲한=원칙적으로는 토지공개념에 동의하나 실천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토지가 투기의 대상이 되는 구조자체가 바로 문제입니다. 혹시 토지공개념을 놓고 교회 자신도 반성을 점은 없는지요. 토지 소유의 편중도 문제이고 이와함께 공개념의 의식화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참여는 삶자체
▲사회=80년대는 참으로 사건이 많았습니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 ㆍ 제5공화국 탄생 ㆍ 버마 아웅산사건 ㆍ KAL기 피격 및 폭파 사건 ㆍ 6ㆍ29선언 ㆍ 제6공화국 출범 등등. 그리고 7ㆍ7선언이 통일문제에 대한 활성화의 계기를 이루기는 했으나 후속조치가 없어 혼란을 가져왔고 결국 임수경 ㆍ 문규현 신부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사건 속에서 교회는 82년 인권주일을 설정、 사회참여부분에 있어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습니다만 교황회칙 ㆍ 사회가르침에 대해 신자들이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혼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치 ㆍ 사회적 상황 속에서 교화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봅니다.
▲오=교회의 사회참여는 정치 ㆍ 경제 ㆍ 사회의 잘못 ㆍ 기본적인 인권침해 등에 대한 항의 ㆍ 비판으로 나타납니다. 비판적 항의뿐 아니라 침묵도、 체제지지도 사회참여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교회는 주로 비판적 항의를 많이 해 왔습니다. 정평위 ㆍ 농민회 ㆍ 정의구현사제단 그외 단체들을 통해 잘못된 점을 많이 지적해 왔습니다.
대체로 80년대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적절한 한계를 지키며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또 80년대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사회참여시 김수환 추기경님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이 혼란한 시기에 김추기경님은 신자들의 사회참여 노력을 보고、 끌어주고、 밀어준 것은 큰 힘이 되었지요.
▲한=사회참여는 삶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사회 속에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사회참여는 주로 성직자 중심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바로 우리 평신도들의 역할인데 말입니다.
교황님께서도 평신도들이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속으로 나가라고 사회참여를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교회의 사회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예비자 교리 6개월동안 이 부문에 대한 교육은 거의 없는듯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바로 평신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인데도『왜 교회가 나서느냐』는 애끼가 나오게 됩니다.
▲임=저도 한교수님의 말씀과 맥락을 함께 하는데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삶의 가치관 ㆍ 기본패턴이 사회참여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발언 등 대사회적 발언도 사회참여의 일부분이겠지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을 거스르는 행동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70 ㆍ 80년대 정치 ㆍ 사회 여건상 사회참여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방법적으로 서툰점이 있어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90년대는 또다른 모습으로 참여가 확산돼야 하리라고 봅니다.
▲사회=70 ㆍ 80년대 교회의 사회참여는 사회적 배경과 직결돼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 박해시대 ㆍ 일제시대 ㆍ 6ㆍ25를 거친후 정비된 모습 속에서 사회의 모순을 보는 눈이 생생하다고 봅니다.
이런점에서 볼때 이제는 사회참여문제를 새롭게 정립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견해들을 갖고 계신지요.
▲오=앞서 미처 지적을 못했습니다만 사회참여란 말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속에 살고있는한 사회참여는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사회참여는 정치참여라고 보는게 좋겠습니다.
가톨릭역사를 살펴볼 때 교회는 언제나 정치참여를 해 왔습니다. 체제옹호를 하든、 비판을 하든、 그 양식이 달랐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진 나라의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바깥으로 외치면서 교회안에서의 민주화를 이루었느냐는 질문을 받곤합니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평신도 수도자 특히 여성들의 참여폭이 넓어지면서 90년대에는 특히 교회내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사회=공해문제 ㆍ 낙태문제 등도 교회가 적극 나서야할 사회참여의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평신도들의 사회참여 ㆍ 정치참여가 없으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생명력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신도들이 정치 ㆍ 사회 ㆍ 경제 ㆍ 문화의 각 영역에서 인간의 공동선 실현을 위해 적극 뛰어들어 실천하고 성직자들이 지원할때 힘이 있고 사회변화도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낙태문제만 봐도 신자가정이나 비신자 가정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보이는 인권만 중요하고 보이지않는 태아의 인권은 존중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까.
환경윤리 정립도 시급하다고 봅니다. 평신도 기업인이 공동전선을 펴 이를 해결해야 하기에 더욱 의식화가 필요하고 아울러 사회교리도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교리연구소 활동이 활발한 유럽에서는 지금까지의 고발차원에서 이제는 적극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임=결국 교육으로 귀착된다는 것이겠지요. 복음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전문가 양성이 너무나 안돼 있습니다. 청소년 분야에도 기능인은 많으나 지도자가 없어 전문인력양성이 시급합니다. 무엇보다 90년대는 사회의 각 전문분야를 복음화하는 전문가양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아울러 교회가 이 부분에 과감하게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사목자도 역시 분야별 전문가가 나와야 합니다. 청소년 ㆍ 노동 ㆍ 공해분야 등의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평신도 전문가를 양성했으면 합니다.
이런점에서 얼마전 서울대교구가 특수하목과 전문사목을 구분한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
남북간 불신 해소를
▲사회=사회참여에 대해 지금까지 폭넓게 의견을 교환해 주셨는데 이제 통일문제로 주제를 바꿔보겠습니다. 80년대에는 희망과 기대를 안고 통일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왔고 그 와중에서 문규현 신부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이와 관련、 한국교회가 한민족 통일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주십시오.
▲오=남한이든 북한이든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교회가 정치참여를 하느냐는 문제와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는가는 좋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한과 북한간의 불신의 벽부터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특별히 교회가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문신부 사건은 교회가 통일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되겠다는 영원에서 나온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문신부와 사제단은 북한을 이롭게 하고자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또 7 ㆍ 7선언이 있었기 때문에 문신부의 2차 입북과 사제단의 파견은 불법행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에 그러한 행동이 지혜로 왔는지는 의구심이 갑니다. 그리고 입북후 문신부는 되도록 말을 자제하고 임수경양 곁에 있다가 함께 돌아왔으면 참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 행동을 위해서는 시기와 장소 ㆍ 방법을 잘 선택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임으로는 통일을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부터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통일문제에 대해 교회가 발언할 때 그 근거는 과연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통일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 때 누가 전문가인지 찾아보고 진지한 의견을 듣기보다는 혹시 한쪽만의 얘기만을 들은 것은 아닌지요.
아직까지 통일에 대한 여건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통일을 강요해서는 곤란하고 교회는 우선 도덕적 바탕부터 마련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민족의 동질성이 깨지지 않도록 교회가 이바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임=어쨌든 북한사람들도 한형제로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들을 위한 마음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과 함께 언어 정립운동을 펴 나갔으면 합니다. 개정판으로 새로나온 북한 사전에는 과거에 없었던「신부」「수녀」라는 낱말이 들어 있었는데 그나마 그 설명이 너무 엉뚱했습니다. 그들에게 성직자 ㆍ 수도자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벽도 좁혀지지 않을까요.
삶 ㆍ 신앙일치돼야
▲사회=통일이라는 대전제 하에 먼저 내적 준비를 해야한다는 내용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민족의 동질성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을 한 형제로 받아 들이는 마음의 자리를 마련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교세、 나눔、 사회참여、 통일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눠주셨는데 이번에는 문화에 대해 한번 짚고 넘어가보겠습니다. 문화의 개념정립은 참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문학 ㆍ 연극 ㆍ 영화 ㆍ 출판 등을 우선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의미가 퍽 광범위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사회참여를 통해 교회가 복음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면 90년대는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통해 복음화를 모색해 나가야한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말씀을 나누어 주십시오.
▲임=문화하면 저는 교회전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교회전례는「로마보다 더욱 로마적」이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전례의 생활화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삶과 신앙이 분리되는 것이겠지요. 90년대는 복음을 심화시킬수 있는 우리의 전례문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감각에 맞고 심화시킬수 있는 전례 교육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회 문화 ㆍ 전례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현실로 나타내는데 있어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80년대 문화활동을 꼽는다면 우선「가톨릭신문」이 발전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지면도 들고 독자수도 많아지고 또「평화신문」「평화방송」이 나온것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서적 ㆍ 유인물도 다양해졌습니다. 월간지만 해도 몇개가 늘었고 각 단체의 회보 ㆍ 월보 발간이 활발해졌을뿐 아니라 기록으로 남기려는 의지가 많은듯 했습니다.
또한 문화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여러 단체도 생겨났고 이런 단체들의 활동을 통한 문화의식의 진작도 크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는 문화 연구에 대한 지원에는 거의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90년대에는 교회내 문화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문화연구가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뒤따랐으면 합니다.
▲사회=아직까지 교회는 문화하면 배부른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여겨 뒷전으로 밀어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무엇보다 가톨릭 신자 문화 ㆍ 예수인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복음화에로 나아갈 수있는 작품을 구상하도록、 그리고 복음 선교의 방안으로 문화를 적극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오=주교회의 산하에 있는 문화분과위원회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전담자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각 교구 차원에서도 문화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관심을 두었으면 합니다.
▲한=우리교회는 지원이라는 측면을 우선 재정부분을 생각하고 불우이웃돕기 등 나눔분야를 생각하는데 정신적인 측면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청년문화를 들 수 있는데 젊은이들 중에서 가톨릭을 외래종교라며 비판하는 소리를 듣고 섬찟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그들은 교회에 등을 돌리게되고 결국 우리교회도 노령화 현상이 나타나 유럽교회를 뒤쫓는 꼴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문화는 정의 ㆍ 평화의 기초입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이에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면 앞으로는 문화의 복음화를 위해 이 분야의 전문 사목자가 나올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복음화 이룩해야
▲사회=80년대 우리 교회는 너무 많이 뛰었습니다. 10년에 하나씩만해도 좋았을 큰 행사를 3개나 치르면서「힘의 과시가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80년대의 긍정과 부정을 보면서 이제 90년대 교회를 전망하는 것으로 이 자리를 마감할까 합니다.
▲오=구약성서 중 미가서 6장 8절에『이 사람아 아훼께서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첫째 개인적으로는 하느님과 밀접하게 사는 것이고 둘째는 가까운 이웃에 은덕을 베푸는 것이고 셋째는 정의실천을 통해 사회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3가지가 모두 신자들이 가져야 할 요소로 하나라도 빠지면 잘못된 영성으로 흐르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이 3가지 모습을 충분히 사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임=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물론이지만 사회복음화를 위해 전문가 양성이 꼭 이뤄져야 하겠습니다.
▲한=85년 주교시노드 임시총회에서 나온 마지막 메시지 중『교회는 자선에 대해 말하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말해야한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90년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말하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친교를 이뤄나갈 때 세상에 열려진 교회모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회=눈부신 성장 속에서도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고 외향적인 모습이 80년대 교회였다면 90년대는 진짜 크리스찬의 삶을 살면서 복음화를 이룩해야 한다는것이 세분 결론의 요지인 것 같습니다.
90년대는 겸손한 자세로 우리 자신의 속을 채우면서 이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 나아가 세계에 모범을 보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장시간동안 수고해주신 세분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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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