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이네 가정의 새해 아침은 유난히 활기차다.
새해를 맞는다는 기쁨은 물론이려니와 며칠 있으면 태어날 예쁜 아기를 맞을 설레임 때문이다. 그리고 90년대를 여는 한해를 열심히 살아갈 것을 가족 모두가 다짐하면서 특히 새 생명이 더 맑은 공기 속에서, 더욱 건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가득하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두래아파트 1동 4백 10호. 27평의 아늑한 아파트에는 아버지 김정수씨(다니엘ㆍ40) 어머니 방혜숙씨 (글로리아ㆍ38) 그리고 중 1인 은경(바실리사ㆍ14) 이와 국 5인 막내 병록 (안드레아ㆍ12) 4식구가 화목하게 살고 있다. 어머니가 만삭중이라 며칠 있으면 다섯식구로 늘어난다.
은경이네 집은 도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나 일반 가정과 몇가지 다른점이 돋보인다.
우선 그 흔한 TV가 집에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TV에 매달려 공부에 지장이 있고 동요대신 기성 가수 흉내를 내는가 하면 가족 간에 대화가 없다는 것 등의 이유 때문에 2년전 아예 TV를 없앴다.
처음에는 허전한 것 같기도 했지만 그 시간에 독서를 하고 가족간에 대화도 활발해졌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큰 소리치는 일이 적어졌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로 바뀌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TV 드라마ㆍ가수ㆍ코미디에 대해 얘기할 때 은경이와 병록이는『너희들은 이런 책을 읽었느냐』며 오히려 책을 많이 읽는 것을 자랑한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TV를 완전히 끊지 못한 눈치이다.
또 은경이네 가족은 모두 머리를 감을 때 샴푸대신 비누를, 린스대신 식초를 사용한다. 그리고 빨래도 합성세제대신 빨래비누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한강 오명의 주범이 합성세제이고 물고기 떼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 가족부터라도 한강물을 깨끗이 살리는 일을 시작해야한다는 어머니 방혜숙씨의 행동에 가족들이 모두 참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렵고 뻣뻣하던 머리결이 3개월이 지나자 윤기가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 등 훨씬 건강해진듯 하다.
한살림공동체 소비자협동조합 조합원인 방혜숙씨는 농약이 안든 농산물을 이용, 땅도 살리고 인간도 살리는 생명운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며 신앙을 실천하고 있다.
방혜숙씨는 재작년 이곳으로 이사오기전 장안동본당 소속이었을 때 그 당시 본당주임 박고빈 신부의 영향을 받은데다 주부대학에서 한 살림을 알게돼 그 정신을 실천하며 아파트의 이웃들에게, 특히 가정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주부들에게 열심히 이 운동을 알리고 있다.
『내 가족만 건강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에게 또 그 후세에게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오염되지 않고 잘 물려주는 일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고 또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이러한 활동탓인지 공장지역에 위치한 아파트이지만 은경이네 집안은 신선하고 맑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맑고 건강하게 자라는것 같다.
새 아파트이지만 공장지역에 자리잡은 탓에 다른 지역보다 공해가 심한편. 지난 여름에는 은경이 어머니를 비롯 이 아파트 주부들이 매연 때문에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주일에는 가끔 가족이 함께 미사참례하러 도림동성당에 가기도 한다. 사업상의 모임ㆍ고향친구 모임 등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대자 (代子) 모임이 가장 좋다는 아버지 김정수씨. 가족들보다 늦게 3년전 장안동 본당에서 영세ㆍ견진을 한 김정수씨는 대부와 자신을 포함한 대자 5명이 모이는 대자모임은 주로 영명축일 때 온가족이 함께 모여 축하를 나누고 부부피정도 하고 종교영화 단체관람은 물론 성지순례를 가기도한다. 한번 모일 때 30명이상이 모여 1박 2일씩 함께 보내는 이 모임을 대부가 잘 이끌어가고 있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사업을 하고있는 김정수씨는 지난 한해동안 앞만보고 일에만 몰두했다면서 새해에는 교회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 지난해 못다한 몫까지 하고싶단다. 무엇보다 선심 (善心)이 아닌 선심 (先心) 의 자세로서.
뒤늦게 아이를 가진 것이 오히려 집안에 활기를 주고있다는 방혜숙씨는『아이들이 엄마가 무리하면 안된다며 설거지ㆍ청소 등을 거들어 주는 것을 보면 제법 의젓해진 것 같다』며 흐뭇해한다.
키가 1백 67cm로 여중 1년치고는 큰 편인 은경이는 정의를 위해, 말과 행동의 일치를 위해 정치가도 되고싶고, 경찰도 되고 싶고, 때로는 시인도 되고 싶은 꿈많은 사춘기 소녀. 더 많은 친구들과 폭넓게 깊이있게 사귀고 싶다는 은경이는 아빠가 좀더 개방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동안 오락실에 몰두, 밤 1시까지 엄마 아빠가 찾아 해매는 등 속을 썩이던 병록이는 6학년이 되면 꼭 반장을 해보고 싶단다. 미사 때 복사가 하고싶어 1개월간 빠지지 않고 새벽미사에 참례했으나 뚱뚱한 편이라 복사옷이 맞는 것이 없어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하던 개구장이.
은경이네 집은 이처럼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신자가정이면서 바로 가정에서부터 환경보호ㆍ생명운동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다른 가정에도 고루 확산돼 우리 모두가 정말 맑고 건강한 새해 새아침에 특별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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