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예수께서는 당신이 맡기실 교회생활의 태도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훈시하고 계시며 이 훈시는 초생교회가 직면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교회통치를 책임 맡은 자들의 진정한 태도를 훈시하신 다음(136회 참조) 교회 밖의 국외자에 대한 태도, 교회 안에서의 생활태도에 대하여 차례로 훈시하신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요한이 예수께 와서 아뢰었다.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는 사람이 당신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 제기는 사실 초생 사도교회가 지녔던 문제의 반영이다.
제자들은 사도로 임명될 때와(마태 10,1) 주님의 파견을 받을 때(마태 10,8 마르 6,7:루카 9,1)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을 받았고 그들은 파견에서 돌아와 마귀를 쫓아 낸 것을 예수께 보고하며 기뻐하였다(루카 10,17). 사도교회시대에도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며 주님의 능력을 떨쳤다(사도 3,1-10, 12-16:9,31-43).
사도시대에는 돌팔이 구마자들이 주문을 외며 마귀를 쫓아낸다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사도 13,6 이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예수의 이름을 도용하거나(사도 19,13) 사도들에게 그 능력을 팔라고 하기도 하였다(사도 8,19).
이러한 상황은 초생교회에 적지 않은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었고 예수 생시에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도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혈기에 찬 청년 제자 요한은 이러한 사태를 그저 쳐다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요한 형 야고보와 함께 제베데오의 아들이며 성격이 불같다하여 천풍의 아들들이란 별명을 가진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이들은 예수를 환영하지 않는 사마리아 마을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치겠다고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루카 9,54 이하).
그가 예수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는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즉시 그 일을 못하게 중지시켰고 이 사실을 예수께 보고 드렸던 것이다.
‘우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은 우리와 함께 다니지 않는 사람, 우리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으로 예수를 믿고 예수의 이름을 지닌 예수의 사람들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 표현은 초생교회에서 상당히 귀중한 개념이며 사도 바오로의 서간의 그리스도공동체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당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함직한 대목에서 복음사가는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 당시의 공동체의 식이 굳건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께서도 ‘우리’라는 말을 받아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자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은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다’(마태 12,30:루카 11,23)라는 말씀과 위배되는 것처럼 들리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은(우리대신 나로 바꾼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라는 논리적 분석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달은 둥글다’라고 할 때 ‘둥근 것 중에는 달이 있다’라는 말과 같다.
그 다음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 중에는 나와함께 있는 사람이 있다’라는 말이다. 그러니 나의 편에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있는 사람과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얼핏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내 편 사람’과 ‘내 반대편 사람’의 표현은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키케로(기원전106~43)의 명언을 인용하여 복음사가들이 당시의 교회가 취할 태도를 표명한 것이었다. 키케로는 피가리우스를 변론하는 연설에서 ‘우리 편에 서 있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원수로 생각하며 당신 반대편에 있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당신 편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지칭한 훈시는 교회 안에서 결속을 호소하는 말씀이고 내 편에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라는 교훈은 교회밖에 있지만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를 해칠 리가 없으니 굳이 배척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민수기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모세가 장로 70인을 성막 안으로 불렀을 때 야훼의 영이 그들에게 내려 예언을 하게 되었는데 성막 안에 들어오지 않았던 엘닷과 메닷도 같은 성령을 받았다.
이 사실이 보고되어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그들의 예언행위를 금지시키라고 했다. 모세는 그 둘뿐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고루 성령이 내려 모두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민수 11,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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