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매연으로 다져진 땅
퇴락한 회색의 도시 위로
오든 잔뿌리들 엎드려
숨 죽이고 있는
이 시대의 음습한 구석구석으로
당신은 지금
금빛 먼지털이를 흔들면서 오십니다.
칼칼한 바람
균열된 나무껍질 밑에서
뻣뻣하게 말라붙은
뗏장밑에서
그리고 온 겨울
가시만 곤두세우고 섰던
장미나무 언저리에서
오, 그 쨍쨍하게 조여 오던
칼얼음 밑에서
당신은 지금
소리없이 부지런한 손 놀리면서
치유의 일념으로 온 세상에
금싸라기 향기롭게 뿌리며 오십니다.
백년의 잠 깨어
푸른 하늘 비로소 우러러보고
부신 눈 껌벅거리며
왈칵 울음 터뜨리고 싶은 이 아침
이제 막 세수하고 나선 순결한 아이의 미소로
당신은 오십니다.
어둡고 추운 기억들 하나씩 둘씩
문지르면서
서러운 사람들 모여 앉은
척박한 마당 한가운데
어깨 기대고 앉아
반딧불 지켜보며 꿈구던 아이 적
자장가처럼 평화롭던 할머니의
도란도란 물길같은 목소리로
당신은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다친 상처에 기름 부어
접혔던 우릎 펴게 하던 손
오늘도 곳곳에서
홍해의 물 갈라 내고 피 묻은 손들
다시는 피 묻지 않게
스스로 피의 십자가 짊어지신
그날 이후
날마다 다시 부활하는 사랑으로
아득한 세상 건너서
오늘도 당신은
뼈로 살로 실핏줄로 스며 드는
일용할 양식이 되어
우리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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