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한국교회의 해외선교활동은「받는교회」에서 「주는교회」로 위상을 드높였다. 이제 90년대 해외선교 방향을 정립할 때이다.
81년 11월 한국외방선교회 선교사제로 파푸아뉴기니에 파견됐던 김진형 신부(원주교구)로부터 그 문제점과 대처방안에 대해 들어본다. 김 신부는 파푸아 뉴기니 마당대교구 왈리움본당 초대주임을 역임하다 89년9월 귀국, 현재 선교신학공부를 위해 캐나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대북선교의 장을 열 90년대가 왔다. 2백주년과 세계성체대회를 잘 치르고 그 동안 선교사를 해외에 파견하여 성숙한 나눔의 모습을 보여 준 한국교회는 이제 대북선교라는 큰 과제 앞에 서있다.
세계의 역사가 커다란 개방의 물결 속에서 전환점에 와있다. 우리는 동서를 갈라놓은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감격 속에서 지켜보았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 철조망이 없어지는 모습도 보았다. 한편 최근 열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고르바초프의 회담에서 소련의 복음화와 개방의 가능성은 확실해졌다.
이런 동구ㆍ소련의 개방은 곧 중국ㆍ북한에도 영향을 줄 것이며 같은 흐름으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때 90년대 한국교회의 임무는 북한과 중공의 선교 즉, 대북선교의 장을 여는 것이다.
세계교회의 선교상황을 살펴보면 한국의 대북선교 의무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늘의 유럽교회는 재선교지로 부각되고 있다. 수도원과 신학교가 텅텅 비고 신자들은 교리에 별 관심이 없는 상태이다.
선교사 파견과 함께 선교의 재정적 지원을 해온 유럽교회는 선교를 뒷받침할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 내가 선교하던 파푸아뉴기니의 경우도 유럽으로부터 선교사와 재정지원이 차츰 줄어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 지역 젊은 선교사는 거의 대부분 아시아출신이다.
동구라파가 개방되고 종교선교 자유가 보장되면서 폴란드ㆍ헝가리 등 가톨릭 국가들의 교회가 재선교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있다.
그러나 유럽교회의 재선교는 새로운 차원의 교회쇄신과 정책, 그리고 운동이 요구된다.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남태평양 지역은 선교비율이 매우 높다. 그러나 선교의 주체가 되기에는 미성숙하고 자립교회를 이루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이 지역교회에는 사제ㆍ수도자 성소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교회는 자생능력의 배양을 위한 세계교회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있는 아시아지역을 보면 선교율이 가장 낮다. 아시아에서 필리핀ㆍ베트남ㆍ인도와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복음화율은 1% 미만이다. 세계 인구의 1/4 인 중국과 일본은 0.5%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문화적 전통이 깊은 아시아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선교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게 한다.
아시아는 선교의 우선적 대상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벽때문에 아시아인에 의한 선교의 가능성을 스스로 구상해 봄이 바람직하다.
현재 필리핀ㆍ인도ㆍ인도네시아 교회에서는 선교사를 파견하고 세계복음화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있다.
필리핀 교회가 말레이시아와 남태평양 문화권 선교에 적합하다면 인도는 내부선교와 더불어 인도문화권 선교에 더 효율적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한 (漢) 문화적인 북한ㆍ중국 선교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교회 안에서 한국교회의 선교의무와 책임은 우선적으로 북한과 중국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우리교회의 해외 및 대북선교는 어떻게 시도되어 왔는가를 한번 살펴보자.
해외선교는 1981년 11월 한국외방선교회를 필두로 명동대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김남수 주교 등 한국교회의 주교들에 의해 4명의 사제를 파푸아 뉴기니에 파견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루어졌다.
1년 후에는 전주교가 3명의 사제를 남미에 파견했으며, 그 후 교구사제들이 산발적으로 해외선교에 참여하기도 했다.
수도회의 경우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ㆍ포교 성베네딕또수녀회를 비롯, 까리따스수도회가 아프리카ㆍ남미ㆍ오세아니아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그 외의 수도단체에서도 유럽ㆍ아시아 등에서 선교활동을 펴고 있다.
한편 최근 서울대교구 및 안동교구가 프랑스교회를 돕기위해 사제를 파견함으로써 새로운 선교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 남미의 선교에 직ㆍ간접으로 참여하는 평신도들도 있다.
중국ㆍ북한 등 대북선교에 대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오고 있으며 어떤 대책을 강구해 오고 있느냐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부정적이며 실질적인 시도는 지금부터라 할 수 있다.
중국교회에 대한 선교는 속수무책이었으며 지하 한인교회와의 편지연락, 성서보내기 및 제3국에 거주하는 소수의 한국사제들의 방문 등 간접ㆍ소극적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북한선교는 먼저 북한선교위원회를 중심으로 기도ㆍ세미나 등을 통해 의식을 고취시키는 간접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최근 민족적 과제로 통일논의가 활성화되면서 제3국에 거주하는 사제들이 북한을 방문, 신자들을 만나 접촉했고 통일신학연구소가 교회 내에 발족되어 학문적 연구가 진행됐다.
북한당국에서는 평양에 성당을 짓고, 정치적 이유겠지만 제한된 종교행위를 허용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바티깐 외교를 통한 실무가능성을 타진했으나 현재 일련의 정책들은 중지상태에 있다.
과연 우리는 90년대 우리에게 주어지는 커다란 대북선교의 의무를 수행하기위해 어떤 자세와 방법론을 취할 수 있는가?
우선 선교의 의미를 일치와 나눔의 관점에서 볼 때 선교는 하나되고 도우려는 강한 마음과 의지가 요구된다.
대북선교는 일치와 나눔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전제하에서 선교의 방법론은 첫째 직접적인 만남의 장을 넓히는 것, 둘째 자체 내부 활성화와 재생능력배양을 위한 측면지원, 셋째 제 3의 힘, 영향력에 의한 시동 등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제1의 방법은 북한에, 제2의 방법은 중국을 중심으로 선교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 동안 선교는 일관성 없는 정책하에서 해야된다는 의무감과 단순하게 파견해 본다는 차원에 그치는 등 무원칙적으로 전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천주교 안에서 대북선교의 비전을 펼칠 공식적인 창구가 없는 실정이다.
개신교의 선교활동은 매우 구체적이고 조직적이다. 선교지원책도 이미 마련되어 있어서 선교사에 대한 영적ㆍ물적 지원이 원만하다.
또한 선교에 대한 의식과 의욕이 높으며 실제적인 방법을 통해서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고 들린다.
우리 가톨릭의 경우, 해외대북선교에 꿈을 가진 평신도들이 개신교측의 선교회에 가입하여 선교지로 떠나가거나 그 꿈을 묻어버린다.
내가 얼마 전에 만난 한 젊은 사제가 있었다. 그분은 해외ㆍ대북선교에 꿈을 갖고 그것을 간절히 원했다. 교구장으로 부터도 묵시적인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기구가 있는 한국외방선교회와도 상의했으나 교구사제로서 선교지에 갈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해외ㆍ대북선교를 포기해야 했다.
선교사로서 파견된다 하더라도 대책이 없기는 마친가지다.
선교지에 일단 떨어지면 선교사는 모든 것을 홀로 개척해야 한다.
재정적 지원도, 기도지원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선교사가 거의 모든 것을 감당해야한다. 선교사를 파견한 교회가 선교에 대한 대책 및 선교지 교회와 연관성이 없어서 선교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이런 현실상황에서 한국교회가 해외ㆍ대북선교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선교전문담당기구로서의 선교연합회가 필요하다.
선교현장을 연결하는 중간매체로 선교에 대한 기획ㆍ관리ㆍ재정 및 기도지원ㆍ선교사에게 필요한 교육ㆍ연수 등 실무를 담당하기 위해서이다.
선교사 파견감독은 교구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선교지역 교회와의 관계는 자매결연식의 형태가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선교연합회는 사제선교단ㆍ평신도선교단 구조를 수렴, 모든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고 각 교구에서 자율적으로도 운영될 수 있는 전국차원의 조직이 이상적일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제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고 한국교회의 몸에 맞는 선교정책을 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8년간 한 사제로서 파푸아뉴기니에 살면서 그들과의 일치와 나눔을 통해 중요한 선교적 사명을 느꼈다.
파푸아뉴기니는 자연과 매우 가깝고 그들의 생활풍습은 자연과 상당부분 밀착되어 있었다.
나는 원시림 속에서 자연이 내는 거대한 생명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곧 나의 선교적 사명이었다.
생명을 살리자.
생명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며 아름답게 하자.
생명을 자유롭게, 나아가 그 생명을 영원하게 하자.
내가 들은 그 생명은『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그 생명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셔서 세상에 오셨고 자신을 버리심으로써 이웃과 사회의 생명을 살리셨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부활로 우리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 되었다.
이 생명에 관한 나의 체험은 어느 경우에라도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는 소신을 가져다 주었다.
선교는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나누는것 즉, 그들 안에 실존하는 그리스도를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80년대 한국교회는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세계복음전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선교사를 파견하는 교회만큼 성숙하고 생동하는 교회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기 때문이다.
선교를 받아온 우리교회가 성숙한 교회로 발전해 가면서 나눔을 통해 일치를 이루고 그동안 받아온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아직 전교지 교회로서 선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90년대에 서있는 한국교회는 시대적 징표에 따라 우리교회의 특성에 맞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선교대책을 세우고 가능성있는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해외대북선교에 노력을 경주해야할 것이다.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고 계시고 성모 마리아께서 한국교회에 늘 큰 도움을 주셨다는 사실을 감사하면서 오늘의 선교과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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