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때 양다리가 잘려 나간 민경숙(마리아 고레띠·68세·수원복수동본당)씨는 의족을 한 채 잘도 걸어 다닌다. 그냥 걸어 다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과 같은 고통 증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새 삶의 희망을 주고 있다.
자신은 보증금 10만원에 월세 3만5천원 하는 보잘것없는 방에 살지만 민씨의 마음은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는 부자이다. 그녀는 비록 두 다리가 없지만 들에 나가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허락하신 주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배추와 상추를 따주는 품팔이를 한다.
“일을 한다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일을 하면서 살아 있다는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힘겹게 노동해서 얻은 수입이지만 먹고 살 수 있는 만큼만 남기고 더 불우한 이웃들과 나누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민씨는 몇 년 전부터 하반신이 없는 장애인들을 말없이 보살펴 오고 있다. 수원시 전자동에 위치한 ‘신아 재활 자립회’가 그것. 신아 재활 자립회에는 25세가량부터 32세 정도까지의 하반신 장애인들이 자활하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그들이 임시집이라도 세를 얻어 자립의 터전을 닦고 있지만 5년 전 자립회가 설립될 당시만 하더라도 그들은 마땅히 갈 곳도 없었으며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 민씨는 기꺼이 자신이 살던 집에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주었다. 2년 전 신아재활자립회가 사단법인으로 인가가 났고 가건물이기는 하지만 전셋집을 얻어 나갔을 때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이 홀가분한 마음이 될 수 있었다. 이제 그녀의 숙제는 자립의 터전을 닦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 말씀의 기쁨을 전하는 것.
“그들이 얼마나 밝고 건전하게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불구일지 모르겠지만 정신은 너무나 건강하지요.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불우한 이웃을 위해 가진 것을 내놓는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지난 4월 21일 민씨와 신아재활자립회는 자립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찻집을 개설했다. 여기에서 얻은 수익금 중의 일부는 작은 예수의 집에 전달하기도 했다. 민씨는 그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나누는 삶, 서로 아끼고 돕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해준다.
평양이 고향인 민씨는 해방 후 월남 했다. 혈혈단신 38선을 넘어온 민씨는 서울에서 편물, 양재 등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살길을 찾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 그녀도 동족상잔의 서글픈 전쟁에 참전해야 했다. 그 당시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젊은이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나갔기에 그녀도 간호병으로 참선했다. 휴전 후 민씨는 교편생활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주의를 원하는 열화 같은 민중의 열기로 4·19가 터졌다. 자유의 불꽃으로 타오른 4·19에서 그녀도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갔고 그 후 그녀는 다시는 두발로 흙의 감촉을 느끼지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어버렸다.
“수술을 4번이나 했는데도 걸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제는 영영 걸을 수 없는 것인가 하고 절망했는데 5번의 힘든 수술 끝에 의족을 하고 걸을 수 잇게 됐지요. 얼마나 크신 주님의 은총입니까?”
그 후 그녀는 정치바람에도 휩쓸렸고, 또 한 번의 교통사고로 죽음과 싸워야 하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다시 걷게 된 민씨는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에 대해 많은 묵상을 했고 인생의 완숙기에 접어든다는 50대에 되어서야 참다운 자신의 길을 찾았다. 그것은 자신보다 더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 국수장사, 떡장사, 파출부, 날품팔이 등 안 해본 것이 없었고, 의족을 14개나 갈아 끼우면서 전교와 냉담자 회두를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현재에도 그녀는 레지오마리애, 푸른군대, 성령쇄신 등에서 열심히 활동한다.
부지런한 민씨는 조그마한 자투리땅 하나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빈터가 있으면 상추를 심고 고추를 심고 콩을 가꾼다. 무농약으로 재배된 싱싱한 야채를 사제들과 수도자, 그리고 이웃들과 나누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녀는 올해에도 4·19기념탑을 참배하고 어지러운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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