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교훈을 마치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가파르나움으로 돌아오셨다. 이 동네는 예수님이 주소를 정하고 계시던 곳이었고 이 동네가 속해 있는 갈릴래아지방은 헤로데 안티파스가 분봉왕(分封王)으로 있으면서 다스리고 있었다. 이 자는 예수께서 탄생했을 때 무수한 죄없는 어린이들을 학살한 헤로데 대왕의 아들이며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라 춤추는 무희에게 갖다준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을 한 자이다.
갈릴래아의 북동쪽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지방은 그의 형제 헤로데 필립보가 영주로 있었다. 이 두 지방변경에는 로마경비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이 병력은 약 백명을 단위로하는 백인대이며 그 대장을 백부장(百夫長) 또는 백인대장이라한다. 이들은 점령군으로서 유대아인들과 유화정책을 쓰고있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백부장은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고 인정 넘치는 신사였다. 수하의 종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마음좋은 사람이었다. 로마인들에게 종은 노예로서 상품이었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리는 종을 사람으로, 그리고 집안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 종이 지금 빈사상태에 빠져있다. 그 주인 백부장은 죽어가는 종을 고쳐보려고 애를 태우고 있다가 예수라는 분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에 접하였다. 로마인들은 온갖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이교도였으나 그 백부장은 이교도들의 우상이나 그리스 철학자들의 신들에게서 구원을 발견하지 못하고 아브라함의 하느님께 마음이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교제하고 있는 유대아인들에게 회당까지 지어준 터였다. 그는 몇몇 유대아인 대표들을 예수께 보내어 자기 종의 치유를 부탁드렸다. 예수라는 구세주께 대한 믿음이 확고하였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서는 백부장이 직접 예수께 가서 이 요청을 드린것으로 되어 있고 루가복음서는 유대인 장로들에게 전갈넣어 부탁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 차이는 마태오의 교회공동체와 루가의 교회공동체의 성격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태오의 교회공동체는 유대아인 계통이었고 루가의 교회공동체는 이교도 출신 개종자들이었다.
유대아 계통 교우들에게는 이교도 장교의 개종을 직접 제시함으로써 유대아인과 이교도들의 교회안에서의 일치를 더 강조할 수 있었고 루가의 교회공동체에서는 유대아인들의 종교를 통하여 예수의 복음이 세계에 퍼지는 광경을 제시하기 위하여 예수께 유대아인들의 대표를 파견하여 청을 드리는 형식을 취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와서『그 백인대장은 도와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까지 지어주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예수의 대답은 흔쾌한 것이었다.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
유대아인 대표들은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나 엘리사가 하느님의 은총이 모든 민족에게 내리리라고 예언한 것이 예수의 산상설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은 적어도 예수를 반대하는 도당에는 속해있지 않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아브라함의 믿음이 외교백성들에게 전파된 믿음으로 보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자기 집으로 오신다는 전갈을 들은 백부장은 몹시 당황하였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선 자기가 유대아인들과 교제한 체험으로는 유대아인이 이교도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을 타기 때문에 정결예식을 해야 한다는 번잡스러운 절차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는 하느님의 백성축에도 끼지 못하는 죄인 이교도이다. 더군다나 예수님을 하느님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그에게는 하느님 앞에 죄인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하게 발도하고 있었다. 하느님 앞에서는 첫번째 체험은 죄인으로서 뉘우치는 통회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수제자 베드로도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인식했을 때『이 죄인에게서 물러가 주십시오』하고 쪼아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백부장은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자기 종을 살려주실 수 있다는 신념을 굳게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예수님의 부하임을 고백한다. 『주님 직접 임하실것까지 없고 다만 말씀만 하소서, 내 종이 곧 나을것입니다』 교회공동체밖에 있던 이교도 백부장의 이 한마디는 차후 교회가 대대로 간직하여 미사때마다 예수님을 성체로 모시는 모든 신자들의 입에 주님을 모시는 신앙고백의 말씀으로 귀중하게 전해지고 있다.
『제 밑에도 부하들이있어 저 사람더러 오라하면 오고 이 사람더러 가라하면 갑니다. 또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하면 합니다. 그러니 이 죄인이 어찌 주님을 집에 모시겠습니까. 그저 한 말씀만 하소서』이 신앙은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말씀에 무조건 승복했던 민족적인 신앙에 버금가는 믿음이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믿음을 오늘 이교도에게서 발견하였다고 감탄하시고 『네 마음이 네종을 살렸다』라고 말씀하셨다. 그후 예수께서 그 집에 들어가셨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그집은 구원을 받았고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깥 어두운 곳을 쫓겨났다. 구원의 빛이 만백성에게 비추어지는 첫 발자국을 남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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