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세상 안에 탄생시키고 신생교회로 하여금 활력 넘치게 사명을 수행하도록 이끈 것은 부활체험이었다:『주께서 살아계신다』.이 체험과 직결된 것은 성령체험이었다. 이 두 체험은 서로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 실재의 두가지 측면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영 안에서 현존하고 활동하시며 영은 부활하신 분의 가장 큰 선물이라 체험되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주님은 영이시다』따라서 예수가 주님,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신생교회에 있어서 그분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낼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과 그들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청할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하였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이분에 의해 파견되기 이전에 이분 안에서 충만하게 작용하였다.
그리스도의 영
영은 예수의 탄생부터 죽음ㆍ부활에 이르기까지 그분과 줄곧 함께 있으면서 활동한 하느님의 능력이었다. 영은 예수의 존재의 근원과 결부되어 작용한다. 영은 그분을 모태에서부터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한다. 영은 하느님의 현존표지인 구름처럼 마리아 위해 내려와 감싼다.
예수는 영으로 도유된 메시아로서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루가4,18). 해방의 실현, 영적 청각과 시력의 회복, 은총의 해의 선포를 위하여 태어날 때부터 예수는 영으로 충만되었으나 세례때에 영이 그분 위에 가시적 방식으로, 즉 비둘기의 형상으로 강림하였다.
우주의 창조 때에 야훼의 영이 혼돈의 물위를 감돌았듯이 (창세1, 2) 세례 때에 요르단 강물 위에 휘돌았다. 예수의 세례는 새로운 세상의 개막, 즉 새창조이다. 이때 하느님은 세례받는 예수를 당신「아들」로 선포하시고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다」) 「종」으로서의 사명을 인식시키신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늘로부터 들려온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의 신원과 사명을 확인하고 선포하는 말씀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지만 야훼의 종으로 사명을 다할 메시아이다. 하느님은 외롭게 해주는 영을 아들에게 보냄으로써 이분을 거룩하게 하시어 세상 한 가운데로 파견하신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거룩하게 하시어 세상에 보내주셨다』 (요한10, 36)
영은 세례받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부성적 사랑을 확인해준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선포와 함께 하느님은 아들에게 당신의 영을 보내어 부성적 사랑을 체험케해주신다. 영은 예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생생히 증거하는 가운데서 그분의 사명을 확인하며 사명수행의 능력을 부여한다. 성서에서 비둘기는 사랑의 상징이다. 아가서 (1, 15: 2, 14)는 사랑하는 님을 비둘기라 부른다. 하느님이 예수에게 영을 보내시는 것은 아들에게 대한 아버지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에 이끌려
성령의 인도로 예수는 광야에 가서 악마와의 대결을 벌인다: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마르1, 12). 예수는 자기가 가야할 길을 스스로 택하여 갔다기보다는 세례 때에 그 자신 안에 내린 영에「이끌려」갔다. 예수는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악마를 대적하였고 영의 능력에 힘입어 악마를 추방하신다.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러니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마태12, 38). 예수가 영안에서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을 통하여 영은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이 행하는 모든 기적은 영의 활동을 드러내는 표지들이다. 그분은 영의 힘으로 악마를 추방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며 죽은 자를 소생시킨다. 또한 그분은 영을 통해 아버지께 나아가며 (루가10, 21)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기도한다.
세례 때에 영은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을 이루게 하고 아들에게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을 전달하며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에 따라 종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태세를 갖추게 해준다. 예수의 전생에 걸쳐 영은 그분 안에서 항구적으로 머물고 활동한다. 영 안에서 예수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체험한다. 영은 절대로 그분을 떠날수 없고 아무도 그분처럼 영을 소유하지 못한다. 영은 예수에게 있어서 활동ㆍ기쁨ㆍ아버지와의 일치의 근원이다.
성령의 바람
오순절에 영은 부활하신 분의 선물로 세상에 강림하셨다 (사도2, 2이하). 오순절은 유다인들이 시나이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체결하고 율법을 선사받았음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바람과 불은 하느님이 그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율법을 선사하실 때에 당신 자신을 나타내보이시는 발현과 결부된 표상이었다. 영은 바람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거역할 수 없는 하느님의 힘이다. 교회가 영의 현존과 활동을 위한 장소이지만 영은 교회밖에서부터 오며 교회 안에 한정될 수 없는 자유로운 힘이다. 영은 불처럼 더러운 것을 불태워 사람들을 내적으로 정화하고 열정을 불어 넣어주고 변화시키는 힘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그 마음 속에 새 법을 새겨준다 (에제36, 25). 이리하여 영은 사람들을 내적으로 쇄신시켜 자유롭게하며 새 공동체를 형성시켜 주는 일치의 힘이다.
불혀의 형상으로 내린 영은 사도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능력을 주며 그들의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을 일치시켜 준다. 언어의 은사는 영을 선사받은 효과로서 말씀의 선포능력과 일치를 드러내는 표지이다. 이 은사로 인하여 바벨탑의 언어 불통과 분열 사건 (창세 11, 1이하)을 뒤엎어 버리는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알아 듣지 못한 말들이었으나 그곳에 모여 들은 모든 이가 자기 나라말로 알아들었다. 영은 교회를 탄생시키고 구별되는 사람들을 일치시켜 각종은사들로써 교회를 주도하는 주역이 되었다.
예수 부활 이후 영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활동한다. 예수의 행위들이 반복되고 그분의 말씀이 선포되고 빵을 떼는 행위 안에서 예수의 감사제가 영속되고 그분의 제자들을 한데 모았던 일치가 보존되도록 영은 보살피고 주도한다. 예수와 교회 공동체 간의 연속성 즉 그분을 믿는 자들 가운데 주님으로 함께 계시는 그분의 살아있은 현존은 성령에 의해 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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