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일을 하는 예수
5, 이 경우 그의 원수들의 반응은 난폭합니다.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좋은 일들을 당신이 하셨는데 그중 어느것 때문에 돌로 치려 하느냐고 묻는 예수께 그들은 대답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 당신은 한갓 사람이라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애매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요한10, 31~38참조)
『네가 정말 하느님 아들이면』
6, 예수님의 생애와 계시에서 중요한 이점의 의미를 잘봅시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특별한 유대, 특별한 일치에 대한 진실이 유다인들의 반대에 봉착합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말에 표현되는 뜻으로 아들이라면 한갓 사람인 주제에 하느님행세를 하는 것이라고. 그런 경우 당신은 가장 큰 신성모독을 발선하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예수님의 청중들은 나자렛 예수의 말씀이 뜻하는 바를 알아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분은『하느님으로부터 나신 하느님』-『아버지와 똑 같은 존재-이시지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가장 굳고 절대적인 방식으로 그 말씀을 배척했습니다. 비록 그순간의 갈등으로 그들이 그분을 돌로 치는 지경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요한10, 39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락방에서의 대사제의 기도가 있은 다음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에 부쳐지게 됩니다. 그리고 처형에 참석한 유다인들은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고 소리치고 『저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또 제가 하느님의 아들이네했으니 하느님이 원하시면 어디 살려 보시라지』하며 조롱했습니다. (마태27, 40·42~43)
죽기까지의 순종
7, 또한 갈바리아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당신과의 일치를 긍정하십니다. 히브리서에서 우리가 보는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히브리5, 8). 그러나『이 죽기까지의 순종』 (필립보2, 8) 은 아버지와 그분과의 결합의 친밀성을 더 깊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마르꼬의 본문에 의하면 십자가위에서의 통고중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마르꼬15, 34). 이 부르짖음-비록 그말은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받는 한인간으로서 심리적으로 겪는 버림받은 느낌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은아버지의 명령을 완수하는데 있어서 아들과 아버지와의 가장 친밀한 결합의 표현이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다 하였습니다』 (요한17, 4참조). 그순간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는 세상의 구속신비 속에 감정적인 신적ㆍ인간적 깊이로 드러났습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공현
8, 다시 다락방에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될 것이다…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것이 없겠습니다」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것이다… 내가 아버지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신다고 한 말을 믿어라」 (요한14, 6~10).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것이다』신약은 이 복음의 진리의 빛으로 완전히 점철돼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광의 반영이고, 『아버지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 (히브리1, 3) 이십니다. 그분은 『보이지않는 하느님의 형상』 (골로사이1, 15) 이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공현 (나타남) 입니다. 그분이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죽기까지 순종하는』 (필립보2, 7~8참조) 사람이 되었을 때 동시에 그분은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모든이게게『길』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되셨으며 그로인해 그분은『진리이며생명』입니다. (요한14, 16).
그리스도의 모습과 닮으려는 어려운 오르막에서 그분을 믿는이들은 성 바오로의 말씀처럼『새 인간으로 갈아입고…』 「모델」이신 그분을 따라『새로와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골로사이3, 10참조). 이것이 그리스도인다운 희망의 든든한 바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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