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2, 15~17)
이로써 하느님은 넘어서는 안 될 한계를 정해주셨다. 선악을 인식하는 나무를 통해 이를 상징해주고 있다. 즉 선과악의 경계를 정하셨다. 그러나 이 경제는 옛날에도 지금도 깨어지고 있고, 항상 다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경계의 예를 들면 오늘날 염색소의 조작과 함께 합성물질, 싹이트는 인간생명의 파괴, 그리고 자연의 여러가지 훼손, 동식물을 멋대로 죽임 등으로 깨어지고있다.
지배하라고 했지 조작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과제는『이 세상을 지배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세상위에 군림하되, 이를 변형시키거나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생명이 시작될 때의 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창조물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것으로 이 생명을 변하게 하고 조작하고 또 하느님의 창조에서 예견하지 않은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서 이 법을 이용해서는 안되는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주제넘게도 하느님과 같은 일을 하려고 하고 또『하느님과 같이 되자고』하고 있다. 『이 세상을 지배하라』그러나 인간은 그 당시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이 정한 경계를 넘어선 것처럼 지금도 다시금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재기할 수 있는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제는 전혀 기회가 없기에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밟고 지나간 곳에는 파괴의 혼동을 남겨놓을 뿐이다.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 에덴동산에서 어찌할 줄 몰라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미 인간은 겁을 접어먹고 있다.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하느님 앞에서 숨을 곳을 찾아 동산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은 사람에게 물으셨다. 『너 어디 있느냐?』 (창세기3, 7~9).
하느님의 창조안에 들어있지 않은 새로운 것들을 인간이 만들어 내어 창조주에 의해서 예정된 자연의 순리를 방해하게 되였다.
인간은 영리해져 생명이 태어나는 신비스런 과정을 이해하고 생명체를 조작하고 마음대로 계획을 세우고 그리고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려 한다. 『사람을 원하는 만큼 생산 해 내려 한다!』
사람들은 이 모든 일 앞에 염려하고 있으나 사람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절개 없고 죄 많은」종류이기 때문이다 (마르꼬 8, 38).
사람은 이 경계를 넘어 섰다. 그리고 항상 또 이 경계를 넘고 있다. 악의 소용돌이가 그를 더욱 깊은 불행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낙원에서 또다시 쫓겨나면 끝장이다.
인간은 이 세상을 「자기방법」대로 지배하려고 한다. 이렇게 자기 생활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이 세상뿐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멸망시키게 되었다.
사람은 이미 위험할 정도로 숲을 파헤치고 파괴된 오존층 구멍을 항상 더 크게 만들고 있고 강과 바다 그리고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제 자신의 멸망에로 뛰어가는 것을 정지시킬수도 없다.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다시 한번 쫓겨나려고 일부러 그쪽으로 향해가는 것 같다. 원자폭탄의 구름으로 눈이 부셔 결국은 자기의 만행도 끝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구의 옛날 상태로 돌아온 것처럼 느끼며 아담과 에와의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숨쉴 깨끗한 공기와 깨끗한 물, 좋고 독성이 없는 땅이 있어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살아 남은 사람」들은 이미 자기들이 생존에 필요한 공기와 물, 땅이 오염되어 있음을,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자기의 행동으로 오염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나쁜 사람들도 있다. 원자핵을 피하기 위해 지어놓은 벙커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활」도 이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 벙커속에 많은 저장물을 준비해 놓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것도 바닥이 날 것이다! 그리고 아주 겸손한 태도로 『내 탓이다, 내 큰 탓이로소이다』하고 부르짓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느님을 배신하는 사람들
우리가 낙원에서 쫓겨난 후 하느님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고 이 세상을 새로운 에덴동산으로 만들도록 했다. 그분은 이를 위해서 이 모든 아름다운것, 굉장하고 감탄스러운 세상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창조해준 것도 깨끗한 공기, 맑은 물, 기름진 땅, 웅장한 숲들, 아주 힘찬 바다 그리고 땅과 바다, 공중에 사는 모든 동식물들이었다.
그분은 우리의 두뇌를 발달시켜서 불을 선물로 주시고 많은 지하 자원을 통해서 우리 생활을 항상 더 편하게, 더 아름답게 하도록 해 주셨다. 그 분은 우리에게 물의 힘을 이용하고 지배할 능력을 주셨다. 우리는 전기를 발명하고 이용할 수도 있었다. 우리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이 주신 평화를 내던져 버렸다. 하느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죄악으로 향했다. 카인처럼 죽이고 계속해서 자기 형제 자매들을 죽이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이미 예언자 이사야가 말했듯이『그들의 발은 나쁜것이나 하러 뛰어 다니고 죄없는 사람의 피나 흘리러 다닌다. 잔악한 계책을 꾸며 닥치는대로 빼앗아 먹고 짓부수는 것들』 (59, 7) 이었다.
동물들은 배가 고파야 죽이지만 사람은 재미로 죽이고 있다. 그리고 계속 죽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하느님이 그에게 선물 한 생활공간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 느낌도 없이 회개하지 않고 있다.
물의 힘으로 만들어 낸 전기는 인류에게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석탄, 석유 그리고 그 모든 방사능과 원자로를 전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했다. 사람은 눈이 어두워져 자기 자신의 확실한 파멸로 향해 가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자동차를! 이 수많은 자동차들이 내뿜는 가스 그리고 공장폐수, 이런 것들이 공기를 오염시키고 동물과 식물을 오염시켜 숲과 동물, 강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 앞에서도 사람은 아무 느낌도 감동도 없는 것 같다. 더욱이 자기의 오염행위를 더 많이 하고 있다. 회개하지도 않는다. 아니다. 사람은 항상 더 많은 자동차, 더 많은 비행기를 만들어 낸다. 이것들은 항상 더 많은 산소를 사용해 버려서 나중에 우리가 숨쉴 산소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원자폭탄의 구름은 에덴동산에서의 두번째 쫓겨날 것을 예고 해주는 것이며, 「창조의 왕관, 인간과 세상의 왕관의 종말적 운명」을 전달해 주는 것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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