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의 주제인 나인이라는 곳에서 어느 과부의 외아들을 관에서 다시 살려낸 사건은 전번 이야기 백부장의 죽어가는 종을 원격치유한 일과 이어지고 다음 이야기인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예수의 신분을 묻게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루가만이 전하는 기사로서 루가는 오늘 이야기에서 예수의 인간미 넘치는 인정어린 품성을 초대교우들에게 소개하며 동시에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른다. 주님은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부르던 호칭이며 구약시대의 야훼 호칭대신 쓰던 호칭이었다. 예수의 인간미를 묘사하는 것은 루가의 특징중의 하나로서 곤경에 처한 부녀자들, 특히 불쌍한 과부들을 생각하고 곤경에서 구해주는 주님의 인간미를 루가는 부각시키고 있다. 바리사이파사람들에게 경멸을 당하고 있는 죄녀를 구해준 일(루가7,36~50), 성전에서 푼돈 한잎을 바치는 가난한 과부에 대한 칭찬(21,3),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을 방문한 기사등(10,38~42)루가는 부녀자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푸시는 인간성을 다른 복음사가들보다는 더 관심을 가지고 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이야기는 예수의 인간적인 온정과 신적인 능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구언의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님은(루가는 여기서 처음으로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가파르나움에서 백부장의 종을 원격치유하신후 나인이라는 자그마한 동네로 가셨다. 이 마을은 가파르나움에서 남서쪽으로 8~9시간 걷는 거리이며, 나자렛에서는 걸어서 남동쪽으로 3~4시간 걸리는 작은 마을로서 성서에는 이곳에서만 언급되는 보잘것 없는 마을이다. 이 마을 동구밖에 두 행렬이 마주쳤다. 하나는 마을로 들어가는 예수의 일행이었고, 또 하나는 마을에서 상여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이었다. 죽은이는 불쌍한 한 과부의 외아들이었다. 그 과부는 남편을 일찍 잃고 아들 하나를 바라보며 유일한 희망을 걸고 살아오던 터였다. 이제 그 아들마저 잃은 그 여인은 사고무친 무의무탁의 여인이 되고 말았다. 이 난감한 위치에 놓인 여인은 말 그대로 진짜 과부가 되었고 자그마한 마을에서는 온 동네가 그 과부의 처지를 슬퍼할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장례행렬은 온 동네 사람들이 뒤따랐고 직업적인 통곡군과 피리부는 악사들이 앞장서고 있었다. 이 행렬과 마주친 예수의 일행은 그 동안 예수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과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란 표현은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뭉쳐진 교회를 표상하는 표현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예수께서 죽은 자와 마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수께서는 이 죽은 자를 보시면서 죽음이 세상불행의 근원이라는 사실과 그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비탄에 잠기게 된다는 구세사적인 걸림돌임을 즉각 알아차렸다. 세상의 구원은 이 죽음의 불행과 이에 따른 인간의 비탄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이 대목은 루가의 신학이며 루가복음서의 중추적 사상줄거리를 이룬다.
주님은 그 과부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셨다. 그리고「울지말라」는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구원의 말씀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서서 상여에 손을 대시고「젊은 이여 일어나라」하고 명령하셨다. 구원의 행위이다. 그러자 시체는 벌떡 일어나 앉았고 말을하기 시작하였다. 이 표현은 루가가 의사로서 죽은 사람이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광경을 묘사할때 쓰는 표현이다. 같은 표현이 사도행전 9장40절에 또 한번 쓰여진것 외에는 성서 다른곳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광경은 먼저 끊어졌던 숨이 되살아나고 몸에 온기가 돈 다음 눈을뜨고 얼마 후에 몸을 움직이게 마련이다. 이 소생의 기적이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루가는 예수께서 그의 손을 붙들어일으키고 밖으로나오게 한 다음 그 불쌍한 어머니에게 건네주셨다고 기술하고있다. 예수께서 생명과 죽음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초대교회신자들에게 가르치며 대목이며 초대교회신자들은 예수를 생명과 죽음의 주인으로 믿고 경배하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이 광경을 본 두 행렬의 일행들은 혼비백산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구약예언자들이 죽은 이를 소생시킨 기사를 익히 알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의 힘이 현지에 나타난 것을 인지하고 종교적인 두려움에 휩싸여 예수를 참 예언자로 승인하고 하느님이 자기들을 찾아주신 것에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
같은 이야기는 구약에서 두번, 사도행전에서 한 번 전해진다.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의 아들을 살려낸 기적(열왕상17, 23)과 예언자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소생시킨 기적(열왕하4,32~37)이다. 이 두예언자들이 1세기에 이스라엘인들이 다시 오실것을 고대하고 있던 예언자들이었다. 루가는 그 예언자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수제자 베드로가 요빠에서 라비타라는 죽은 여교우를 살린 사건이다(9,40). 구원사업을 이어받은 예수의 대리자를 부각시킨 것이다. 예수의 경우와 베드로의 경우 소문은 온 유대아와 그밖의 지방에 두루 퍼졌다. 구원의 기쁜 소식이 온 세계에 퍼져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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