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혜화동 본당 보좌로 부임했을 때 모든 것이 생소한 가운데 한번은 어떤 공소의 병자가 봉성체를 청해 성체를 모시고 환자집에 도착하니 식구들이『이 병자는 긴장을 하면 요동을 치니 놀라지 마시고 고백성사 주실때 두손을 꼭 잡고 하세요』한다. 나는 그래도 속으로 병자인데 어떠랴 하고 들어섰다.
쑥빠지는 의자에 깊숙히 앉혀 놓은 환자는 나를 보고 인사까지 한다. 손을 붙잡고 고백을 듣기 시작하는데 차츰 머리부터 흔들기 시작하더니 사지가 상하 좌우로 요동을 친다.
당황한 나는 사죄경을 외우며 강복을 주려고 손을 떼는 순간 그의 왼손이 뻣청하며 내 오른뺨을 보기 좋게 후려쳤다.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가슴이 두근댔다. 교우들이 엿보았는지 당황하며 어쩔줄을 모른다. 「뇌성마비」환자라 했다.
이번엔 명동에 있을 때의 일로 얌전하고 교양미가 철철 넘치는 여교우 한명이 있었는데 아들을 신학교에 보냈다가 그만 폐병으로 잃게된 후부터는 아무 성직자나 보면 때와 장소도 없이 두팔을 펴들고 덤벼든다. 처음 만나는 주교·신부는 꼼짝없이 당했다. 주교는 가락지를 친구하러 오는 줄 알고 서있다가 당하고 신부는 너무 반가워 뛰어 오는 줄 알고 서있다가 그만 포옹을 당했다.
한번은 어떻게하나 보려고 가만히 서있으니까 내 두 어깨에 손을 얹고 얼굴을 내 가슴에 푹 파묻고는 제법 도취해 있는 것이 그럴싸했다. 조용히 떼어놓고『왜 그러느냐』고 물으니『하느님이 성직자를 사랑하라』했기 때문이란다. 어느날 성체강복을 주려고 돌아서서 성체를 높이 올리는 순간 그녀가 제대까지 뛰어 올라왔다. 다른 신자들은 모두 허리를 굽히고 있는 때에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성체를 모신채 발로 그를 막으며 복사를 불러 끌어내리라고 소리치니 그제서야 교우까지 함세, 수라장이 된 일이 있었다.
다음날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엿새 후에 찾아가 의사에게 물으니『일사광이란 병으로 한가지 생각에만 몰두해서 생기는 병인데 입원 첫날부터 아무 이상 없이 다른 환자들만 돌봐줬다』며『지금 신부님을 뵙고도 발작이 없으니 데리고 가십시오』한다. 퇴원후 어찌 되었는지 몰라도 그 후론 소식마저 들을 수 없었다.
현대 의학이 좋다고 해도 전에 없던 새로운 병의 발생으로 환자의 수는 늘기만 한다. 발병 전에 확실한 방법으로 예방, 병에 걸리지 않도록 의학이 발전하기 바라면서 나는 영신생활과도 비교해 본다. 수많은 정신적 육체적 장애자들을 경험해 본 결과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현대병이 교회 공동체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의 영성생활에도 번지고 있다. 성직자는 목자이면서도 본의건 아니건 목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기 어려운 환경이 돼 버렸다.
왜냐하면 양은 많고 목자는 부족해서 다 돌보아줄 수 없는 형편이다. 미사 드리고 성사집행에만도 시간과 힘이 모자란다. 언제 양의 성장 과정을 살펴, 병든 곳을 치료해 주겠는가. 의식주에도 너무 사치해졌다. 내가 양들을 위해 이 한몸 봉헌했다는 의지도, 기도하는 모습도 양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세인들만 변했다고 어찌 이야기 하랴!
양인 평신도들은 어떠한가. 목자가 돌보지 못하는 사이 갖가지 병에 걸려 신음하다가 죽어간다. 영세하는 날이 바로 냉담하는 날이 되는 어린양, 점성가·철학관을 찾아 팔자 한번 고쳐보려는 양, 돈버는 데도 윤리 도덕이 있어야 하건만 모든 것을 무시하고 남을 생각지않고 제배만 불리는 양, 헤아릴 수 없다. 특히나 모(某)신흥종교의 신자중 천주교인이 절반이 넘는 곳도 있단다. 자기 소원풀이로 양다리 걸친 신종병이로 늘고 있다. 이것이 악질「뇌성마비」나「일사광」환자와 무엇이 다르며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나는 성직자로 요직에도 있었던 만큼 사목50년의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해 반성하는 자세로 붉은 석양을 바라본다. 이미 해는 저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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