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회를 선보이기보다 아예 횟집을 낼까보다. 이 횟집에서 우선은 우리 할아버지들과 소주파티를 하고 할머니들과도 칼국수를 시켜먹고 싶다.
내가 사는 곳은 동해안 최북단의 고성군 간성읍이다. 여기서 차를 타고 40분만 북으로 달리면 이북땅이, 그것도 해금강이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인다. 진부령을 넘으면서 서울가는 쪽으로 40분만 달리면「몇 사람 손좀 봐주어야겠다」고 아직도 벼르고있는 백담사 안전가옥(安全家屋)에 닿는다.
처음 이곳에 부임하고 전(前) 본당 신자들이 찾아왔을 때 이렇게 감사하였다. 『가는 사람 발로 차 보낸다고 하는데 조금 세게 찼더라면 바다에 빠졌고, 조금 삐뚤게 찼더라면 북으로 갔을텐데…아주 정확하게 발로 차 보내주어 감사합니다』라고. 그런지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햇수로는 6년째 접어들고 만으로는 4년 6개월이나 이곳에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들이 슬기로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라란다』며 반예문 신부님이 작사작곡하고 가수 김상회와 어린이들이 함께 부른 노래이다. 『푸른 하늘 꿈꿉니다. 파란 바다 꿈꿉니다. 맑은 공기 마시며 푸른 꿈을 안고서 깨끗한 곳에서 살고 싶어요.』
이 푸른 하늘 파란 바다 맑은 공기에 싱싱한회를 안주로 하여「주(酒)께서 여러분과 함께」「또한 사제와 함께」하며 흥이나면 곧 잘하는 나의 한마디가 있다. 『간성에서 좋은 곳은 회(膾)』먹으며 회(會)하고 회(會)하면서 회(膾)먹는 것이다.』
회(膾)하면 여러 종류가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요즘 동해안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산오징어회이다. 맛도 맛이려니와 예전에는 산오징어를 구경조차 못하였다. 산오징어를 보기도 하면서 회맛을 즐길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직접 잡던 어부들 뿐이었다. 나릿가 출신인 나도 전진과 후진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이 산오징어를 구경할수 있었던 것은 수년전이었다.
성탄때였다. 『신부님, 오는 해에 또 어떤 회를 선보이실건가요?』물음이 담긴 성탄카드를 받았다. 생각해 보니 기존의 몇개 회외에도 십여개의 회를 만든 셈이다.
꽃도 그냥 그대로가 아닌 꺾어서 봉헌하고, 마음까지도 내 뜻대로가 아닌 먹어 소화시키어 봉헌하는 소화회(小花會), 미숙한 연배도 노숙한 연배도 아닌 완숙한 50대 어머니들로 구성되고 우리나라 첫 여회장 강완숙(골롬바)을 주보로 하는 완숙회(完淑會), 할아버지 11명으로 구성된 요아킴회, 성소의 싹을 지어주어 오늘의 나를 있게한 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며 항상 제일 먼저 만드는 안나회, 부인들은 신자이나 남편들은 신자가 아닌 그래서 스스로를 미비한 사람들이라고 하는「에미 에비들」이 함께 모이는 미비회, 늘 푸르고 젊은 마음으로 지역과 교회의 큰 일군이 되자며 정하상 성인을 주보로 모신 하상회, 예수님의 나이와 마음을 닮아 언제나 서른의 삶을 살기로 하는 서른빛회, 나이도 종교도 지위도 떠나 내마음 하나로 서로를 깊이 앎(아심)으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이 모이는「아심회를 아십니까」의 아심회(我心會) 도(道)를 이루어 고통과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해석 하여 뜻있는 이름이라고 하나 실은 가게 문을 닿고 (열시반에 모여-모이는 시간을 잊어버릴 수 없는-한잔 나누는 열반회, 일생에 교우 한번 지을 뿐이니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것을 지어야하지 않겠느냐?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백원짜리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하나 지어 져야 하지 않겠나이까? 라는 물음과 답에 따라『주여 당신 백성의 뜻을 들어주소서』라고 기도하며 일주일에 백원씩 모아 수녀원을 지어나가자는 주백회(週百會).
새해에는 회를 선보이기보다 아예 횟집을 낼까보다. 십여개의 회이름을 써부치고 내 방에 있는 동해안 아침바다 사진과 지난해 11월 성지순례때 찍은 시나이산의 일출 사진들로 꾸미고 말이다.
이 횟집에서 우선은 우리 할아버지들과 소주파티를 하고 할머니들과는 칼국수를 시켜먹고 싶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들을 불러모아 우리 주일 학교어린이들이 부모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계획들을 다듬고 싶다. 매주의 간식사탕 두알 에도 어머니의 손길이 스쳐가고, 아버지와 함께 손잡고 미사에 오고 싶어하는 어린이들의 꿈을 이루어 주어야 겠다.
그리고 멀리있는 내 친구들을 오라고해 한턱내면서 마무리를 하라고 해야겠다. R에게는 백원짜리 수녀원을 설계하라고 하고 C에게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성당동산에 모실 아홉번이나 북쪽땅을 드나들며 성직자를 영입한 정하상 성인을 조각하라고 해야겠다. 이쯤돼면 모시려고 이집 저집 뛰여다니지 않아도 통일과 북쪽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수녀원에서는 서로 수녀님을 파견하겠다고 청하지 않을까?
부임되어가는 차 안에서 무슨 생각을 첫번째로 하겠니? 질문을 던지며 통일을 위한 기도문을 지어주겠다던 친구 B도 오라고해서 우리 동네 김씨 이씨 박씨 노씨 정씨 전씨 아저씨들을 초대해서 어느 회를 드시겠습니까? 하면 어느 회를 주문할까? 어쩌면 차림표에도 없는 통일회를 주문하지 않을까? 떠오르는 해, 탁트인 바다를 보면서 생각만해도 입안에 침이 돌게하는 싱싱한 회에 소주를 곁들이면 누구나 입에 침바른 얘기들을 하겠지.
무엇보다 새해들어 내 마음에 심은『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예레31, 29)는 말씀과 서품 때 마음에 와 박힌『내가 님의 말씀들을 만나 그것들을 삼켰더니 그 말씀들이 나의 뼈 속에 갖혀 타오르는 불길같이 되더이다』는 예레미아의 고백을 되새김질 해야겠다. 그리고 게을러서 중단했던 80원짜리 일-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가까이 있게하며 이 지구를 인간이 거하는 동산으로 만드는일-을 계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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