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및 성령체험으로 이해 태어난 신앙공동체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영 안에서 살아 활동함을 체험함으로써 하느님이 아버지·아들·영이심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하느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시어 그분으로 하여금 구원사업을 성취하게 한신 후 성령을 파견하여 그 사업을 완성케 하심을 깨달은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에 대하여 같은 하느님 신앙을 고백하였다. 세 분을 나란히 호칭하는 신약성서의 표현문들은 그 신앙에서 형성된 것이었다:『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느님의 성령으로 깨끗이 씻겨지고 거룩하여 졌으며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1고린 6, 11: 2고린 13, 13)
그런데 교회는 아버지·아들·영이 서로 구별됨을 깨닫고 신앙으로써 고백하기 전에 먼저 동등함을 이해하고 고백하였다.
◆동등성
아버지와 아들도 성령과 마찬가지로 영이시다. 영으로서 동등하다:『하느님은 영이시다』(요한4, 24), 『주인은 영이시다』(2고린3, 17). 여기서 영은 하느님의 본질이고 능력이므로 하느님이 영을 통하여 현존하고 활동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영으로서의 하느님이 능력은 부활한 그리스도에게서 명백히 드러났으며 성령에 의하여 강하게 체험되신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으로서 자신의 현존과 활동을 체험하게 하신다. 하느님은 볼 수 없고 불사불면하며 자유로우시므로 영이시며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모두 영이시다. 셋이 동등하게 영이시며 거룩하고 살아있으며 영원하신 하느님이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까이 현존하고 활동하신다.
영의 이름은 신약성서의 전통적 양식문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과 나란히 등장한다:『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를 여러분이 누리시길 빕니다』(2고린13, 14). 유일성에 있어서 셋은 동등하시다:『성령도 하나이며…주님도 한 분이며 만인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십니다』(에페4, 3~6). 성령과 아들의 동등성이 명시되어 있다:『주를 두려워하며 성령의 격려를 받아』(사도9, 31), 『성령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로마15, 30), 『하느님의 아들을 짓밟고…은총의 성령을 모욕한자』(히브10, 29).
◆거룩하신 분
아버지와 아들에게 부여되는 수식어들이 영에게도 적용되어 성령도 신적 속성을 지닌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거룩한 영』이라는 표현이 신약성서 안에서 89번이나 나오는데 이는『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사41, 16~20)을 연상시킨다. 『거룩하신 분』이라는 명칭이 아버지(요한17, 11:묵시6, 10)와 아들(마르1, 24:요한6, 69)에게 부여되는데 영 역시 그분들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하느님이다. 하느님 이름이 아버지에게, 주님 칭호가 아들에게 붙여진 것처럼『거룩한』수식어가 영에게 부여되어 있다.
「영광」「살아계신」, 「영원한」따위의 수식어는 하느님에게만 유보되 표현들인데 성령에게도 부여된다:『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이 성령』(1베드4, 14). 살아있는 하느님 야훼처럼 또한『살아있는 빵』『살아있는 분』(요한4, 10:6, 57)이신 그리스도처럼 영도『생명의 물』(요한7, 38)로서 살아계시다.
영은 하느님의 고유한 일 곧 생명을 주는 일을 담당한다(2고린3, 6: 로마4, 17). 은총·진리따위도 하느님에게만 속해있는 실재들로서 영에게도 속한다. 은총의 성령, 진리의 성령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다함께 영원하시다(로마16, 26:1 요한5, 20).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느님으로 가지시는 속성(거룩함·영광·생명·진리·은총·영원성)을 그분들과 공유하는 분으로서 그분들에 의해 세상에 파견되신다. 그분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가 되게 하시고 그들이 마음을 다하여 예수를 믿고『영과 진리 안에서』(요한4, 24)하느님을 예배하게 하신다. 아버지는 아들의 청을 들어주시고 영을 통해 사람들을 새로이 태어나게 하시며 그들을 위로부터 태어난 하느님의 자녀로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다.
◆「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인간의 구원과 관련하여 나란히 등장하는 표현들이 신약성서 안에서 간혹 발견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세례명령」이다:『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라』(마태19, 19). 이 세례명령은 인간이 세례 때에 동참하게 되는 전반적 구원사건을 요약하는 것으로서 그 사건을 삼위일체적 구조 안에서 제시한다. 그리스도인, 즉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는 사건은 세례이고 이 성사는 삼위일체 고백의 발판이 된다. 교회는 우리가 성삼위(聖三位)로부터 생명을 부여받고 또 성삼위로 말미암아 살아가야 함을 신앙으로 고백하였다. 세례명령은 영세자를 하느님에게 결합시킨다는것을 나타낸다. 세례받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에게 봉헌되고 굳게 일치된다. 아버지는 세례로써 사람을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시고(골로1, 13)또 영을 받고 새로 태어나 주 예수와『오직 하나의 영』이 되게 하신다(디도3, 3~17). 세례명령에서 접속사「와」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똑같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데 아들도 영도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아버지와 동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서로 구별되는 주체이시다. 세례받는 자의 자기봉헌을 받아들이는 상대가 고유한 의식과 자유를 갖고 있는 주체가 아니면 그 봉헌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의 작가들은 야훼 하느님의 다른 칭호들을 세분에게 부여해드림으로써 구별되면서 한분이신 하느님을 표현하였다. 「하느님」과「아버지」는 첫째 분에게, 「아들」과「주님」은 둘째 분에게「거룩한」과「영」은 셋째 분에게 각기 붙여 드렸다. 성서 저자들은 가끔 세 분의 고유한 역할 또는 특징들을 통하여 세 분의 구별과 관계를 표현하려고 애쓴다. 바오로는「행위-봉사-선물」또는「사랑-은총-친교」로써 하느님-주님-성령의 상호 관계를 표현한다. 『여러분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미리 세우신 계획에 따라 뽑혀서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었습니다』(1베드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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