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 격변의 세월이었다. 특히 한국의 가톨릭교회에 있어서 지난 10년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간이었다.
80년대를 통해 가톨릭 교회는 지난 1백여년 동안 이루었던 양적성장을 능가하는 놀랄만한 성장을 기록했고 천주교 전래 2백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를 바오로 2세가 역대교황으로는 처음으로 방한, 천주교 2백주년을 기해 1백 3위의 성인을 탄생시킨 일은 세계 가톨릭교회에서도 보기드문 커다란 경사였다.
또한 작년 9월에 서울서 열린 세계성체대회는 한국 천주교의 놀라운 성장과 믿음의 성숙도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천주교회가 단순한 신자수의 팽창만이 아니라 내실있는 교회로 성장했음을 입증해주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 대회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어느 나라 교회에 비해도 손색없는 토착신앙을 바탕으로한 굳건한 교회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내실있는 성장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선교 3세기를 맞는 한국 천주교회는 허다한 교제와 문제점을 안고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이 사회전반에 팽배한 민주화·자율화 물결에 상응하는 교회의 민주화와 교회행정의 자율화라고 생각된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바티깐의 교황청을 정점으로 하는 교구제가 교회행정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교구안에서의 모든 일은 상당히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여타종교에 비해 가톨릭교회는 지나치게 성직자(신부)중심이며 상대적으로 평신도의 역할이 제약받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평신도사 도직협의회 같은 평신도기구가 활약하고 있으며, 갖가지 평신도 단체가 조직되어 있긴 하지만 그들의 활동이 결과적으로 교구장이나 담당 신부의 결정 여하에 따라 인정받을수도 있고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마디로 한국 가톨릭 교회의 대소사(大小事)는 철저하게 성직자, 그것도 신부 중심이기 때문에 천주교 특유의 패쇄성과 권위주의가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천주교회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관련된 부서나 성당에서 일하는 한 두명의 신부가 가니고서는 확인할 소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개신교나 불교처럼 평신도라도 책임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교회제도가 아쉽다.
확인된 얘기는 아니지만 세계 가톨릭 교회중에서도 한국교회가 가장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고 들었다. 미사절차에 있어서도 옛날 교회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라고 한다. 천주교전래 2백년을 넘겼고 수많은 박해와 순교자를 낸 우리교회가 구태여 옛날 중세기식 교회전례를 고집하는 것은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천주교의 토착화라는 단순 논리는 펴지 않더라도 한국 가톨릭은 이제 한국적인 교회로 탈바꿈을 시도해야 할 시점에 와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맨처음 시도할 수 있는 일이 미사전례의 한국화라고 여겨진다.
아프리카 등 다른 나라의 교회가 성체 성사의 참뜻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으면서 마사의식을 토착화하고 있는 것은 우리 교회가 본받아도 좋다고 본다. 수백년동안 지켜온 미사절차를 하루 아침에 한국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교회내에 전례위원회같은 기구를 만들어 신중한 검토를 시작하는 일만이라도 착수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성가나 기도문, 미사통상문 같은 것을 점차 한국식으로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성가를 국악이나 전통음악으로 작곡한다고 해서 교회의 권위가 손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가톨릭교회가 90년대에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북한선교를 중심으로 한 남북교류문제이다. 이미 89년에 문교현신부의 밀입북사건이 있어 세상의 화제를 집중시킨 바 있지만 천주교회의 남북교류는 더이상 미룰수 없는 절실한 과제이다.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이나 가톨릭농민회 등 이른바 진보-개혁적인 교회단체가 활발한 운동을 펴고있고 여기에 동조하는 성직자·신자가 적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이 교회내 비공인 단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의 활동을 방관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비교적 온건한 입장에 있는 젊은 신자들조차 한국 가톨릭교회는 교회 안팎으로 많은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개혁 불가피론을 펴고있다는 사실을 가톨릭 지도자들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과거 40여년간 한국가톨릭교회가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영적구제에 기여해온 공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요 종교 가운데 가톨릭교회처럼 변화와 발전에 둔감한 종교도 드물다는 비난의 소리가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란 교회안의 제도적인 변화와 사회환경의 급변에 따른 교회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와 여랑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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