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스페인을 정열의 나라, 태양의 나라라고 말하지만은 나는 스페인을 예술의 나라, 가톨릭의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타이 항공 초청으로 부산ㆍ경남지역 여행사 대표 10명과 같이 작년 11월 6일부터 14일까지 8일간의 스페인 여행을 통하여 느낀 것은 예술과 가톨릭을 빼면 스페인의 존재 가치가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면적이 남한의 5배인 스페인은 국가 제1산업이 관광으로 이 엄청난 관광상업의 근본은 맑은 태양과 중세기 한때 중남미와 아시아의 식민지와 무적함대를 거느린 영화의 발자취를 담은 유적이 전국에 고루 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풍부한 관광자원은 빠짐없이 아름다운 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고,그 예술의 대부분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나라 인구의 98%가 가톨릭 신자이며, 이 나라에 추기경이 7명이나 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오랜 의회정치의 발달과 완벽한 지방자치제, 정치를 사회에 봉사하는 일로 생각하고, 유달리 맑고 큰눈, 긴눈썹, 높은코의 아름다운 스페인 여인, 마드리드, 세고비아, 똘레도, 바르셀로나 등 가는 곳마다 우리를 환대하여준 주의회의원, 시관광관계자의 열성적인 태도와 몇백년씩된 고옥의 문짝하나 마음대로 손 못대는 관광시책과 풍부한 관광자원으로 스페인관광은 더욱 발전되리라 기대되었다.
11월 6일 11시 꾸르실료 교육의 발상지, 스페인 순례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나와 몸을 실은 타이항공기가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12시간 비행 끝에 로마공항에 닿는 순간, 5백여명의 전승객이 지루한 장거리 항공여행 끝의 안도와 승무원에 대한 감사와 격려의 우뢰 같은 박수는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11월 7일 9시 서울을 출발한지 32시간, 비행시간 21시간만에 그리던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하였다.
마드리드는 1392년경 엔드리크 3세가 즉위한 후, 1477년 도시확장이 착수되고 1561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를 스페인의 수도로 정하고 그후 펠리페 3세를 거쳐 펠리페 5세와 카롤로스 3세때에 근대적 구조에 의한 아름다운 역사적 건물의 수도로서 바뀌었다.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긴 세월동안 발전을 거듭하여 1939년에는 구라파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큰 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먼저 프라자 데 오리엔테에 갔다. 아름다운 화원 펠리페 4세의 기마상과 훌륭한 조각 그 후면에 있는 왕실궁전을 관람하였다. 중세에 한때 세계를 제패한 영화의 발자치를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각 방마다 건물 내부장식ㆍ그림조각 등이 훌륭한 예술품이요, 150명이 한꺼번에 식사 할 수 있는 대연회식당, 호화로운 식기류, 중세기의 무기, 투구류 등은 옛날을 엿 볼 수 있었다.
11월 8일 세고비아에 가기전에 엘 에스꼬리알 궁전에 들렀다. 펠리페 2세가 1563년에 착공하여 1584년에 완공한 수도원 겸 궁전으로서 펠리페 2세는 여기에서 항상 기도하고 수도생활을 하였으며 역대 왕의 시체가 안치되어있다. 건물의 모든 부분이 궁전 안인 수도원으로서 가톨릭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고 세상에서 유명한 유적물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엘 에스꼬리알 궁전을 떠나 로스가이도스 전몰자의 골짜기에 들렀다.
높이 1백 50m, 폭 40m의 세계에서 가장 큰 십자가 밑에 높이 20m, 폭 20m, 길이 1백 50m의 지하동굴의 장엄성당에는 193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 내전때 죽은 1백 50만명의 희생자 납골당과 프랑크 총통의 무덤이 있으며, 때마침 11시라 희생자를 위한 미사가 봉헌되는 시간이었다.
은은한 성가소리가 더욱 장엄하게 들렸다. 모든 잘못을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는 참모습이었다.
세고지아에 도착하여 주의회의원과 부사장, 관광 관계자의 영접을 받았다. 이분들이 초대한 식당 「깐디도」에서의 식사는 정말 놀라웠다. 2백년전의 건물로서 조상대대로 식당을 경영하는 것을 자랑과 보람으로 여기며 지금도 할아버지와 손자와 같이 식당을 경영하여 할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최고훈장까지 받았고 손자가 직접나와서 요리를 하여 우리를 접대하였다.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고 직업을 통하여 사회에 봉사하고 인생의 참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세계 저명인사들이 다녀간 것을 자랑삼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었고 수입의 많은 부분을 사회에 봉사하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요리는 생후 10주 되는 돼지새끼구이로서 식사 시간이 장장 2시간 30분 걸렸다. 천천히 먹고 마시면서 즐겁게 이야기하고 인생을 낙천적으로 했으나 먼곳에서 와서 한곳이라도 더 보고싶어 시간이 아쉬웠다.
오랜식사 시간 후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는 기원 1세기에 로마인이 축조한 유명한 수도교와 1587년에 ,헨리4세가 기증한 성안토니오 수도원, 평생을 기도와 이 수도원 안에서만 살다가 이 수도원안에서 묻힌 수녀님들을 생각하니 갈멜수녀원이 연상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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